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에 관한 국내 첫 보고서이자 심층 탐구서이다. 저자들은 스스로를 당당히 폴리아모리라 선언하고, 국내에서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번역·소개되고 있는 폴리아모리에 관한 개념의 재정립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국내의 실제 폴리아모리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함께 소개하고자 하며, 그것이 윤리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을지 추론하고, 모노아모리와 폴리아모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오해들을 수정하거나 제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자 하였다.
아직까지는 국내의 폴리아모리에 대한 연구 성과가 부재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담론을 통해서 또는 소설, TV, 인터넷과 같은 매체들을 통해서 단순한 정보들만이 유통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해와 편견들이 섞임으로써, 오히려 폴리아모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함께 형성되었다.
존재가 존재와 접속하여 변용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존재의 자연적 능력이다. 접속하고 변용하는 현상은 특정 존재에게만 한정해서 발생하지 않고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변용을 통해 부드러운 흐름이 발생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애의 구도를 지향하든, 자신과 타자의 다자간 사랑 욕망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다자간 사랑 욕망이야말로 ‘특이성을 사랑하는 공동체’의 가장 근간이 되는 힘이기 때문이다.
첫문장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폴리아모리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와 이런 식의 질문을 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7년 8월 3일자
최근작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 소개 :철학공방 별난 철학 연구원. 학문이면 학문, 사랑이면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다. 철학공방 별난에서 스피노자, 라이히, 버틀러, 가타리를 연구하며, 그러한 사유의 노선을 통해 자신의 비독점적 성생활을 설명해 내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2016년 녹색당 고양시 총선본부장을 역임하였으며, 2017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의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작 :<MBTI 성격별 섹스 백과사전>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며,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 현실에 실존하는 다양한 사랑의 사례들에 관심이 있다. 전 철학공방 별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 (알렙, 2017)>를 공저하였고, 연구비지원 1기에 선정되어 <MBTI 성격별 섹스 백과사전 (온연, 2022)>을 집필하였다. 서강대를 비롯하여 몇몇 학교들에서 강의하였다. 최근에는 노부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인터뷰하고 있다.
비독점적 사랑, 국내 폴리아모리들에 관한 심층 탐사
더 자유롭고 더 기쁜 사랑과 욕망의 영토를 위한 제안
폴리아모리는 바람둥이인가? 폴리아모리는 성소수자인가?
중혼은 범죄 아닌가? 폴리아모리는 모노아모리의 반대인가?
폴리아모리를 사회적·윤리적 문제로 봐야 하나?
최근 들어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이 국내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확산된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페미니즘의 유행에 의하여,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라는 문제가 전체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폴리아모리는 자유로운 섹슈얼리티의 한 양태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국내의 폴리아모리에 대한 연구 성과가 부재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담론을 통해서 또는 소설, TV, 인터넷과 같은 매체들을 통해서 단순한 정보들만이 유통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실제 사례에 대한 기록들만이 많은 폴리아모리들의 전범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해와 편견들이 섞임으로써, 오히려 폴리아모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함께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저자들은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국내의 실제 폴리아모리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함께 소개하고자 하며, 폴리아모리라는 주제 자체에서 드러나는 다른 섹슈얼리티 서적들과의 차별성, 나아가 미래의 전망을 충분히 드러내고자 한다.
저자들은 스스로를 당당히 폴리아모리라 선언하고, 국내에서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번역·소개되고 있는 폴리아모리에 관한 개념의 재정립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책은 폴리아모리에 관한 국내 첫 보고서이자 심층 탐구서이다. 인터뷰와 세미나, 강연 등을 통해 만난 수많은 한국 폴리아모리들의 실제 삶을 생생히 구성해 놓음은 물론, 인문/철학적 이론적 전거를 통해 이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부각시킨다. 저자들 스스로가 젊은 20대이며, 성소수자 이슈를 포함하여 폴리아모리적 삶에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연애라고 하면 당연히 단 한 사람과의 일대일 연애 구도를 떠올린다. 대중 매체가 전달하는 사랑과 연애는 모두 그러한 모노아모리monoamory의 구도이다. 하지만, “왜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다양하게 변형된다. “난 애인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 “다른 사람도 좋아지는데, 내가 나쁜 걸까?” 등의 죄의식 섞인 내면 갈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폴리아모리polyamory의 개념은 이 질문들에 대한 유쾌한 답이 될 수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폴리아모리와 다자 연애는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폴리아모리는 정확히 번역하자면 “다자간 사랑”에 가깝다. 다자 연애는 연애라는 명시화된 관계를 다수 둔다는 뜻이지만, 폴리아모리는 접속connection과 변용affection을 통해 부드러운 흐름을 생성할 때 발생하는 ‘사랑’의 능력을 지닌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폴리아모리는 아주 자연적 상태이고, 윤리와 제도에 의해 형성된 모노아모리 문화야말로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다.
