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 5
프롤로그 : 박정희 시대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 12
박정희 시대를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 박정희 시대의 대중문화? 그 질긴 선입견 | 문화로 역사를 읽는다는 것 | 대중문화로 당대의 사회심리를 읽는다 | 어쩌면 이렇게 딱딱 들어맞을까! | 박정희 시대의 사회심리
제1부 혁명과 정변, 그 격변의 시기를 향하여
불안정하고 어설픈 1950년대 ․ 27
“한국의 오늘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 대중예술사에서 1960년대는 확실히 새로운 시대 | 1950년대 한국에 웬 인도와 페르샤? | 미국을 중심으로 ‘상상지도’를 그리다
자유부인만 춤을 춘 건 아니다 ․ 40
조직폭력배와 TV와 쿠데타 | 서울에 땐스홀을 허하라? | 춤추는 것이 죄인가? | ‘자유’, 그 가슴 벅차고도 불편한 말 | 전쟁, 그것은 자유와 해방의 계기 | ‘아프레걸’이라는 신조어 | ‘자유부인’만? 그 남편들도 다르지 않았다 | 여론의 공격은 ‘남자 어른’에게 불편한 곳으로 향한다
날라리들이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 60
“어머, 전직 대통령들이 살아 있다니!” | 대통령이 양녕대군 16대손임을 들추던 시대 | 서울 장안 처녀 6할이 처녀성 상실? | 잡지에 대한 단속, 풍기 문란과 공안의 물 타기 | 자유주의적이면서 ‘아프레하지’ 않은, 온건한 절충 | 날라리들이 혁명을!
제2부 격변의 시기, 개혁과 희망
영화로 확인되는 4·19와 5·16의 연속성 ․ 79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종종 헷갈린다 | 4·19와 5·16은 종이 한 장 같은 차이? | 4·19와 5·16, 대중예술 작품의 연속성 | 합리적으로 도전적인 아들과 관용적인 부모 | 늙은 아버지가 초래한 가부장제의 위기 | 늙은 아버지의 어리석음까지도 포용하는 능력 있는 장남 | 당시의 민심은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개혁의 청년이여, 근대적 기술로 성실히 일하라 ․ 100
4·19와 5·16 사이, 어떤 작품을 기억하는가? | 날라리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 근대적 기술자, 하얀 가운과 작업복 | 생산, 노동, 개혁하는 청년 | 민심에 올라탄 5·16 정권
또순이는 돈을 모아 사장이 되었을까? ․ 116
‘또순이’란 말을 아시나요? | 이승만이 아니라 박마리아가 문제? | 당찬 여성이라도 남성의 보조자 | 돈 버는 여자를 유한마담과 동일시한 시대 | 일제 말의 일하는 여성과 달라진 지점 | 강해진 여자들 | 최은희 VS 김지미 | 김지미와 최은희는 모두 1960년대에도 살아남았다
제3부 ‘잘살아보세’의 희망과 역사라는 난제
자신의 역사를 갖고 싶은 욕망과 그 이면 ․ 135
언제 나온 노래일까? | 역사는 ‘구성’하는 것이다 |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증하는 때 | 사극의 중심은 늘 조선시대였다고? 천만에! | 궁궐이 세트장이 된 시대 | 가족물·연애물의 문법으로 읽힌 역사 | 6·25 소재 전쟁 영화의 전성시대 | 미군이 사라진 6·25전쟁 | 멋진 국군, 멋진 전쟁 | 국군인 듯 국군 아닌, 국군 같은
응답하라 1945 ․ 156
일제강점기 눈물의 트로트는 ‘나라 잃은 설움’ 때문이다? | 과도한 민족주의적 해석은 1950년대부터 | 구한말과 3·1운동에 집착하는 영화들 | 치욕스런 역사를 다룬 이유 | 복고 열풍은 왜 부는가? | 다큐드라마와 ‘만주 활극’의 인기 | 마적과 독립운동가가 뒤엉킨 만주 활극 | “내가 왜정 때 만주에서 개장사 할 적에”
〈동백아가씨〉 토사구팽 전말기 ․ 178
일장기는 봐줄 수 있는데 〈기미가요〉에는 파르르 | 늘 분노하기만 하는 ‘반일 감정’ | 트로트 부활을 견인한 〈동백아가씨〉 |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예정된 수순이다? | 트로트의 왜색 시비 재연 | 리요시코의 〈사랑의 붉은 등〉 | 방송 금지곡의 순조로운 일본 진출 | 〈동백아가씨〉는 언제 금지곡이 되었는가? | 한일 대중문화 교류는 물 건너가고 | 팽 당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 198
염장 지르는 노래 | 횡재 아니면 들어먹기 | ‘빽’ 없는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가난했던 1950년대 | 착실하게 돈 모으니, 쥐구멍에도 볕이 든다 | 가불로 살지만, 나는야 성실한 월급쟁이 | 부잣집 딸과의 사랑을 꿈꾸는 영화들 | 고속성장의 시작, 그리고 50년 후
