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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사카이 준코 (酒井順子)

국적:아시아 > 일본

출생:1966년, 일본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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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가족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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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창문 넘어 도망친 대한민국 노처녀 (추천3,댓글0) 한치   2017-05-10 09:03

는 대한민국 노처녀다. 이것은 내가 제 아무리 인정할 수 없다고 발악해도 사회에서 찍어내린 낙인 같은 거라서 종국에는 꼬리내리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 정체성이 내게 주는 갖가지 핍박의 선물을 한 아름 안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는 날까지는 잠자코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한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나는 칠거지악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지 결혼 하나 안 했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만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시당할 만큼, 쓸데 없는 동정으로 끌끌 혀를 차게 만들 만큼 대단한 일인 걸까. 이 모든 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죄로 '노처녀'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거라면 너무 억울하다. 한국을 떠야 하는 걸까. 다른 나라에는 '노처녀'라는 말이 없을까. 다른 나라 노처녀들은 '노처녀 타박' 따위 없이 남들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활개치며 살아가고  있을까.

 

 


 


본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나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고 현재 밥벌이도 일본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하면 일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일본의 대표 검색엔진사이트에 '노처녀'를 검색해보니 지식인에 한국에서는 결혼 못 한 나이든 여자를 '노처녀'라고 한다더라는 글이 떡하니 나왔다. 클릭해서 읽어보니 헐, 대박, 너무한거 아님?, 같은 답변이 주르륵 달려 있었다. 일본에는 노처녀라는 표현이 없었나... 잠시 생각해봤다.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 만화, 책 등 각종 콘텐츠를 접했을 때 30살 이상은 여자가 아니라며 희화화시킨 장면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의 성격상 직접 대놓고 노처녀라고 부르며 놀리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시집 못간 노처녀에게 야유를 보내고 경시하는 풍조는 분명히 있다. 여자 나이 서른이면 이미 늦었다고 본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희미해진 서른이라는 결혼 마지노선이 일본에서는 아직도 통용될 만큼 보수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에 '노처녀'라는 단어가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납득이 안 가서 더 뒤지다보니 물고기가 낚였다. 역시 있었다. '마케이누(負け犬)'라는 표현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일본어로 마케이누는 '싸움에서 진 개'라는 뜻이다. 원래 알고 있던 표현이었지만 노처녀를 상징하는 단어로도 쓰인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 말이 어쩌다 노처녀를 뜻하게 되었을까. 찾아보니 일본 여성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 작가가 2003년에 발간한 '싸움에서 진 개의 절규'라는 책이 시초였다고 한다. 그녀는 책에서 '미혼, 아이없음, 30세 이상'이면 '마케이누'라고 정의했다. 

 

 

 


그녀 자신이 마케이누이면서 대체 왜 이런 자조적인 표현을 사용했을까. 그럼 그렇지, 내용을 훑어보니 주변 여자들이 자기를 보는 시선 때문에, 이를 역으로 비틀어서 비꼰 것이라 했다. 바로 '노처녀 주제에 행복할 리가 없어!'라는 시선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책은 '싸움에서 진 개' 취급을 받고 있는 노처녀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응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결혼의 재발견1'이라는 엄청나게 순화된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녀의 책은 발간 이후 일본 국내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일본 사회에서는 노처녀를 폄하하는 시선이 남아있다고 한다. 단지 앞에서 대놓고 노처녀를 '마케이누'라 부르며 희롱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그녀의 책이 출간된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일본의 30대 여성 미혼율은 10% 이상 크게 올랐다. 2010년 기준으로 34.5%나 된다. 30대 노처녀가 늘어난 만큼 노처녀를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한편, 사카이 준코 작가는 2012년에 도쿄, 서울, 상해 3개 도시의 노처녀를 비교분석한 '유교와 마케이누'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 책은 3개 도시의 노처녀 성향과 기질을 조사하여 분석한 것인데, 일본 노처녀들이 다른 도시의 노처녀들에 비해 남성에게 억눌려 지내는 측면이 있다고 저술했다. 내가 일본에서 느꼈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상과도 겹쳐지는 대목이다. 그녀는 상해 노처녀들을 '과하다 싶을 만큼 쎈 언니들'이라 칭하면서, 남자에게 거절도 거부도 잘 못하는 도쿄 노처녀들에게 더 강해지자고 제안한다. 다음은 '유교와 마케이누'에서 그녀가 스스로의 연애를 돌아보며 쓴 '마케이누의 자화상' 편의 일부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누가 봐도 아닌 남자와 엉겁결에 섹스한 걸 계기로 사귀게 됐지만, 어쨌든 애인이란 존재는 소중하기도 하고, 남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도 싫어하지 않다보니 상대가 해달라는 대로 들어주게 되고, 그러다보면 돈을 뜯기거나 손찌검을 당하기도 한다. '난 왜 이런 사람이랑 만나는 거지...'라 한탄하면서도 이러니저러니 또 그 남자와 헤어지지 못하고 만나고 있다.

