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로서 1000건 이상의 문헌을 저술하고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한 에우젠 키로비치가 연구해온 권력의 진화사를 담은 책이다. 그는 ‘권력’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신’ ‘무기’ ‘돈’이라는 세 단어로 풀어낸다. 이는 각각 종교, 이념 등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며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징권력,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군사권력, 토지, 화폐, 자원 등으로 지배력을 지탱하는 경제권력을 의미한다.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온 권력자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이 세 가지 형태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권력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국제정세를 가늠하고 현재의 강대국과 거대 이익집단이 벌이고 있는 패권다툼의 판세를 진단하는 한편 그 미래를 전망한다.
그 밖에 EU, 다국적 기업, 테러조직, 종교단체, 시민사회 등 국가를 초월한 집단들에 대해서도 이 같은 분석과 전망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달로 급부상한 경제권력을 등에 업고 국가정치에 관여하고 있는 글로벌 거대기업, 그리고 미국 등 여러 국가의 정책 방향과 법적 제도에까지 강한 영향을 끼치며 위협적 존재로 떠오른 테러조직, 민주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시민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집단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이제 더 이상 어떤 형태의 권력도 국가만의 독점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고대 문명에서 21세기 강대국까지
인류 역사의 전환점을 만든 권력의 진화사
“권력을 둘러싼 수천 년의 미스터리가 드디어 풀린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된 고립주의 정책으로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잃고 있다. 동북아에서는 중국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새로운 냉전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중동에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발흥한 준국가 테러집단 IS도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정세의 흐름은 언제나 힘의 논리에 지배되었지만, 냉전시대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달리 극도로 빠르고 혼란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 감추어진 원리를 읽어내고 앞으로의 흐름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간 신, 무기, 돈(원제: Gods Weapons and Money)은 루마니아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로서 1000건 이상의 문헌을 저술하고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한 에우젠 키로비치가 연구해온 권력의 진화사를 담은 책이다. 그는 ‘권력’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신’ ‘무기’ ‘돈’이라는 세 단어로 풀어낸다. 이는 각각 종교, 이념 등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며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징권력,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군사권력, 토지, 화폐, 자원 등으로 지배력을 지탱하는 경제권력을 의미한다.
그는 이 세 가지 형태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권력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온 권력자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그 사실을 입증하며, 나아가 현재의 강대국과 거대 이익집단이 벌이고 있는 패권다툼의 판세를 진단하고 그 미래를 전망한다.
원초적 폭력과 공포가 지배하던 고대
인류 최초의 4대문명에서 현대의 강대국, 독재정권, 테러집단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를 지배해온 강자들이 발휘한 권력의 양상은 그 수만큼 다양했다. 가장 먼저 고대에는 수메르, 바빌론, 아시리아 등 막강한 군사력으로 패권을 장악한 제국이 많았다. 이들은 거의 배타적으로 군사권력에만 의존한 전쟁기계에 가까운 집단이었으며,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그리스, 이집트에서 인도의 서쪽까지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며 역사에 일찍이 없던 대제국을 일으킨 마케도니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들의 군사력은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사막을 가로지르며 지나는 길목에 있는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고, 당대의 최강대국이던 페르시아 제국도 무너뜨렸다. 그러나 10여 년 만에 대제국을 이룬 마케도니아도 알렉산더의 사후에 여러 개의 작은 영토로 분열되었고 결국 모두 로마제국에 흡수되고 말았다.
