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69권. 1876년 2월 27일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선과 일본 간에 서구적 형식의 조약이 체결됐다. 이른바 강화도조약. 강화도조약의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다. 조일수호조규는 조선이 근대로 이행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이 조약은 조선이 서구 근대 국제질서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고, 한일관계에서도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교린 질서가 서구 근대의 외교제도와 관념으로 대체된 전환점이었다.
이 책은 조선과 일본 간에 조일수호조규를 맺기까지의 배경과 체결 과정을 국내외 미간 문서와 외교문서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조약 체결에 담긴 일본의 의도와 당시의 일본 정세 및 조선의 대응을 파악하고, 조선 근대사와 조일관계사의 거시적 맥락에서 조일수호조규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고찰하였다.
최근작 :<잊혀진 조선피로인> ,<조일수호조규, 근대의 의미를 묻다> ,<민의와 의론> … 총 6종 (모두보기) 소개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주요 논저: <임진왜란기.자호란기 조선피로인(朝鮮被虜人) 쇄환교섭의 정치외교사적 특성 비교>(2016), <사료(史料)를 통해 본 조선피로인(朝鮮被虜人)의 일본 나에시로가와(苗代川) 정착과정 연구(2)>(2015), <조선조의 군주덕목론(君主德目論): 이상과 현실의 괴리>(2015), 《민의와 의론》(공저, 2012), 《국치 100년, 국권상실의 정치외교사적 재조명》(공저, 2012)
최근작 :<다시 국가를 묻는다> ,<조일수호조규, 근대의 의미를 묻다>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주요 논저: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2017), 《신론(新論)》(역서, 2016), 《근대 일선관계의 연구》(역서, 2013/2016), 《국역 을병일기》(역서, 2016), 《근대한국국제정치관 자료집1》(공편, 2012), 《심행일기》(역서, 2010)
최근작 :<조선총독의 지배정책> ,<단재 신채호 평전> ,<함께 움직이는 거울, ‘아시아’> … 총 15종 (모두보기) 소개 :광운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주요 논저로 『한국 근대 민족주의와 변혁이념, 민주공화주의』(신서원, 2018), 『한국인의 근대 국가관, ‘민주공화국’ 재고』(선인, 2017), 『조선총독정치 연구』(지식산업사, 2012), 『일제시기 한국 사회주의 지식인 연구』(지식산업사, 2004), 「사상통제정책의 역사성: 반공과 전향」(방기중 편, 『식민지 파시즘의 유산과 극복의 과제』, 혜안, 2006) 등이 있다.
최근작 :<조일수호조규, 근대의 의미를 묻다> ,<제국과 변경> ,<조약으로 본 한국 근대사>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고려대학교 독일어권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주요 논저: <1880년대 영국외교관의 조선 북부 지역 여행에 담긴 함의-영국의 경제적 확장과 관련하여>(《사총》 90, 2017), <영국의 거문도 점령 과정에 대한 재검토 - 갑신정변 직후 영국의 간섭정책을 중심으로>(《영국연구》 36, 2016),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공저, 2010), <朝英條約과 불평등조약체제의 재정립>(《한국사연구》 135, 2006)
1876년 2월 27일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선과 일본 간에 서구적 형식의 조약이 체결됐다.
이른바 강화도조약. 강화도조약의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다.
조일수호조규는 조선이 근대로 이행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이 조약은 조선이 서구 근대 국제질서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고,
한일관계에서도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교린 질서가
서구 근대의 외교제도와 관념으로 대체된 전환점이었다.
이 책은 조선과 일본 간에 조일수호조규를 맺기까지의 배경과 체결 과정을 국내외 미간 문서와 외교문서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조약 체결에 담긴 일본의 의도와 당시의 일본 정세 및 조선의 대응을 파악하고, 조선 근대사와 조일관계사의 거시적 맥락에서 조일수호조규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고찰하였다.