-사카이 준코 '유교와 마케이누'의 '마케이누의 자화상' 중에서
★해당 책은 한국어판 번역본이 없습니다. 일본 서적을 직접 번역한 내용입니다.


 


 

 

른 나라의 노처녀를 찾다가 중국 노처녀의 현실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노처녀를 '성뉘(剩女)', 일명 '떨이녀'라고 부른다고 한다. '잉녀'라는 한자를 쓰고 성뉘라고 읽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남겨진 여자'가 된다. 잉여인간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잉녀라니....

예전에 여자나이를 크리스마스케이크에 비교하는 드립을 들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24일이 가장 잘 나가고, 25일은 그럭저럭, 26일 부터는 떨이로도 잘 안 팔린다는 주먹을 부르는 이야기.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게 현실이라고 한다.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들이 베이징에 넘쳐나는 21세기에도 25살이 넘어가면 '떨이녀'가 되어버린다.

내가 봤던 다큐멘터리 영상은 중국의 성뉘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사회적인 압박을 다룬 것으로 현대 한국 노처녀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중국은 한국보다 더 급격한 경제성장을 단기간에 이룬 탓에 세대차이가 극심했다. 중매로 결혼한 부모님과 결혼은 선택이라는 딸 사이의 갈등이 심각수준을 넘어섰다. 노처녀를 둔 중국의 부모님들은 자체적으로 '결혼 시장' 열고 있었는데 그 시장라는 게 참 황당무계했다. 노처녀 딸의 직업, 학벌, 연봉, 키, 자동차 및 주거 보유 여부 등을 적은 종이를 공원에 잔뜩 늘어놓고 마치 생선을 팔 듯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나랏님이 금은보화로 노처녀를 시집보내려 했던 조선시대로 타임캡슐을 타고 돌아간 것 같은 쇼크를 받았다.

다큐멘터리의 끝에가서는 성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자신들이 살아가고 싶은 삶과 여성으로서 지키고 싶은 원칙을 적은 종이를 부모님들이 열던 '결혼 시장' 장소에 똑같이 연출하고 그곳으로 부모님을 초대한다. 노처녀 딸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프로필 사진까지 내걸고 전하는 메시지에 부모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영상을 직접 봐보시길 추천한다.

 


 


 

 

은 동양 문화권은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기만 하기에 아메리칸 드림 한 번 꿔보기로 했다. 미국에 한정하지 않고 영어권은 노처녀에게 어떤 분위기인지 살펴봤다. 우선 노처녀라는 단어가 있나 찾아봤더니 올드메이드(old maid)라는 표현이 있었다. 사전에서는 첫 번째로 하녀, 가정부, 두 번째로 처녀, 아가씨라고 정의한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때문에 올드미스가 더 익숙한데 이건 콩글리시라고. 메이드의 어원은 원시게르만어로 성 경험이 없는 여성을 뜻하는 말이었다. 오 이런, 올드 메이드란 결국 늙은 처녀라는 뜻이 아닌가! 한국어로 바꾸면 노처녀, 완전 똑같고만!

올드메이드라는 말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정확한 시점은 모르지만, '노처녀와 도둑'이라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1939년에 초연된 걸 보면, 그 이전부터 사용해왔나보다. 이 작품은 노처녀 가정부가 젊은 가정부에게 사랑하던 남자를 빼앗기고 둘에게 조롱을 당하는 이야기로, 그 시절 노처녀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간에 노처녀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주책맞은 여인네고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나오는 지 모르겠다.

다행인 건, 현재 올드메이드라는 단어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멸이나 연민의 뜻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지! 이래야지! 이를 대신할 말로 '스핀스터(spinster)'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또한 단순히 미혼여성이라는 의미보다 나이가 많고 결혼할 가능성이 적은 독신여성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지적에 따라 구식표현이 되었다. 그럼 현재 미혼여성들을 어떻게 지칭하느냐, 바로 많이 들어본 '싱글(single)'이라고 하면 된다. 비욘세의 'Single lady'가 귓가에 맴돈다.


 

 


 



국에서도 자신을 소개할 때 독신이라거나 싱글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곤 한다. 그럼 뭐하나, 남들 입에는 그냥 노처녀인데. 올드메이드와 스핀스터가 역사 속에 사장된 단어가 되기까지 많은 여성들이 큰 목소리를 냈다. 그 덕분에 현재 싱글 여성의 지위를 획득했겠지. 마케이누는 마케이누대로 성뉘들은 성뉘대로 제 나라에서 그들 방식대로 싸우고 있다. 나 역시 대한민국 노처녀로서 가만 있을 순 없다. 떠나긴 어딜 떠나. 튀긴 어딜 튀어.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모두 한국에 있는데.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도 한국에 있고. 노처녀 구박에 속상하다고 쭈구리해 있지 말고 1:1 다이다이 한 판 떠보자고 해야겠다. 내 뒤엔 전 세계 노처녀가 있다고! 우쒸, 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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