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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최정례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5년,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

사망:2021년

직업:시인

최근작
2020년 11월 <빛그물>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지금까지 나는 시적 순간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이젠 시적 순간들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런 순간들을 기다리기 이전에 끈질기게 시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그 순간들이 나를 찾아오게 해야 할 것이다. 철조망에 싹이 나고 잎이 날 때까지, 밤나무에 주렁주렁 수박덩이가 매달릴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날이 계속되어도 투덜대지 않기로 한다.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먼 것, 멀어져 간 것, 그래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 그건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인 줄 알면서 그걸 믿지 못하는 날들. 흙으로 빚은 물새를 보았다. 흙으로 빚은 작은 배를 보았다. 흙으로 빚은 짚신 한 짝도 보았다. 그것들은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천 년 전 신라나 가야에 살던 이들은 멀리 떠나는 이를 위하여 새를, 배를, 짚신을 무덤에 함께 넣어 주었다. 그들의 몸을 빌려 멀리 가 보이시라고...... 늦게 시집 한 권을 묶는다. 어리석어라. 나는 이 한 묶음을 그들이 빚은물새 한 마리쯤으로 믿고 싶은 모양이다. 1994년도 다 가는 때

레바논 감정

가로 쳐진 철조망 사이로 냇물이 흘러간다. 지푸라기, 나뭇잎, 허섭스레기 철조망에 걸쳐놓고 내 말도 그렇게 흘러갈 수 있을까. 그렇게 흘러서 벌판을 건널 수 있을까. 한 시인이 말했다. 시는 그리움의 소멸이라고, 비정하라고. 내 그리움이 소멸하는 순간들, 이파리 주민등록증 내밀어 여기 붙잡아 둔다. 네번째 시집이다.

백석 시어의 힘

백석은 1930년대 시인들 중에서 가장 나의 기호에 맞는 시인이다. 두 번째 시집 <햇빛 속에 호랑이>를 내고 나서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세 번째 시집 <붉은 밭>을 묶으면서 그리고 이어서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늘 머릿속을 떠돌던 것은 시어의 힘에 관한 문제였다. 어떤 말은 힘이 있고 어떤 말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환기력이 강력한 시어, 그 말들은 어떻게 힘을 받아 작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백석의 시들을 주목하게 했고 이 글을 쓰게 하였다. 어떻게 하면 하나의 대상 혹은 한 사물의 의미를 두텁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좀더 힘있는 말을 찾을까에 대한 대답을 백석의 시에서 찾고 싶었다. 그의 시어들은 오래된 청동거울의 녹으로 뒤덮인 그늘에서 이따금 튀는 빛과 같았다. 일상의 말들을 거기에 비춰 보면서 대답을 모색하였다. 백석이 누추한 현실 속에 눌려 있는 구체어를 활용하여 시어의 위치에 놓을 때, 개념화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논법에 약하고 구체어로 밖에 말하지 못하는 애매한 나 자신이 조금은 분명해지면서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맨 처음 나를 매혹시킨 백석의 시는 「北方에서」이다. 선행 연구자가 언급했듯이 이 시는 우리 시의 북극성이자 나의 북극성이기도 하다. 시인이 수천의 해를 거슬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부여, 숙신, 발해, 여진, 아무르, 숭가리를 헤매었던 것은 자신을 소외시켰던 순간에 자기 존재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낯선 것과 친숙한 것,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화해를 엿보면서 그들의 작용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토속적인 것과 근대문물의 것을 병치해 놓으면서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했던 백석의 시는 오늘의 나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책머리'에서)

붉은 밭

생각해보면 나는 돌멩이 하나가 허공에 떠 있는 순간의 그 짧은 작열감을 타고 시의 어떤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착란의 순간은 짧고 거의 모든 시간 동안 돌멩이는 땅바닥에 팽개쳐져 나뒹군다. 말이 욕구를 항상 따라와 주지는 않는다. 고작해야 순간일 뿐인 현재를 혼자 소리로 채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누가 내 시간 속으로 들어와 고개를 끄덕여줄까? 미진했던 이전의 시에 격려와 애정을 보내주신 분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01년 9월

