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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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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시선 254권.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어성전의 봄'으로 등단한 이은옥 시인의 시집. 이은옥 시인이 등단한 지 이십 년 만에 출간하는 첫 시집이다. 이은옥 시인의 등단작 '어성전의 봄'을 포함한 68편의 주옥같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나에게는 천 개의 서랍이 있다>의 언어들은 쪼개지고 흩어져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잘게 부서진 언어의 파편들에 의해 시는 더 자잘하고 세밀한 이미지를 갖는다. 이 언어와 이미지가 재구성될 때(마치 콜라주처럼) 시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구체화된다. 독자들에게도 말이다. 시적 언어뿐 아니라 크게는 시집에 담긴 하나하나의 시들이 이은옥 시인이 포착하고 오래 간직해 둔 삶의 이미지이며 재구성될 파편들이다. 시인이 한 권의 시집을 펴내기까지의 오랜 기다림은 제2부, 단 하나의 '간극'에 담았다. : 기억이 바래 가면서 액자만 남고 그림은 사라져 간다. 부재한 기억 주변을 서성거리는 검은 개처럼 그녀는 무언가를 기다린다. 허나 이는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기다림을 기다릴 뿐이다. 혹은 기다림의 자세를 기다린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그녀가 사진을 찍듯이 과거의 기억을 가두거나 삶을 수집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말을 기다림으로서 살아 내기 위함이 아닌가. 부재가 삶을 점령하여 허겁지겁 허무를 메우는 데 급급한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그녀는 빈 액자를 자신이 살아 낸 말로 채워 내고 있다. 그녀의 시는 텅 빈 액자를 채울 한 장의 이미지이고 싶은 것이리라. 말이 삶을 기억해 내고 삶이 말을 기억해 내어 서로의 결함 혹은 결핍을 채워 나가는 그러한 이미지 말이다. 물론 말이든, 삶이든 그것이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시인은 얼마간은 스카프를 두르듯 불안을 삶에 두르고 살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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