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 : 시는 지금 「야간 도로 공사」 중이다. “오랫동안 짓밟힐 길을 깔기 위해/오랫동안 짓밟힌 길을 파”내는 일에 여념이 없다. 소통의 강박으로 밤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깨진 보도블록 틈에 박힌 구두굽을 잡고 쪼그”(「잉어가죽 구두」)린 난감한 자세로 “아직 한 음도 낸 적 없는/심해어를 상상”(「심해어」)하는 시인이 있다. 김경후에게 고독은 스스로를 겹겹이 걸어잠근 꽃망울과 같아서 침묵의 충만 속에서 세계를 향해 터지는 섬광이 된다. 또한 죽음의 기억은 일상의 말들이 지닌 더께를 벗겨내거나 사물의 질서를 미결정의 두근거리는 태동 속에 있게 한다. 무엇보다 이 시인에게 여백은 의미에 확고하게 붙들린 말들을 소리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는 별자리가 되게 한다. 그리하여 백지 한장 속에 측정이 불가한 심해와 깎아지른 “철벽 길”의 해발이 동시에 머물게 된다. 높이도 깊이도 없이 직립한 평면의 매혹 속에 그로테스크와 서정이, 유머와 불온이, 추와 미가 행복하게 혼숙하고 있다. 절벽 끝의 노래는 절박하지만 또 얼마나 절제되어 있는지. 백치처럼 「속수무책」으로 백지의 매혹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