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넘어 비로소 첫 작품을 발표했고 팔 년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다섯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음에도 세월이 지날수록 재평가되며 꾸준히 새로운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가가 있다. 1960년대 패전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일본을 뒤로하고 유학길에 올라 십삼 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했고, 귀국 후에는 연구자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로 왕성히 활동했던 스가 아쓰코다.
그녀의 첫 에세이이자 제30회 여류문학상과 제7회 고단샤 에세이상을 수상한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비롯,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베네치아의 종소리>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모두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사유한 한 청춘의 기록이자, 2차대전 직후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가톨릭 학생운동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이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궤적을 남긴 밀라노 생활에서 만난 문학과 친구, 도시의 정경을 회상하는 스가 아쓰코의 첫 작품집이다. 세월과 함께 아련한 기억 너머로 사라진 이들의 흔적을 사려 깊게 더듬어가며, 십삼 년간 거주했던 밀라노 외에도 베네치아, 나폴리, 페루자, 트리에스테 등의 도시와 명소를 돌아보며 받은 감회를 유려하게 풀어냈다.
한 편의 서정시를 연상시키는 표제작을 비롯한 열두 편의 에세이 중 여섯 편은 움베르토 사바, 조반니 파스콜리, 알레산드로 만초니,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등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문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글로 이루어져 있어 번역가와 문학자로서도 익히 인정받은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아련한 안개 냄새_7
체데르나의 밀라노, 나의 밀라노_17
프로슈티 선생님의 파스콜리_33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_51
세르조 모란도의 친구들_77
가티의 등_93
버찌와 운하와 브리안차_113
마리아 보토니의 긴 여행_131
반짝이는 바다 앞 트리에스테_151
철도원의 집_171
무대 위의 베네치아_191
안토니오의 대성당_209
후기_226
송태욱 (옮긴이)의 말
스가 아쓰코가 밀라노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서유럽은 역사상 인간 정신이 가장 고상하게 발현된 시기였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신분, 학력, 피부색, 국적, 나이, 빈부 너머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빛, 목소리, 마음에 직접 가닿는다. 사람을 그야말로 사람으로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