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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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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이자 국제연대를 조직한 세계적 활동가, 임수경의 방북과 귀환을 기획한 통일운동가였던 합수 윤한봉 선생의 삶을 충실히 기록한 평전이다. 총 1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내용의 대부분을 운동가로서 그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1971년부터 1993년까지의 이야기에 할애했다.
그 전반부에 해당하는 10년은 늦깎이 대학생으로 전남대에 입학한 윤한봉이 우여곡절 끝에 5·18민주화운동의 주모자로 수배되어 미국 망명을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목장 풀밭에서 아내에게 피리 불어주며 조용히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청년 윤한봉이 ‘반란 수괴’로 거듭나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윤한봉이 민주화투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선포였다.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듣던 윤한봉은 “열불이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모르다가 방에 돌아와서 펼쳐놓은 책과 영어사전을 볼펜과 연필로 마구 찍어대고 황소처럼 벽을 머리로 들이받으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책머리에 | 스스로 거름이 된 사람 : 윤한봉, 그 이름을 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광주 시절 그는 내 문화운동의 정치위원이었고 해외 망명 시기에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식구들은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합수라고 불렀다. 거름의 토박이말인 합수는 그의 별명이기도 했다. 그는 살아서 광주는 물론 분단된 조국의 거름이 되겠노라 했으며 죽어서는 5·18 광주 아우들의 틈으로 돌아가 묻혔다. 지혜롭고 강인하고 부지런했던 합수는 원칙의 사내였고 그 때문에 모두가 불편해하였다. 오늘 나는 그가 곁에 있어 나를 여전히 불편하게 해주기를 소망한다. : 그립고 또 그립다. 가진 것이라곤 운동화 한 켤레와 낡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던 그의 청빈과 겸손이, 드넓은 미국 땅을 그물 같은 조직으로 촘촘히 엮어냈던 실행력이, 온갖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그의 예술적 감성이. 나는 여태 한국의 민중운동가 가운데 그 모두를 이토록 탁월하게 합치시킨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이를 합수(合水)라고 부른다. : 25년 전, 윤한봉이 긴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귀국하게 되었을 때 세월은 무심하여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윤한봉, 그의 이름을 모른다면 나이가 아주 어린 사람이거나 인생을 너무 쉽게 산 사람이다.” 일제강점기에 백범이 있었다면 군사독재 시절엔 윤한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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