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 특히 중국학의 명가인 일본 교토대학 출신 단죠 히로시 교수의 저서. 한국 최초의 영락제 전기이지만 부제가 보여주듯이 그가 구축한 '화이질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책의 주제는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화이질서'의 개념을 영락제가 독자성을 가지고 일본까지 포함시켜 어떻게 구축했는지에 대한 경과 보고다.
영락제가 아버지 태조 주원장의 후계자일 뿐 아니라 이민족 황제 쿠빌라이의 진정한 후계자를 자임했다는 사실, 이를 위해 북경으로 천도한 과정, 이후 중화제국의 수도가 북경으로 굳혀진 이유 등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천도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수완은 그가 큰 틀을 짜는 전략가일 뿐 아니라 디테일에도 능한 마키아벨리스트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역시 화이질서 완성을 향한 그의 원모로 그려진다.
첫문장
예부터 중국에서는 자기 나라를 중화中華로 불러왔다.
최근작 :<천하와 천조의 중국사> ,<영락제> … 총 4종 (모두보기) 소개 :1950년생으로 교토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주로 명 제국 시대의 정치, 제도 등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해온 학자이다. 저서로는 『명 태조 주원장』, 『명조 전제지배의 사적구조』, 『영락제—화이질서의 완성』, 『명대 해금=조공 시스템과 화이질서』, 『육해의 교착—명조의 흥망』 등이 있다.
최근작 :<[큰글자책] 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야기> ,<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야기> ,<구호기사단 천 년의 서사시> … 총 24종 (모두보기)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롯데관광과 한국토지공사(현 LH), 세종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근무했다. 여의도청년회의소와 역사민주올레모임, 사마천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쟁사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역사를 연구하며 집필과 답사,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표작 『강남의 탄생』(2016)을 비롯하여 『2차대전의 마이너리그』(2015, 진중문고 선정), 『서서울에 가면 우리는』(2018, 세종도서 선정), 『구호기사단 천 년의 서사시』(2023), 『이스라엘 국방군 제7기갑여단사』(2023), 『미 해병대 이야기』(2021), 『라면의 재발견』(2021), 『제갈량과 한니발, 두 남자 이야기』(2013), 『세상을 만든 여행자들』(2010)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영락제』(2017), 『환관 이야기』(2015), 『제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2012) 등이 있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왕조들, 특히 동양의 왕조들은 창업주 이후 영명한 2세가 유혈을 감수하고 선대가 남긴 터전을 굳히는 경우가 많다. 당 태종 이세민, 고려의 광종, 조선의 태종 이방원, 청 태종 홍타이지 등이 그런 대표적인 군주들이다.
그중에서 명 성조 영락제는 가장 많은 피를 보았고, 그가 미친 영향력이 동아시아 전체에 길고 짙게 드리워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영락제는 한국에서도 지명도가 높고 무협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황제다.
북경 패키지 투어를 하는 한국인들이 만리장성을 가면서 반드시 들르는 지하궁전이 있는 장릉(長陵)이 바로 영락제의 능이다. 그런데 ‘지명도’에 어울리지 않게 우리나라에서 그의 전기나 평전이 번역본을 포함해 한 권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외다.
동양학, 특히 중국학의 명가인 일본 교토대학 출신 단죠 히로시(檀上 寬) 교수의 저서 《영락제 ― 화이질서의 완성》을 번역해 내놓는다. 역자는 최근 《강남의 탄생》과 《2차 대전의 마이너리그》로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 한종수이다. 한씨는 《환관 이야기 ― 측근 정치의 구조》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영락제 ― 화이질서의 완성》은 한국 최초의 영락제 전기이지만 부제가 보여주듯이 그가 구축한 ‘화이질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3년간 이어졌던 거대한 내전, 소위 ‘정난(靖難)’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혹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역자 역시 그랬다고 하니까. 다만 많은 무협지의 소재가 되기도 한 조카 건문제의 실종에 대해서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니 이쪽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주제는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화이질서’의 개념을 영락제가 독자성을 가지고 일본까지 포함시켜 어떻게 구축했는지에 대한 경과 보고다. 최근 사드 배치를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동아시아 (또는 세계적) 패권을 추구하고 있는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과 과거의 명 제국이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지 알아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영락제가 아버지 태조 주원장의 후계자일 뿐 아니라 이민족 황제 쿠빌라이의 진정한 후계자를 자임했다는 사실, 이를 위해 북경으로 천도한 과정, 이후 중화제국의 수도가 북경으로 굳혀진 이유 등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천도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수완은 그가 큰 틀을 짜는 전략가일 뿐 아니라 디테일에도 능한 마키아벨리스트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역시 화이질서 완성을 향한 그의 원모로 그려진다.
영락제는 중국의 역대 황제 중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인기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등장한 것도 그렇거니와, 연왕 시절에 비슷한 스타일의 태종 이방원을 직접 만났고, 어머니가 마황후가 아닌 고려 출신의 비(妃)라는 점도 그렇다.
성종의 친모 인수대비의 고모를 후비로 두었으며, 사신으로 온 양녕대군을 만났고 그를 사위로 삼으려 했다는 점, 또 수양대군이 영락제의 정난을 ‘제대로’ 모방해 조카 단종을 내치고 쿠데타를 일으켜 이를 계유정난이라 부른다는 점 등, 좋든 싫든 여러 모습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화이질서의 사상적·역사적 배경,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중화제국이 무엇인지 알아볼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