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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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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형식실험을 통해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강렬하게 표출해온 김사과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여전히 암담하지만, 격정적으로 내달리던 그의 서술은 이제 그 호흡을 고르고 냉철하게 이 세계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더 나쁜 쪽으로’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세계가 완전히 끝장난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아직 더 나쁜 쪽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비교급의 희망을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번 소설집의 값진 발견이다. 1부에 실린 소설들은 한국이라는 좁은 무대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소설의 최근 경향을 보여준다. 공간적 배경이 외국으로 설정된 작품뿐만 아니라 구사되는 언어의 경계마저 허물어진 전위적인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특유의 냉철한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좀더 깊이 관찰하고 비판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3부에는 그가 쓴 시들이 처음 묶였다. 장르가 바뀌어도 현대사회를 향한 신랄한 비판과 뚜렷한 저항의식은 여전하다. 1부와 2부에서 접한 소설 속 인물의 육성이 3부의 시 속에서 문득 들려오는 경험으로 독서를 완결함으로써, 이 소설집을 김사과가 구축해낸 또하나의 완전한 작품세계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1부 : 김사과 소설의 인물들은 뉴욕과 서울의 현재를 살아나가는 환상 없는 세대다. 그들은 메갈로폴리스라는 광야에서 완충재 없이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는 현대의 인간들이다. 애정, 낭만적인 꿈, 가족의 살가움, 살고자 하는 의지, 우정뿐 아니라 최소한의 공동체적 정서를 일깨우는 모국어라고 하는 완충재마저 희미해진 인물들이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불일치들을 오가는 불명확한 지도들”뿐이다.
주어 없이 말해지고 있는 『더 나쁜 쪽으로』의 주어는 현대사회일 수도 있고, 그 사회의 벌거벗은 현대인일 수도 있다. 어느 주어든, 술어는 더 나쁜 쪽으로 간다. 소설의 인물들은 젊지만 그들이 헤매는 광야에선 그 젊음도 가치 없이 쓰이고 버려지며 대부분 거추장스러워진다. 그들은 광야에서 스스로 이야기가 된다. 당대와 이만큼이나 예민하게 조응하는 김사과의 감각은 보기 드문 것이다. : 『더 나쁜 쪽으로』가 그리는 것은 세계의 조망 불가능 자체다. 이 세계는 조망되지 않는다. 우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식할 수 없고, 우리 자신에게 닥친 일조차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눈이 멀었고, 우리는 감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일시적으로 반응할 따름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인간조차 아니다…… 이 소설이 무표정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제시하는 이 진실을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까.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더 나쁜 쪽으로 갈 수 있을까? 최소한 김사과의 소설은 그것을 긍정한다. 우리는 더 나빠질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중앙일보 2017년 8월 12일자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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