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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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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밤의 눈』으로 “비극적인 분단 한국사의 핵심을 파고들어 역사적 진실과 개인의 내면을 생생하게 되살렸다”는 찬사를 받으며 2013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조갑상의 신작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30여년 동안 세권의 소설집과 한권의 장편소설만을 발표한 과작의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2009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발표된 작품들이 묶였다. 탄탄한 구조 안에 존재론적 고독과 둔중한 근현대사를 주로 담아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역사 속의 개인을 집요하게 조명하며 묵묵히 시대를 증명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 천착해온 소재인 ‘보도연맹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을 포함하여,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어지는 삶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으로 “이전보다 더 냉정하고 엄격하게 역사를 상대한다. 해후 / 물구나무서는 아이 / 병산읍지 편찬약사 / 봄, 그리고 여름까지 / 위로 / 내 사랑 냉온장고 / 목구멍 너머 / 패가 뭔지는 몰라도 : 소설은 또 다른 역사 기록이다. 작가는 자신이 사는 시대를 기록하면서, 궁극의 목표점을 놓치면 안 된다. 조갑상 작가는‘지금 여기’를 그리면서 역사의 한 점을 꾸준히 환기시켜왔다. 이 책에 담긴 8편의 단편소설은 가볍고 발랄하여 금방 휘발되어버리는 수많은 이야기들 사이에 버티고 서서 결코 지나치면 안 되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중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조명하기보다 각자의 잣대로 재단하는 동안 일그러지고 묻히기 일쑤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실체가 드러나는 사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국민보도연맹’이다. 1949년에 촉발해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 이 일은 2009년이 되어서야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조갑상 작가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소재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가 여전히 현역작가이기에 또다시 <병산읍지 편찬약사>를 쓸 수 있었다. 1980년대 전후에 출생한 작가들이 포진한 문단에서 새롭게 밝혀지는 아픈 역사를 그릴 노련한 전사戰士가 칼을 벼리고 있었다는 건 여러모로 행운이다.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작성되고 있는 기록물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 변형시킨다 해도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는 준엄한 사실을.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조갑상 작가가 조명하는 또 다른 중요한 소재는 좀처럼 조명받기 힘든 장년 이상의 사람들이다. 노인은 ‘문제’라는 단어와 묶여 뉴스에 등장하기 일쑤인데 조 작가가 <패가 뭔지는 몰라도>를 통해 보여주는 노년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삶’이다. 자녀에게 목숨 거는 부모를 탓했던 천편일률적인 시각을 확대해 기생과 안주를 택한 젊은 세대까지 조명하는 <목구멍 너머>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조갑상 작가의 작품은 후배들에게 ‘오래, 그리고 소신있게’ 작업하라는 당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17년 7월 7일자 '문학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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