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극우 포퓰리즘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며, 엘리사 레위스와 로맹 슬리틴은 “대체 우리의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생길 걸까?”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에서부터 아르헨티나, 튀니지, 아이슬란드, 브라질, 스페인 등을 오가며 2년 동안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국회의원, 공무원 등을 포함해 8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을까?” 두 저자는 이 뜬금없고 도발적인 질문으로 첫 장을 연다. 규칙적으로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언론의 자유도 보장받는다. 투표소, 투표용지, 투표함, 정당과 선거운동, 선거 명부, 선거사무소, 그리고 밀봉된 투표함도 있다. 모든 것이 우리가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다는 확실한 보증 수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민주주의의 명확성은 종말에 이르렀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분노하는 사람들’, ‘오큐파이 운동’, ‘봉기의 밤’이 그 증거다. 더 나아가 “현대의 민주주의 체제는 그 초기 설계자들이 민주주의에 반대해서 만든 정부 형태에서 온 것”이라는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의 말을 언급하며, 선거에 의한 대의 체제를 민주주의의 최종 형태로 보는 것은 신화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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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7년 4월 20일자
최근작 :<시민 쿠데타>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기획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미래 사회의 정치경제 모델을 탐구하며, 민주주의의 혁신 방안들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 책은 2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지역 의원, 국회의원 등 80명에 가까운 민주주의의 실험가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물이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염증이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민 쿠데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최근작 :<시민 쿠데타>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정치학과 교수이자 컨설턴트다. 미래 사회의 정치경제 모델을 탐구하며, 민주주의의 혁신 방안들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 책은 2년 동안 전 세계에 걸쳐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지역 의원, 국회의원 등 80명에 가까운 민주주의의 실험가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물이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염증이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민 쿠데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최근작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2> … 총 12종 (모두보기) 소개 :1966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에서 철학, 문화콘텐츠학을, 프랑스 렌느대학에서 언어학, 사회학, 심리학, 수학을 공부했다. 경남대, 한국외대, 경희사이버대 등에서 인문학을 강의했고 시사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국제문제평론가로 언론과 방송사에 기고, 출연하면서 인문결연구소에서 프랑스어, 인문학을 강의하고 프랑스에 오가며 음향 고고학을 연구 중이다.
‘피로한’ 정치를 넘어
‘필요한’ 정치로!
분노와 혐오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를 찾아 나선 2년간의 세계 일주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에 맞서 우리는 구체적인 유토피아,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다시 걸머지고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_본문 가운데
2011년 아랍에서 시작된 바람이 유럽과 미국을 거쳐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분노하는 사람들’의 전 지구적 집회가 한동안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이 바람은 쉬 꺼지지 않고 2014년 홍콩의 우산 혁명, 2016년 프랑스의 ‘봉기의 밤’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언하고, 미국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가 당선되었으며, 프랑스는 선거 때마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극우 포퓰리즘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며, 엘리사 레위스와 로맹 슬리틴은 “대체 우리의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생길 걸까?”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짐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에서부터 아르헨티나, 튀니지, 아이슬란드, 브라질, 스페인 등을 오가며 2년 동안 일반 시민, 시민 활동가, 연구원, 해커, 국회의원, 공무원 등을 포함해 8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들이 지나간 장소는 민주주의의 막다른 골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치를 위한 혁신적 실험들이 꽃 피우고 있는 곳이었고, 이들이 만난 사람들은 그 실험실의 가장 열정적인 연구자이자 실천가였다. 상상력의 힘을 믿으면서 동시에 그 상상을 행동으로, 변화로 거침없이 일구어 내는 이들의 목소리들을 책 한 권에 오롯이 담았다.