마케도니아가 10여 년이라는 짧은 전성기밖에 누리지 못한 것은 제국을 하나로 응집하며 시너지를 이끌어낼 상징권력의 부재 때문이었다. 제국에는 근본을 알 수 없는 스무 가지 이상의 종교 집단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병사들도 10여 가지의 서로 다른 우상을 섬겼다. 오직 타 민족과 타 국가를 무력으로 꺾고 영토를 넓히는 데만 주력했기 때문에 천재적인 리더 한 명의 죽음이 곧바로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상징권력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군사권력은 역사를 통틀어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다. 영국 철학자 칼 포퍼의 말처럼 주먹을 휘두를 자유는 상대방의 코앞에서 끝나는 법이다.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동로마제국은 1000년 이상 이어진 반면, 군사권력에만 의존했던 구습을 벗지 못한 서로마제국은 200년 만에 멸망했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호령했던 13세기의 몽골제국도 칭기즈칸이 죽은 후 내전과 분열을 거듭하며 100여 년 만에 멸망했다. 이에 반해 파라오를 신으로 숭배하며 제정일치 사회를 이룬 이집트는 3000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신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을 통해 왕국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왕과 교회의 줄다리기가 만든 중세 유럽의 역사
중세에는 상징권력이 역사의 무대에서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특히 유럽의 중세는 그리스도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종교의 힘이 막강한 시대였다. 제국의 황제도 교황의 인정을 받아야 국제적으로 황제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교회의 권력이 막강했던 만큼 교황권과 왕권의 대립 또한 첨예했다. 10세기에 오토 1세가 교황의 성유 축성을 받으며 탄생한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경제권력, 군사권력 등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로 폭력을 감춘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되었다.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한겨울에 밧줄을 목에 감고 교황에게서 용서를 받을 때까지 사흘간이나 눈밭에 서 있었던 카노사의 굴욕, 1309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그리스도교의 군대 템플기사단을 해체시키고 재산을 몰수한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1534년 영국의 헨리 8세는 아예 영국 국교회라는 새로운 교파를 만들었다. 자신의 이혼을 승인해주지 않는 교황청과 반목하기 시작한 것이 그 계기였다. 그는 새로운 상징권력을 통해 교황의 상징권력에 맞서고자 했고, 가톨릭교회가 부패했음을 알게 된 뒤 가톨릭 사제들을 처형하고 예배당을 파괴했으며, 그에 귀속된 토지를 몰수하거나 축소시켰다. 그리고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상징권력을 손에 넣음으로써 교황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의 후계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또한 중세로서는 드물게 국가의 수장으로서 군사권력과 상징권력을 모두 거머쥘 수 있었다.
교황, 또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대표되었던 중세의 상징권력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상징권력뿐이었다. 이렇듯 1000년 가까이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던 교회의 상징권력은 계몽주의, 산업혁명, 과학의 발달 등을 거치며 10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급속히 붕괴되어갔다. 그리고 급기야 정치적 이념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에게 권좌를 내주기에 이르렀다.
이념의 힘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독재와 혁명
그리스도교와 동의어에 가깝던 상징권력을 이념이 대체하면서 범슬라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자유주의, 매카시즘 등 다양한 정치적 이념이 세계의 역사를 견인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독재자들의 지배수단으로 악용된 것들도 있었다.
소련에서는 ‘외세의 억압에서 슬라브 민족을 보호하자’는 민족주의의 일종인 범슬라브주의가 독재자 스탈린에게 상징권력을 안겨주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독일의 침공을 받자, 그는 평상시의 첫마디인 ‘동지들’ 대신 ‘형제자매들이여’로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 공산주의 대신 민족주의의 언어를 사용하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사람들은 ‘어머니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가시 꼬챙이처럼 말라가면서도 여전히 대포를 만들었고, 하루 만에 1개 사단 전체가 궤멸해도 다른 사람들이 묵묵히 그 자리를 채웠다. 스탈린은 전쟁이 끝난 뒤 전쟁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수많은 군인 영웅들을 처형했지만, 그 행위는 붉은 지도자는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 앞에서 상징적으로 승인되었다. 이후 그는 반대파 제거에 박차를 가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 또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이용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자신의 파시즘을 정당화했고,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은 (매카시즘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공산주의 야당을 제거하기 위해 살인, 납치, 고문을 저지르는 공포정치로 권력을 강화했다.
이런 독재자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내세운 이념들은 대부분 거짓선전이었다. 그들은 실제로는 군사적 폭력으로 국민들을 압제했고, 모두 오래 가지 않아 권력을 잃고 말았다.
