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분자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려는 책이다. 이 책의 중심적인 물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근대 이후 우리가 생명을 보는 관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분자적 패러다임이 수립된 역사적·사회적 맥락은 무엇인가? 이 패러다임은 오늘날 우리가 생명을 보는 관점뿐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생물학이나 생명공학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흔히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1953), 재조합 DNA 기술(1973), 인간유전체계획(1990-2003) 등의 일련의 중요한 사건들이 순조롭고 매끄럽게 진행된 것처럼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생물학의 역사 또한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생물학의 전개과정이 마치 누적적이고 선형적(線形的)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사후적으로 다른 관점이나 패배한 이론들을 간과하고 갈등이나 경합과정을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흐름이 결코 한번도 매끄럽게 진행된 적은 없었다. 사후적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갈등과 논쟁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현재의 생명관이나 패러다임이 유일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최근작 :<호모 퍼블리쿠스와 PR의 미래> ,<왜 과학이 문제일까?> ,<생명은 어떻게 정보가 되었는가> … 총 119종 (모두보기) 소개 :과학사회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고려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과학기술학연구소 교수를 지냈다. 과학기술과 사회를 주제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왜 과학이 문제일까?』 『생명의 사회사』 『생명은 어떻게 정보가 되었는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인간과 가축의 역사』 『판다의 엄지』 『생명공학의 윤리』(전3권) 『인간에 대한 오해』 등이 있다.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공역)로 2023년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받았다.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근대 이후 우리가 생명을 보는 관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분자적 패러다임이 수립된 역사적・사회적 맥락은 무엇인가?
이 패러다임은 오늘날 우리가 생명을 보는 관점뿐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생명을 보는 관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모든 시대에 걸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무엇이다.
그런 면에서 분자적 관점은 우리 시대에 형성된 독특한 생명관이라고 할 수 있다.
DNA와 유전자라는 주제는 어느새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이중나선 구조의 상징물은 생명공학 기업의 상표뿐 아니라 친근한 화장품 광고 속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아름다운 연예인이나 실력이 뛰어난 운동선수를 가리키면서 “DNA를 타고났다”라든가 “유전자가 남
다르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육체적 특성뿐 아니라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이거나 학문적 업적을 이룬 사람을 언급할 때면 직계 가족이나 친척들 중에서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서 유전적 연관성을 지적하곤 한다. 과학사회학자 이블린 폭스 켈러는 DNA가 생명공학과 그 연관 분야들을 넘어서 일반인들의 담론과 광고의 소재로까지 등장하면서 우리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문화적 상징물(cultural icon)이 되었다고 말한다.
『생명의 사회사』는 생명의 분자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려는 책이다. 이 책의 중심적인 물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근대 이후 우리가 생명을 보는 관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분자적 패러다임이 수립된 역사적・사회적 맥락은 무엇인가? 이 패러다임은 오늘날 우리가 생명을 보는 관점뿐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생물학이나 생명공학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흔히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1953), 재조합 DNA 기술(1973), 인간유전체계획(1990-2003) 등의 일련의 중요한 사건들이 순조롭고 매끄럽게 진행된 것처럼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생물학의 역사 또한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생물학의 전개과정이 마치 누적적이고 선형적(線形的)인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사후적으로 다른 관점이나 패배한 이론들을 간과하고 갈등이나 경합과정을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흐름이 결코 한번도 매끄럽게 진행된 적은 없었다. 사후적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갈등과 논쟁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현재의 생명관이나 패러다임이 유일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생명의 사회사’이지만 이 연구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과학사의 하위 영역으로 생명과학의 역사를 지향하지 않으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명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러한 역사적 흐름이 오늘날 생명공학을 형성해온 사회적 맥락을 추적하려 한다.
과학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연구주제로 삼고,
인적 자원 및 연구비가 필요한 사회적 활동이다!
1970년대 이후 수립된 과학지식의 사회학은 과학을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로 간주한다. 오늘날 과학에는 과학자와 기술자들뿐 아니라 정부, 기업, 법률 등의 규율체계, 대학과 연구소, 언론, 시민단체 그리고 일반 대중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참여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투영되기 때문에 논쟁과 갈등이 빚어지기 마련이다.
과학 분야 중에서도 특히 생명공학은 대중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영역이다. 근대과학의 역사는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확장시켜온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생명공학은 생명현상 나아가 인간 자체까지 그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그 출발부터 안전과 윤리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 논쟁은 전문가들의 영역을 넘어 대중논쟁으로 발전했다. 이 책에서도 다루어지는 재조합 DNA 논쟁이 좋은 예이다.
오늘날 GMO, 줄기세포, 가습기 살균제, 구제역 등 과학과 연관된 주제를 둘러싼 논쟁은 일상적인 현상이 되었다. 대중은 더 이상 과학의 지지자나 후원자에 머물지 않고 과학활동의 주요 행위자로 나서고 있으며, 대중논쟁은 일탈적이거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과학활동의 정상적인 일부로 간주된다.
분자적 생명관이 수립되는 과정에서도 대중적 확산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생명현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는 생각은 멘델의 유전법칙에 대한 재해석에서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이었지만, 이런 생각이 공고화되고 대중적으로 확산된 중요한 계기는 인간유전체계획이었다.
또한 과거 노동운동이나 정치운동으로 한정되었던 사회운동이 환경, 보건, 과학기술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되면서 운동의 주제와 주체가 확장되었다. 1970년대 후반 직접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북유럽에서 보통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모형들이 개발되면서,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 과학상점, 공론조사 등 시민참여 제도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널리 채택되고 있다.
이 책의 내용
1부는 16~17세기 과학혁명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기간이며, 2부는 19세기 다윈의 시대부터 20세기 초반에 해당한다. 그리고 3부는 20세기 초에서 사회생물학 논쟁이 일어난 20세기 후반까지를 다루며, 마지막 4부는 20세기 후반에서 새로운 천년대가 시작된 이후 몇 년까지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반드시 시대순으로 서술되지는 않으며, 3부의 마지막 장인 사회생물학 논쟁과 4부 첫 번째 장인 재조합 DNA 논쟁 사례처럼 시기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이 책을 이루는 4개의 부가 이 책의 주제인 생명의 분자적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과정과 그로 인해 21세기 이후 대두한 생명의 정치경제학을 설명하려는 의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이 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3부와 4부를 예비하는 배경설명에 해당한다. 오늘날 우리가 생명에 대해 가지는 관점이 등장하게 된 전사(前史)인 셈이다. 3부와 4부는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인 생명의 분자적 패러다임과 정치경제학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