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세계를 움직인 그리스 수사학의 거장 4인, 연설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끈 페리클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꿈을 구상해 준 이소크라테스.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만이 훌륭한 연설가가 될 수 있다. 그리스 수사학의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이다.
예증법, 연상 작용, 대조법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수사학자의 ′주관적인 진실′은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언어의 구성적인 힘은 바로 역사를 창조하는 동력을 만들어 낸다. 찬양과 비난의 균형, 과장과 축소의 미학을 보여 준 아테네 전설적인 연설가 4인, 그들이 ′말의 힘′으로 다수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는 열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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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5년 10월 8일자
최근작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페르시아전쟁 이후 아테네를 강국으로 만든 지도자로서, 정치개혁으로 민주주의를 꽃 피웠을 뿐만 아니라, 아크로폴리스를 완성하고 문화예술 부흥에도 힘썼다. 뛰어난 웅변술을 갖춘 군인으로서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도했다.
최근작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유산을 빼돌린 친척에게서 재산을 되찾기 위해 웅변술을 배웠다. 아테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리스가 연합하여 마케도니아의 제국주의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여 박해받았다.
최근작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나는 시민이다> … 총 164종 (모두보기) 소개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서양고대철학, 플라톤),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서양고전학, 호메로스)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박사학위(서양고전학,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HK교원)로 재직 중이다. 서양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 고전기 아테네의 수사학과 철학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저...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서양고대철학, 플라톤),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서양고전학, 호메로스)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박사학위(서양고전학,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HK교원)로 재직 중이다. 서양 고대 그리스의 문학과 신화, 고전기 아테네의 수사학과 철학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저서가 있고, 역서로는 『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그리스 지도자들에게 고함』, 『‘어떤 철학’의 변명』 등이 있다.
최근작 :<문명의 발자국> ,<고전의 고전> … 총 7종 (모두보기) 소개 :서양 고전학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서양 고전학 협동 과정에서 아이스킬로스의 「자비로운 여신들」 연구로 석사 학위를, 투키디데스의 역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 역사 문헌을 연구하며 번역하는 일을 한다. 지은 책으로『 고전의 고전』(공저),『 문명의 발자국』(공저), 옮긴 책으로『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공역) 등이 있다.
민음사
최근작 :<이야기꾼들> ,<토카타> ,<패브릭> 등 총 2,077종
대표분야 :고전 1위 (브랜드 지수 6,093,974점), 일본소설 3위 (브랜드 지수 832,147점),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4위 (브랜드 지수 1,222,518점)
그리스 원전 국내 최초 번역!
"언어에는 역사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그리스 수사학의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이었다. 아테네의 전설적인 연설가들이 찬양과 비난의 균형, 과장과 축소의 미학을 보여 주면서 '말의 힘'으로 다수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열정 때문이었다. 전쟁에 지친 국민을 단호하게 이끈 페리클레스, 가장 뛰어난 법정연설문 작성자였던 뤼시아스, 정치적 수사와 ‘올바른 삶’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소크라테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최고 웅변가가 된 데모스테네스, 세계 역사를 움직인 그리스 수사학의 거장 4인의 대표 연설을 통해 언어의 힘을 배운다.
“그런데 말은 동일한 것에 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중대한 일을 평범한 것으로 만들고, 사소한 것들을 중대한 것처럼 옷 입힐 수 있으며, 옛날의 일들을 최신의 것처럼 기술하고, 최근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고풍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주제로 삼아 먼저 말했어도 그 주제에 관해 말하는 것을 더 이상 피해서는 안 되며,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말하려고 시도해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올바른 생각을 말로 옮겨 설득으로 이끈다
정치 생활의 대부분은 말로 설득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말로써 자신의 이상을 표현할 수 있기에 말, 곧 연설은 민주주의의 꽃이다. 연설문과 수사학의 시작은 그리스 고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의 힘에 예민하게 주목했던 옛 그리스 사람들은 말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사회와 정치체제를 구상”했다. 올바른 생각을 말로 옮겨 시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의 공론장과 유사한 민주적인 정치체제였다.