제4부 몰아붙이니 밀려가면서도 ‘미워도 다시 한 번’
〈팔도강산〉은 독재정권의 노골적인 홍보영화였다 ․ 217
1967~1968년, 민심의 바람이 바뀌다 | 정치사와 맞물리는 대중예술사의 변화 | 조국 근대화 유람하기 | 이런 ‘어메이징’한 여행 코스라니! | 이들은 왜 여행을 했을까? |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장편 극영화 ‘광고’ | 대통령 선거 직전에 전국적 무료 관람 | 이승만 정권 때와 같은 점 혹은 다른 점 | ‘탄신’ 축하 노래를 지어 바치던 때와는 달랐다 | 대통령을 내세운 홍보성 행사의 변화 | 갑자기 많아진 주문 제작 건전가요 | 대중들의 동의를 구하던 마지막 시기
성장과 희망에서 배제된 자들과 〈미워도 다시 한 번〉 ․ 236
한국 영화사의 최고 기록 갱신 | 평론가들이 뭐라 하건 간에 | 손발 오그라드는 걸 꾹 참고 | 남편들의 불륜은 늘 있어왔건만, 왜 하필 이때에? | 희망의 거품이 살짝 꺼진 1963~1964년 | 1967~1968년, 민심의 바람이 또 바뀌다 | 성장의 혜택, 모두가 함께 나눌 수는 없었다 | 신파적 작품에 나타난 시골과 변두리 | ‘잘살아보세’ 바람에서 배제된 ‘시골’
어느 시대나 삐딱한 젊은 것들은 있었다 ․ 254
저음 가수 배호의 매력 | 듬직하고 안정감 있는 남자 가장 | 울고 싶은 세상인데도 저항적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 김기팔이란 작가를 기억하는가? | 불쌍한 아버지? 바로 아버지가 문제야! | ‘피해자 코스프레’ 좀 하지 마! | 무책임한 중년 가장과 풍비박산의 가정 | 작가의 삐딱함에 호응해줄 대중
제5부 종신 집권과 대학생과 청년문화
청년문화는 왜 하필 1970년대였을까? ․ 275
이식론, 자생론, 혼종론의 소모적 대립을 넘어서 | 한국의 ‘엘비스와 비틀스 바람’은 언제부터인가? | 한국 최초의 포크와 록 음반 | 한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베이비부머 | 청년문화, 포크, 대학생 | 판이 뒤집힌 1971년 | 국가비상사태와 〈아침이슬〉
청년문화와 정치적 진보성은 어떤 관계였는가? ․ 293
데모꾼들은 ‘김민기 노래’를 즐기지 않았다 | 머리도 가방도 자유롭게 너펄너펄 | 새로운 자유주의적 문화에 대한 각 시대의 대응법 | 자유주의적 신세대 문화가 민주주의와 손잡은 1990년대 | 히피, 민주주의, 한국의 청년문화 | 청년문화의 중심, 록이 아닌 포크였던 이유 | 자유주의 문화가 ‘조금은’ 숨 쉴 수 있었던 1970년대
드라마 〈아씨〉와 〈여로〉의 히트가 의미하는 것 ․ 311
트윈폴리오 노래와 이미자 노래, 어느 것이 먼저인가? | 대중가요가 가장 먼저, 그리고 소설과 영화 | 복고 경향을 보인 TV드라마 | 드라마 〈아씨〉에 전 국민이 감동했다고? | 〈아씨〉·〈여로〉에 대한 묘한 여론 | 전근대적이어서 근대적 조국의 주체가 되었다는 역설 | 너희 젊은이들도 순종하고 노력하면
서양적이어서 더욱 한국적일 수 있었던 청년들 ․ 328
나 영어 잘하는데, 이건 아냐! | 〈새타령〉과 〈타복네〉의 간극 |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탈춤·판소리 붐 | 장발에 탈을 쓰고 ‘얼쑤!’ | ‘박정희 나라님 잔 뺏기 공차기 누가 누가 잘하나’ | 민족문화와 박정희와 대학생 | 활주로의 〈탈춤〉은 어떻게 봐야 하나?
청년문화에 여성의 자리는 있는가? ․ 344
‘구원의 여성’과 ‘여사친’ | 이들은 ‘여류’가 아니다 | ‘여사친’ 이미지의 씩씩한 여자 가수 양희은 | 신비화된 여성 이미지 | 소녀, 성녀, 창녀? | 더디지만 분명히, 사람이 되어간 여자들
대마초 사건, 그 화려한 스리쿠션 ․ 359
수상하게 과도한 사건 | 그들은 몇 년 징역형을 받았을까? | 도대체 왜 대중음악인만 탄압했을까? | 권력자들이 비상식적이고 황당한 판단력을 지녔다고? | 대마초 사건은 저항에 대한 탄압이었나? | 저항 혹은 퇴폐? 무엇을 노린 것일까? | 날라리부터 데모꾼까지 싸잡은 이유 | 화려한 ‘스리쿠션’
에필로그 : 1975년 그 이후, 유신 말기의 나비효과 ․ 376
거품은 가라앉았다 | 처참한 대중예술계 | 공백은 메워지고 청년들은 성장한다 | 〈아침이슬〉은 어디로 갔을까? | 창작자도 가수도 아닌, 수용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의미 | 10월 유신 덕분(!)에 | 진보적 예술 문화 운동의 주체들, 1975년에 성장하다 | 사라지는 것은 없다
주 ․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