★ 조일수호조규에 대한 국내외 미간 문서 및 외교문서 소개
그동안 조일수호조규에 대한 연구는 일방적으로 일본인들이 기록한 사료에 의거해 이루어졌다면, 이 책은 강화도 협상 당시 조선 전권대표였던 위당 신헌의 《심행일기》를 비롯해, 일본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미간 사료에 근거한 최초의 연구이다. 따라서 지난 100년간 일본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축한 근대사 담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우리의 시각에서 근대사를 재조명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는 불평등 조약인가, 자발적으로 맺은 조규인가.
19세기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양 열강과 체결한 ‘조약’은 예외 없이 그 무력에 굴복해서 강요당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그에 반에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자발적으로 맺은 ‘조약’은 대등하고 공정한 의미에서 ‘조규’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썼다. 그 선례가 ‘청일수호조규’이다.
그렇다면 1876년 우리나라와 일본이 체결한 것은 조약인가, 조규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조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조약문의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이다. 자발적으로 맺은 조약이라는 말인데, 정말 그런 것일까.
1876년의 조일수호조규는 조선이 근대로 이행한 기점으로 평가되지만, 한편으로는 1910년 강제병합으로 이어지는 일제의 조선침략 서막을 여는 사건이기에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과정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 외교문서에 기초한 조일수호조규 해석, 조선근대사와 조일관계사의 역사적 의미 고찰
이 책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되었다.(서문 참조)
1장은 <운요호 사건과 이토 히로부미>. 운요호 사건의 경위를 규명하고 그 배후세력을 추적했다. 저자는 운요호 사건의 배경을 일본 국내 정세에서 찾고 있다. 당시 일본의 오쿠보 정권은 수구파와 급진파의 반정부 연대로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었는데, 이들을 제거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 사건을 통해 대외적 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운요호 사건이 불행한 근대 한일관계의 첫 단추임을 강조한다.
2장은 <곤경에서의 탈출: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과정>. 조약 체결을 둘러싼 강화도에서의 실제 협상 과정을 세밀하게 재구성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조선을 ‘개국’시킨 것처럼 국내외에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조선에 대해 전쟁을 벌일 능력도, 의지고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메이지유신 이래 수년간 이어져 온 조선 문제의 결착을 짓고, 국내 정치의 곤경에서 탈출하기 위해 ‘외교극’을 연출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종 조약문에는 조선 측의 의견이 적지 않게 반영되었고, 조일수호조규는 ‘불완전한 불평등 조약’이 되었다.
3장은 <조일수호조규 부속 조약의 겉가 속>. 강수관 조인희와 이사관 미야모토 오카즈 간에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부속 조약의 체결 과정을 재구성했다. 조일수호조규 자체는 조일관계의 근대적 이행에 수반되는 각종 현안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6개월 뒤에 세부조건을 다시 협의하기로 하고 매듭지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불평등 조약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부속 조약이 체결(무관세 무역, 인천과 원산의 개항, 공사 주경 등의 현안 타결)되는 과정을 통해 ‘불평등 조약 체계’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알 수 있다.
4장은 <조일수호조규 체결 전후 영국의 대조선정책>.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미간 문서를 통해 조일수호조규에 대한 영국의 인식과 대응을 분석했다. 저자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의 체결을 전후한 시기까지 영국의 대조선정책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었다고 강조한다.
5장은 <쇄국에서 개국으로: 조일수호조규와 조선의 정치사회 변화>. 조일수호조규 이후 일본의 강제병합까지 한국의 정치 사회적 근대화와 한일 관계의 특징, 한국사회의 근대성 문제를 고찰했다.
6장은 <혼돈과 새로운 기회 모색: 한국 근대정치사 속에서 조일수호조규의 의의>.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부터 광복까지 한국 근대사를 특징짓는 화두를 ‘혼돈’과 ‘새로운 기회의 모색’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해 고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