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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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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박유경의 <여흥상사>. 우연히 친구의 죽음에 휘말린 세 남녀 주인공들의 각기 상황과 기억을 정밀하게 추적하고 그 사건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훼손하고 변형시켜놓았는지를 복기한다.
호기심과 치기 어린 일탈로 시작된 작은 사건. 그 사건이 여흥을 넘어선 범죄가 되고 '가해'와 '피해'의 객관적 사실이 개인의 기억으로 인해 뒤바뀌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파헤친다. 이어서 우리가 믿는 것이 '선'이고 너희가 믿는 것이 '악'이라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현 세태에 대한 문학적 질문을 함으로써 '여흥'의 이면에 꿈틀거리는 숨은 의미를 그려내고 있다. 한 친구의 죽음에 관여했던 고교 시절 친구들이 8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나 그때의 일을 재현한다면? 소설은 위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화자인 주은은 고교 시절 재우와 사귀면서 재우의 단짝인 영민과도 잘 어울리게 된다. 셋은 부모님이 인도네시아 공장 일로 부재한 영민의 집 '401호'를 아지트 삼아 미드를 보거나 B급 공포 영화를 주로 본다. 영민은 그 모임을 '여흥상사'라고 부른다. : 『여흥상사』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탈이 어떻게 여흥을 넘어선 범죄가 되고 직접적 위험에 접속하는지, 최선의 경계를 잃어버린 젊음의 불안 심리와 두려움을 그려낸다. 값을 치르지 않은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언제고 돌아와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의 발목을 잡는다. 그것은 많은 소설과 영화 속에서 법률적 단죄로, 개인적 응징으로, 때론 초자연적 현상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로 인해 되살아난 죄책감은 우리 일상에서 자기도 모르게 신경이 쓰여 계속 만지작거리게 되는 목의 가려운 얼룩처럼 잠복해 있을 것이다. 소설은 감추고 싶은 그 얼룩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일상의 파국을 극한까지 끌고 가는 집요한 시선을 독자 앞에 드러낸다. : 한때 소년의 방이었던 공간. 네 사람이 있었고, 이젠 세 사람뿐이다. 소년들과 소녀와 말랑말랑한 캡슐에 싸인 흰색 알약. 여흥을 즐기기 위해 시작한 ‘여흥상사’에 대한 기억은 커다란 구덩이가 되었다. 피부 위로 퍼진 불길한 질병처럼 더는 도망칠 방법이 없다. : 죄를 감추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마음속에 지옥을 안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말끔한 겉모습 뒤 메말라가는 일상.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진흙탕으로 뛰어들었지만 발밑은 꺼져간다. 진흙탕 싸움의 끝은? : 쉬지 않고 읽을 정도로 흡인력 있다.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점점 커져 삶을 뒤덮는 ‘불안’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YES24 문학상’이 있다면 수상작이어도 좋을 작품. : 친구의 죽음에 휘말려 자신은 피해자, 상대방은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해자와 목격자, 선과 악,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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