희망은 투표소에서 자라지 않는다
대표 없는 정치를 상상하라!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 원리는 자유다. …… 자유의 한 가지 징표는 차례로 돌아가면서 지배하고 지배되는 것이다.”_본문 가운데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을까?” 두 저자는 이 뜬금없고 도발적인 질문으로 첫 장을 연다. 규칙적으로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언론의 자유도 보장받는다. 투표소, 투표용지, 투표함, 정당과 선거운동, 선거 명부, 선거사무소, 그리고 밀봉된 투표함도 있다. 모든 것이 우리가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다는 확실한 보증 수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민주주의의 명확성은 종말에 이르렀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분노하는 사람들’, ‘오큐파이 운동’, ‘봉기의 밤’이 그 증거다. 더 나아가 “현대의 민주주의 체제는 그 초기 설계자들이 민주주의에 반대해서 만든 정부 형태에서 온 것”이라는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의 말을 언급하며, 선거에 의한 대의 체제를 민주주의의 최종 형태로 보는 것은 신화라고 주장한다.
18세기에 설계된 대의 민주주의는 사실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민주주의를 혼란과 폭력, 그리고 빈민들의 지배와 연결시킨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프랑스혁명 시기 제3신분을 대표했던 시예스 신부는 노동의 분업을 정치 분야에도 적용시켜 직업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은 “시민 정신은 중간자의 손을 거쳐, 즉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비로소 순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치는 ‘계몽된 엘리트’들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사실상 18세기 말 ‘민주 혁명’이라는 것은 ‘세속 귀족 계급제’를 ‘선출 귀족 계급제’로 바꾼 것이었다”고 단언한다.
결국 오늘날의 정치는 “국민은 투표, 나머지는 정치인이!”라는 구호에 막혀 버렸다. 그 사이 정치는 권력을 가진 소수의 손에서 직업화되고, 선출되지도 않은 전문가들에 의해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며, 정작 정치가 필요한 곳에 공백이 발생하는 직무 유기가 횡행하게 되었다. 그 틈을 뚫고 “그들은 우리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 쿠데타』는 이러한 움직임을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된 과두제적 상황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는 시도로 읽어 내면서, 모두가 동참해야 할 ‘시민 쿠데타’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크라우드 소싱 시대의 민주주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인간의 활동은 무르익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 꽃이 핀다.”_본문 가운데
1장에서 계급화된 선거전과 정권 유지를 위한 직업적 기계로 전락한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톺아본 두 저자는 다음 장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들을 찾아 나선다. 몇몇 관찰자들은 ‘광장의 정치’를 지켜보며, 거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데서 끝이 날 뿐, 그것이 변화를 일궈 낼 만큼 하나의 힘으로 모아지지 않는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하지만 민주 혁신의 여행을 하고 돌아온 두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스페인에서도, 아이슬란드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광장의 정치가 끝난 곳에서 새로운 정치를 준비하는 변화의 싹이 텄다. 그들은 정당 구조 안팎에서 기존의 시스템을 뒤흔들 새로운 위임 정치를 모색하기도 하고(2장), 아예 입법부를 위협할 만큼 급진적인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도 하며(3장), 행정 권력을 감시하고(4장), 궁극적으로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에서 자기 삶과 맞닿은 구체적인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온갖 혁신 방안(5장)들을 내놓고 있다.
