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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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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는 원래 전북 익산군 춘포면 대장촌리였지만, 대장촌(大場村)이라는 지명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1996년 춘포리로 바뀌었다. '큰 농장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대장촌은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인 지주들이 이 마을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대장촌의 영역은 전라선 철도와 만경강 사이에 있는 춘포면 남측 지역을 말한다.
일제의 조선 침탈이 시작된 을사조약 체결을 전후로 일본인 지주들이 경쟁적으로 대장촌 일대의 땅을 사들이면서, 그들은 제국주의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배로 대장촌에서 밀려날 때까지 이 동네의 완벽한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대장촌 일대 토지의 80%가 일본인 지주들의 소유였고, 대장촌 농민들 가운데 이들의 소작인이 아닌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처럼 조선인과 일본인이 이웃사촌이지만 적대적 공존관계로 살았던 이 작은 농촌마을은 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우리가 배우고 기억해야 될 것은 저항하고 투쟁했던 역사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수치스럽고 굴욕에 찬 역사는 봉인해서 언제까지 묻어 두어야 하는 것인가?"하는 물음으로 저자는 첫머리를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선택받지 못한 역사는 묻혀 버렸다. 즉 투쟁과 저항의 기억만이 남고 다른 기억들은 봉인되어 묻혀 버린 것이다. 그 시대가 총체적으로 기록되지 못하고 선택받은 사실만으로 재구성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우리가 아무리 외우고 배워도 그 시대는 손으로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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