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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엄경희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3년, 대한민국 서울

최근작
2022년 6월 <현대시와 헤테로토피아>

2000년대 시학의 천칭

순수와 참여, 서정의 깊은 울림, 전통에 대한 도전과 실험, 총체성과 통일성 등과 같은 어휘들이 포괄했던 현대시 100년의 흐름이 매우 이질적인 물살을 타고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2000년대 시학이 드러낸 현상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과도기적’인 시기를 상징하는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것은 서서히 이루어진 변이와는 확연하게 다른 감수성과 언어운용 방식을 통해 우리 시의 판도를 흔들어놓은 일종의 해일처럼 느껴졌다. 거기에는 기존의 시인들이 견인해 왔던 상상의 거점에 대해 강력하게 ‘이의제기’를 실천하는 이질적이고 생경한 새로운 인류의 모습이 언뜻언뜻 담겨 있는 듯도 했다. 신성함의 빛은 몰락한 듯했으며 근원으로서의 코라(chora)와 고향은 철저하게 거부되거나 부정되었다. 나는 모두가 ‘홀로’인 자들만이 각자의 삶 속에 표류한 채 어디론가 흘러가며 추문과 악몽과 우울증과 신경증을 토로하며 열정적으로 반(反)미학의 성곽을 축조하는 데 몰입하는, 그리고 것을 즐기는 낯선 광경을 되도록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쓰며 이 글들을 썼다. 이들이 드러내는 것은 악마적 현실에 대한 저항인가, 지향인가, 몰개성을 드러내는 트렌드(trend)인가, 아니면 철학적 고뇌인가, 놀이인가, 회의감인가. 이처럼 불분명하고 모호한 판단의 경계가 나의 의식에 출몰했으며 그럴 때마다 문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혹은 지금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과연 진실 여부를 타진하는 게 가능한가 하는 곤혹스러움이 밀려오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 시학은 당혹스러운 것이었으며 그 당혹스러움이 날 고통스럽게 했다. 성찰로서의 되돌아봄이 가능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비평집의 표제를 ‘2000년대 시학의 천칭’이라고 붙인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책머리에

빙벽의 언어

시인들이 창조해낸 새로운 지도를 따라 여행하는 일은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나는 언제나 시를 통해 새로운 지도를 발견하길 갈망한다. (...) 시에 의해 열려지는 꿈의 세계가 실현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있어야 하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존재할 때 우리는 자신들의 가난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저녁과 아침 사이 시가 있었다

저녁과 아침 사이에 이 시가 있었다. 개미 한 마리가 보여주는 적나라한 생의 노정을 의식에 각인시키는 잔인한 일이 계속되었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폐병쟁이 사내에게 허벅살을 떼어주는 허수경과 사랑을 되찾기 위해 매 맞는 최승자가 있었다. 그들의 사랑을 짝사랑했던 밤이 있었다. 착란에 시달리며 도둑맞은 자아를 찾아 함기석이 달려가고 있었다. 쿨 월드에서 태어난 성미정의 늙은 아이가 있었고 지나가고 지나가는 것 사이에서 한 세월 잘 썩어내는 정끝별의 눈물이 있었다. 저녁과 밤사이 악마의 시간을 견디며 눈을 다친 정재학이 링반데룽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감시와 처벌의 세계에서 경쾌한 도주를 꿈꾸는 문혜진의 말을 빌려 타고 바다까지 내달려보는 새벽 3시의 시간과 빈들거리는 저녁의 산보를 제발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정현종의 간곡한 부탁을 들으며 평화를 생각했던 저녁이 있었다. 시로 쓰인 이시영의 현대사가 어느 밤의 책상 위에서 촛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자기 파괴로 자기의 자존을 지키는 백인덕의 고독한 아웃사이더의 생이 통증을 일으키던 오후 4시가 있었고 영혼의 푸른 고원을 찾아 헤매는 박정대의 은델레 소리가 위로가 되었던 가을밤이 있었다. 시와 잘 살았던 지난 이 년의 시간을 여기에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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