말로써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용기를 갖게 하는 언어의 마법,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아내며 절망의 폐허에서 희망의 왕국을 짓는 언어의 연금술, 그것을 그리스인들은 ‘연설가(rhetor)의 기술(-ike)’, 곧 ‘수사학(Rhetorike)’이라고 불렀다.
설득의 달인 4인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페리클레스는 군인이면서 동시에 대중 설득에 능한 뛰어난 정치가였다. 뤼시아스는 저명한 법정 연설문 작성가로, 그의 변론은 아테네 최고의 승률을 자랑했다고 한다.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여 속도감 넘치는 연설이 특징이다.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교사였던 이소크라테스의 수사학교를 세우고 탁월한 연설가와 정치가를 키워 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플라톤아카데미와 경쟁했으며, 플라톤이 그의 이론적 토대를 빌리기도 했다. 데모스테네스는 격정적이며 화려한 문체를 유감없이 발휘해 의회연설에서 최고의 기량을 떨쳤다. 데모스테네스는 “정치적인 직위를 차지하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펼치는 대신, 대중 앞에 서서 연설로 설득을 일궈 냄으로써 정치적인 신념을 아테네에 실현했던 진정한 의미의 수사적 영웅”이었다.
4인의 연설가를 통해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톺아보기
수사학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도 더불어 꽃피웠다. 이 시기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가 꽃핀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와 문화 모두 균형 있게 발전했던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이 책으로 톺아볼 수 있다.
4인 중 유일하게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도했다. “스파르타의 위용에 움찔하던 아테네인들을 독려하여 기어이 전쟁터로 이끌어 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연설가”였다. 설득의 달인이었던 페리클레스의 독려로 아테네인들은 전쟁을 감수하지만, 결과는 패배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상 정치의 리더십을 보여 준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진행된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 났고, 패전국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과두정파(30인 참주)가 권력을 잡으면서 민주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에 박해받던 민주투사 뤼시아스는 후에 자신의 형을 죽인 참주 에라토스테네스를 고소하였다. 뤼시아스는 “사원(私怨)의 차원을 넘어 공분(公憤)의 수준에서 에라토스테네스와 함께했던 무리들에 대한 처벌과 과거 청산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을 위한 “정치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서 연설가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보고, 그리스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정치적인 처방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소크라테스의 연설문과 서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 이념적인 토대를 제공했으리라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의 침략 위협에 직면해 있을 때, 아테네의 민주정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일찍이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이 품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감지하고 그를 경계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줄곧 던졌다. 아테네인들은 마케도니아를 과소평가하였지만, 데모스테네스만은 마케도니아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4인의 연설가를 통해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톺아보기
수사학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도 더불어 꽃피웠다. 이 시기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가 꽃핀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와 문화 모두 균형 있게 발전했던 그리스 고전기 역사를 이 책으로 톺아볼 수 있다.
4인 중 유일하게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을 주도했다. “스파르타의 위용에 움찔하던 아테네인들을 독려하여 기어이 전쟁터로 이끌어 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연설가”였다. 설득의 달인이었던 페리클레스의 독려로 아테네인들은 전쟁을 감수하지만, 결과는 패배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상 정치의 리더십을 보여 준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진행된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 났고, 패전국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과두정파(30인 참주)가 권력을 잡으면서 민주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에 박해받던 민주투사 뤼시아스는 후에 자신의 형을 죽인 참주 에라토스테네스를 고소하였다. 뤼시아스는 “사원(私怨)의 차원을 넘어 공분(公憤)의 수준에서 에라토스테네스와 함께했던 무리들에 대한 처벌과 과거 청산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을 위한 “정치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서 연설가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보고, 그리스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정치적인 처방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소크라테스의 연설문과 서신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 이념적인 토대를 제공했으리라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의 침략 위협에 직면해 있을 때, 아테네의 민주정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일찍이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이 품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감지하고 그를 경계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줄곧 던졌다. 아테네인들은 마케도니아를 과소평가하였지만, 데모스테네스만은 마케도니아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