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엮으며
1 현달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오래 살았다고도 할 만하다 ― 김훤, 「자찬묘지(自撰墓誌)」
2 청풍명월을 술잔으로 삼아 장사 지냈다 ― 조운흘, 「자명(自銘)」
3 나는 망명하여 도피한 사람이다 ― 조상치, 「자표(自表)」
4 시끌시끌한 일일랑 도무지 긴치 않다 ― 박영, 「묘표(墓表)」
5 「감군은」 곡을 늘 타다가 천수를 마쳤노라 ― 상진, 「자명(自銘)」
6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 이홍준, 「자명(自銘)」
7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 ― 이황, 「자명(自銘)」
8 대의가 분명하기에 스스로 믿어 부끄러움이 없다 ― 노수신, 「암실선생자명(暗室先生自銘)」
9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고향에 묻어 다오 ― 성혼, 「묘지(墓誌)」
10 벼슬에는 뜻을 끊고 농사에 마음을 기울였다 ― 송남수, 「자지문(自誌文)」
11 느긋하고 편안하게 내 명대로 살았다 ― 홍가신, 「자명(自銘)」
12 나 홀로 나를 알 뿐 ― 권기, 「자지(自誌)」
13 죽은 뒤에나 그만두리라 ― 이준, 「자명(自銘)」
14 담백하고 고요하게 지조를 지켰노라 ― 김상용, 「자술묘명(自述墓銘)」
15 그 비루함이 나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 윤민헌, 「태비자지(苔扉自誌)」
16 슬픔과 탄식 없이 편안한 삶을 누렸도다 ― 한명욱, 「묘갈(墓碣)」
17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 금각, 「자지(自誌)」
18 대부가 직분을 유기했다면 장사 지낼 때 사(士)의 예로 한다 ― 이식, 「택구거사자서(澤癯居士自敍)」
19 인간의 모든 계책은 그림자 잡으려는 것과 같다 ― 김응조, 「학사모옹자명병서(鶴沙耄翁自銘幷序)」
20 서른을 넘긴 뒤로는 다시는 점을 치지 않았다 ― 박미, 「자지(自誌)」
21 허물을 줄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 허목, 「자명비(自銘碑)」
22 몸이 한가롭기에 일 또한 한가롭다 ― 이신하, 「자지문(自誌文)」
23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 ― 박세당, 「서계초수묘표(西溪樵叟墓表)」
24 이것이 거사가 반생 동안 겪은 영욕이다 ― 이선, 「지호거사자지(芝湖居士 自誌)」
25 뒤뚱뒤뚱 넘어지고 큰 재앙이 이어져 놀라웠을 뿐 ― 유명천, 「퇴당옹자명(退堂翁自銘)」
26 노새 타고 술병 들고 나가서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 ― 남학명, 「회은옹자서묘지(晦隱翁自序墓誌)」
27 감암에서 야위는 것이 마땅하다 ― 이재, 「자명(自銘)」
28 선영 아닌 딴 곳에 장사 지낸다면 눈을 감지 못하리라 ― 김주신, 「수장자지(壽葬自誌)」
29 이처럼 살다가 이처럼 죽어, 태허로 돌아가니 무어 걸릴 것 있으랴 ― 박필주, 「자지(自誌)」
30 입조한 30년 동안 좌우에서 돕는 자가 없었다 ― 이의현, 「자지(自誌)」
31 슬픈 일이 반이고 웃을 일이 반이다 ― 권섭, 「자술묘명(自述墓銘)」
32 허물과 모욕이 산처럼 쌓여 있다 ― 유척기, 「미음노인자명(渼陰老人自銘)」
33 뼈야 썩어도 좋다 ― 김광수, 「상고자김광수생광지(尙古子金光遂生壙誌)」
34 화합을 주장하던 내가 세상의 죄인이 되었다니 ― 원경하, 「자표(自表)」
35 재주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노닐었다 ― 남유용, 「자지(自誌)」
36 천명을 즐기거늘 무엇을 의심하랴 ― 조림, 「자명병서(自銘幷序)」
37 어리석다는 평은 정말 말 그대로가 아니랴 ― 임희성, 「재간노인자명병서(在澗老人自銘幷序)」
38 으레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겼다 ― 강세황, 「표옹자지(豹翁自誌)」
39 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말라 ― 서명응, 「자표(自表)」
40 사람됨이 보통 사람보다 못했다 ― 정일상, 「자표(自表)」
41 나 역시 세속적인 것을 면치 못했다 ― 조경, 「자명(自銘)」
42 갈아도 닳지 않는 석우가 있다 ― 오재순, 「석우명(石友銘)」
43 행적이 우뚝하고 마음이 허허로워 탕탕한 사람이 아닌가 ― 김종수, 「자표(自表)」
44 기쁨과 슬픔을 헛되이 쓰려 하지 않았다 ― 유언호, 「자지(自誌)」
45 깨닫고 보니 죽음이 가깝다 ― 유한준, 「저수자명(著叟自銘)」
46 썩은 흙과 함께 스러지리라 ― 이만수, 「자지명(自誌銘)」
47 이름이나 자취나 모두 스러지게 하련다 ― 신작, 「자서전(自敍傳)」
48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면 먼저 제 몸을 지켜야 한다 ― 남공철, 「사영거사자지(思潁居士自誌)」
49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고 곱게 다듬으려 했다 ― 정약용,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광중본(壙中本)
50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낭비일 뿐이란 말인가 ― 서유구, 「오비거사생광자표(五費居士生壙自表)」
51 올해의 운이 가 버렸구나 ― 서기수, 「자표(自表)」
52 전형이 여기서 인몰될까 두렵다 ― 유정주, 「자지(自誌)」
53 남들은 나를 늙은 농사꾼으로 대해 주지 않는다 ― 이유원, 「자갈명(自碣銘)」
54 백 세대 뒤에라도 옹의 실질을 알리라 ― 김평묵, 「중암노옹자지명병서(重庵老翁自誌銘幷序)」
55 문을 닫아걸고 의리를 지켰다 ― 전우, 「자지(自誌)」
56 나라가 망하자 사흘 동안 흰옷을 입고 슬픔을 표했다 ― 김택영, 「자지(自誌)」
57 행적의 글을 스스로 지어 후손에게 밝힌다 ― 유원성, 「모옹자명(帽翁自銘)」
58 일본의 신민이 될 수는 없소 ― 이건승, 「경재거사자지(耕齋居士自誌)」
보론 자찬묘비ㆍ묘지와 자찬만시
원문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