한편 공산주의는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한 레닌,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처럼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20세기 혁명가들이 얻어낸 상징적 권력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또 18세기에 대두된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은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국가에서 시민들에게로 권력이 이동하는 시민사회의 토대가 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누가 미래를 지배할 것인가
저자는 이처럼 고대에서 시작해 중세를 거쳐 현대를 관통하는 권력의 역사를 살펴본 다음,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국제정세를 가늠하고 새롭게 그려질 미래의 글로벌 패권 지도를 그려 보인다.
먼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초강대국 미국은 그 위상이 하락하고 있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지만 상징권력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001년의 9·11 사건은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도 테러 공격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 그 후에 발발한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민간인 고문을 정당화했고, 후세인의 동상이 파괴될 때 환호하던 이라크 시민들을 학대하며 그들에게 굴욕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전쟁의 명분 중 하나였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증거도 날조된 것임이 드러났다. 이제 백전백승, 불굴의 아메리카라는 이미지는 진실과 거리가 멀어졌다.
한편 소련 시절부터 군사적, 경제적으로 급속히 몰락하며 냉전의 라이벌 미국에게 밀리던 러시아는 점차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행정체제를 개혁하고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자국의 군대를 노출함으로써 세계를 향해 무시할 수 없는 힘 또한 보여주고 있다. 구세주처럼 떠받들어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적 상징도 잘 살려내고 있다. 붉은 제국(소련)이 붕괴했음에도 러시아는 아직은 군사적, 경제적 관점에서 강력한 나라다. 또 강한 구세주적 성향을 가진 이 거대한 나라의 반사신경이 국제관계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중국은 21세기 들어 G2로 급속히 떠오르며 미국을 위협하는 적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경제권력의 측면에 그치고 있다. 물론 군사력 자체는 강력하나 패권국으로서의 존재감은 부족하다. 아시아에서조차 러시아나 인도는 물론이고 미국과 손잡은 일본이 언제나 중국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산주의와 유교로 대표되는 중국의 상징권력은 다른 국가나 집단에게 받아들여지기도 쉽지 않다. 신흥 패권국이라는 중국의 이미지는 아직 허울에 머물러 있는 단계다.
경제학자부터 스포츠 스타까지, 상징권력의 진화와 시민사회의 부상
저자는 그 밖에 EU, 다국적 기업, 테러조직, 종교단체, 시민사회 등 국가를 초월한 집단들에 대해서도 이 같은 분석과 전망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달로 급부상한 경제권력을 등에 업고 국가정치에 관여하고 있는 글로벌 거대기업, 그리고 미국 등 여러 국가의 정책 방향과 법적 제도에까지 강한 영향을 끼치며 위협적 존재로 떠오른 테러조직, 민주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시민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집단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이제 더 이상 어떤 형태의 권력도 국가만의 독점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상징권력은 시민사회 개념의 확산과 함께 분화되며 폭넓은 층의 대중에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같은 18~19세기의 경제학자,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같은 19세기의 저술가를 거쳐 20세기의 저널리스트, 스포츠 스타, 팝 스타 등이 그들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대중 여론에 대한 이런 오피니언 리더의 영향력이 정치가, 정부기관, 외교단체보다 강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예컨대 국회의원이나 주지사보다 아일랜드 출신 록 밴드 U2의 보컬리스트 보노와 같은 스타들의 발언이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정치가들도 시민단체들의 대의를 기꺼이 포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가 기후온난화 문제에 적극 참여하면서 유명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시민사회는 국제무대에서 국가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며 글로벌 파워게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집단으로 떠올랐다.
군사, 경제, 이념이 만드는 신비로운 권력의 연금술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권력자들은 권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깨우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이 책은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감춰져온 권력의 비밀을 체계적으로 밝혀내는 정치역사서이자, 그 분석을 통해 세계 정세를 예측하는 미래 전망서이기도 하다. 인류사의 큰 줄기를 이뤄온 동인과 국제관계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 가장 효과적인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