붉은 밭

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 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하니? 마침내 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하니? 한 나무의 아름다움은 다른 나무의 아름다움과 너무 비슷해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의문문으로 시작했던 이 시, 이제는 평서문으로 고쳐 읽어본다. 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 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한다. 마침내 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한다. 한 사람을 향한 열렬함이 마침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할 것인지의 의문으로 시작했던 이 시, 그러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서 있던 자리와 내 모습을 그려 보여줬던 시, 시 안에서 시로 인하여 기르게 된 힘으로 다른 삶을 살기로 꿈꾸었던 시간, 세번째 시집 『붉은 밭』의 시간, 그때의 시들을 다시 돌아보니 끈기가 시의 힘을 키워준 게 아니라, 시의 힘이 끈기를 길러준 것 같다. 내 존재의 유한함을 견디게 해준 것은 시였고, 사랑의 불가능함을 견디게 해준 것도 시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사랑의 불가능함이 가능함으로 바뀌게 될 날도 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시는 언제 돌아와도 늘 나를 받아주는 출발점이었으니까. 2019년 9월

빛그물

존재의 배면에서 수줍게 숨어 있는 시가 좋다. 발갛게 숯이 되어 타고 있지만 꼿꼿이 서서 무너지지 않는 시가 좋다. 문 없는 문 안에 있는 시를 쓰고 싶었다. 어떻게 들어갔을까 어디로 나갈 수 있을까, 근원을 질문하는 시, 마음과 육신이 만나는 교량 위에서 김수영의 시에서처럼 늙음과 젊음이 만나고, 미움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시를 쓰고 싶었다. 나라를 팔아먹고 그 팔아먹은 나라를 위해 다시 목숨을 바쳤던 이들,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두 얼굴이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우리의 근원을 물으며 돌아가고자 했다. 더운 골짜기와 얼음 골짜기의 물이 만나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흐를 때 어느 물 한방울로 그 원천을 증명할 수 있을까, 모순과 아이러니의 두 얼굴, 이 두 얼굴이 우리 근원 속에 도도히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 이후 발표한 시들 중에 산문시 몇편을 덜어내면서 생각해보았다. 산문으로 된 이야기 속에 시적인 것을 어떻게 밀어넣을 수 있을까의 실험, 아직 끝낼 수는 없었다. 물론 시적인 것이란 무엇일까의 더 근원적인 것을 향한 질문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열심히 써냈지만 장치 가 느슨할 때는 너무 싱거운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시들을 덜어내었다. 이야기의 한 귀퉁이를 누르면 저쪽 세계에서 반짝이며 대답해줄 것 같은 이야기 시, 공간과 시간의 혼돈 속에서 시적인 물음들을 물으며 자기 갈 길을 가는 시들, 이곳을 말하면서 동시에 저곳을 말하는 알레고리의 시들을 이 시집에 포함하기로 했다 2020년 10월

시여, 살아 있다면 힘껏 실패하라

이 책에서 텍스트로 삼고 있는 시들은 최초로 내게 와 닿았으 때 나를 당황하게 했거나, 오랫동안 잊을 수 없어 서성거리게 했거나, 적어도 며칠간은 잠 못 들게 하며 내 머릿속을 떠돌던 것이다. 이 시들이 왜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여기 담은 시들은 단순히 나의 취향을 넘어서 시에 대한 내 생각을 한 조각 한 조각 형성시켜 준 것들이다. 이 시들을 통해 나는 나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목소리 속에서 나의 외로움을 위로할 수 있었고, 또한 나와 전혀 다른 이의 생각과 느낌을 대하면서 내가 갈 수 없는 먼 곳까지 가볼 수가 있었다. 이미 나 있는 길만 따라가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간 시들, 개척된 땅에 포진하여 잘 살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칭찬받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시의 극지에 닿은 시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제목을 <시여, 살아 있다면 힘껏 실패하라>고 붙였다. 혼자 시를 쓰는 동안은 편협한 생각과 느낌을 오르내리며 내 안의 어두운 끌탕 속을 헤매게 된다. 나 자신만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 책을 만들도록 시와 힘을 빌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어쩌다 나는 시에게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을 빚은 지고 이렇게 쪼들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바쳐야만 되는 시에게. 2011년 11월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시로써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 시집은 우리가 본 지금까지의 어떤 시와도 닮지 않았다. 시인이 시치미 떼고 전하는 어수룩한 말들이 나를 멍하게 하기도 했고, 수수께끼 같은 말, 무의미한 말들도 어느새 내 입속에 들어와 마치 내 본래의 리듬처럼 살아 내 시로 변주되기도 했다. 제임스 테이트의 이 엉뚱하고 재치 있는 시집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게 된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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