저자들은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를 위임 정치의 실종에서 찾는다. 정치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단기적 권력 쟁취 논리에만 매몰되어 지지자들로부터 격리돼 있다. 스페인 시위대 ‘분노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정당 ‘포데모스’, 스웨덴에서 시작해 전 유럽으로 확산된 ‘해적당’, 아르헨티나 ‘네트워크 당’은 시민과 정당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등장했다. 이들 당 소속 의원들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 주제 선정부터 선거 전략까지 평당원들과 거의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당원들의 토론 결과 결정된 사항을 의회에 전달하는 심부름꾼을 자처한다. ‘절대 위임 정치’에 가까운 이러한 대의정치의 실현은 시빅 테크civic-tech라 불리는 온라인 협업 도구들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포데모스의 ‘포데모스 광장 포럼’, 해적당의 ‘리퀴드 피드백’, 네트워크 당의 ‘데모크라시 OS’ 같은 애플리케이션이나 플랫폼은 온라인에서 광장 정치를 실현하고, 평등하고 참여적인 토론 문화 속에서 일반의지를 도출함으로써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
『시민 쿠데타』에서 이러한 온라인 협업 기술은 거의 모든 정치 혁신에 없어서는 안 될 수단으로 등장한다. 선거전을 치르기 위해 지지자를 모으거나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위임의 도구로 쓰일 뿐 아니라, 대의정치를 넘어 시민 발의제나 행정 감시단처럼 시민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핀란드의 민주주의 활동가이자 스타트업 사업가 요나스 페카넨이 만든 ‘오픈 미니스트리’를 들 수 있다. 이 플랫폼은 핀란드에서 2012년 채택된 ‘시민발의법’을 지원하려는 의도로 설계되어 시민들 스스로 입법가가 되도록 법안 발의의 전 과정을 돕는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토론을 하고 그 아이디어의 타당성과 법률적 요건을 검토한 뒤, 실제 법안 작성에서 시민 발의에 필요한 지지자를 동원하는 전략까지 단계별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민 발의로 상정된 법안 12건 중 6건이 ‘오픈 미니스트리’ 솔루션을 통해 채택되었고, 그중 ‘동성 간 결혼 법안’은 의회의 승인까지 받았다.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시빅 테크의 활약과 시민들의 변화를 향한 열망이 결합한 결과는 놀랍다. 포데모스는 창당 2년 만에 국회의원 71명을 당선시키며 제3당의 자리에 올랐고,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지난 2016년 총선으로 원내 제2당이 되는 쾌거를 거두었다. 정당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선거에 나갈 후보를 뽑는 〈라프리메르〉, 온라인에서 국회에서 일할 국회의원을 공개 모집하는 〈나의목소리〉 같은 시도들처럼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추첨 민주주의’를 21세기 버전으로 부활시키려는 시도까지 등장하고 있다. 『시민 쿠데타』는 이처럼 디지털과 크라우드 소싱 시대에 걸맞게 진화해 나가는 민주주의의 오늘을 치밀하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 혁명 가이드북!
“모든 것이 정치다!”_본문 가운데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정부, 분노한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 총리의 사퇴와 개헌 요구까지……,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2008년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국가 경제가 지금껏 엄청난 부채와 투기자본으로 지탱돼 왔으며, 그마저도 무너져 버렸다는 사실을 하루아침에 깨닫는다. 정부의 부패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고, 분노한 시민들은 숟가락과 냄비를 들고 국회 앞 광장에 모여들어 정권 교체를 외쳤다. 이듬해 아이슬란드 역사상 첫 좌파 정부가 들어섰고, 시민 대표를 뽑아서 그들에게 개헌 권한을 주기로 결정한다. “아이슬란드 국민 절반이 국가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만큼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이 “전대미문의 중대한 정치 실험”은 “모든 국가적 결정에 국민들을 참여시킬 정도로 가장 진보적인 헌법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슬란드 해적당 국회의원이자 시인인 비르기타 욘스도티르는 “위기는 우리의 깊은 열망을 깨우고 특별한 에너지를 방출한다”고 말한다. 지난겨울, 우리는 이 특별한 에너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느꼈다. 그 비정형의 거대한 에너지가 어느 곳을 향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시민 쿠데타』에 담긴 가슴 뛰는 전망들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 이를 수 있는 도구는 이미 이 책 안에,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웠던 이들의 열망 안에 준비되어 있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느끼는 피로감은 당연하다. 선거철마다 “국민의 메시지를 들었다”든가, “이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의 립 서비스에 지쳤다면, 이 책이 그 피로감을 해소해 줄 것이다. ‘선거만이 정치의 시작과 끝이 아니다. 모든 것이 정치다’라고 외치는 이 책은 우리에게 여전히 정치가 필요하며, 그 정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삶에 와 닿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낸 임상훈 선생이 혁신적인 민주주의 현장들을 생생한 우리말로 친절히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