존재가 존재와 접속하여 변용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존재의 자연적 능력이다. 접속하고 변용하는 현상은 특정 존재에게만 한정해서 발생하지 않고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변용을 통해 부드러운 흐름이 발생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흐름은 고정관념, 억압, 배타, 차별, 권위 등 슬픔의 정서를 유발하는 것들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관계망이 성숙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불특정다수 타자와의 접속에서 무시로 발생하는 것이고, 본인의 자각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폴리아모리일 수밖에 없다. 연애란 문화적(또는 심리적) 요인으로 관계를 명시화하는 것일 뿐이다. 특히 모노아모리의 연애 구도는 문화적 강박관념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폴리아모리라면 사실 모노아모리는 불안감, 집착, 질투, 두려움 등의 심리 기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부정적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대일 연애를 없애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애의 구도를 지향하든, 자신과 타자의 다자간 사랑 욕망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다자간 사랑 욕망이야말로 ‘특이성을 사랑하는 공동체’의 가장 근간이 되는 힘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모노아모리가 상식으로서 여겨지는 문화권 내에서 사랑에 대한 일종의 윤리적 규정을 전복시키는 개념으로서 ‘폴리아모리’에 대하여 분석해 나간다. 이 책은 바로 폴리아모리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것이 윤리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을지 추론해 보며, 마지막으로 모노아모리와 폴리아모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오해들을 수정하거나 제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 책을 쓰기까지
이 책의 1장에는 ‘폴리아모리’에 관한 7가지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직접 만나 인터뷰하여 채록한 기록들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한국에서 폴리아모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고자 했고, 또 이들과의 주기적 만남을 통해 폴리아모리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으려 했다.
폴리아모리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우리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여러 명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상상력 자체가 우리에게 부재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리감일 순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말그대로 선입견이다. 직접 들어본다면 생각 외로 아주 평범한, 이미 겪어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낯선 사랑의 문턱들 앞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청년이자 LGBT(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이로써 겪고 배워 체화한 많은 입장들이 있다. 이 입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폴리아모리는 성소수자인가?”, “폴리아모리를 윤리적·사회적 문제로 봐야 하나?” 등의 질문이다.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정식화하는 과정에서 폴리아모리가 난교, 중혼, 바람둥이라는 오해와 편견을 풀어보고자 하였다. 저자들은 폴리아모리라는 주제를 젠더적 관점으로 근본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되,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성소수자 문제, 여성 문제가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폴리아모리가 모노가미 사회 시스템과 갈등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라를 무너뜨릴’ 치명적인 위협으로도 생각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가족과 육아의 문제를 폴리아모리적인 관점으로 논의하면서 폴리아모리가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성숙시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 갈등과 공존
과거에는 이 주제가 ‘사랑의 인문학’이나 ‘사랑의 사회학’ 혹은 성 담론의 일부로 다루어졌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이를 성소수자 운동이나 여성 운동에 종속된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소수자 문제와는 별개로 사랑과 연애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에 관한 인식의 확대로 이어졌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폴리아모리로서의 삶을 강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긍정성을 믿는 저자들은, 폴리아모리적 사랑이 공동체를 풍성하게 하는 생태적 지혜가 될 것이라 본다. 어떤 한 종교는 동성애 다음 차례로 폴리아모리를 공격한다고 전제하는데, 저자들은 이에 대해 반박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것이 아니다. 폴리아모리적 삶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주겠다는 의도이다.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새롭게 마주치게 될 삶들이다. 폴리아모리들과 함께 살게 될 사회를 위한 일종의 예고편이 될지도 모르겠다. 폴리아모리로 살아가겠노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
- 선택한 사람들
이 책의 구성
1장에서 저자들은 몇몇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라는 것을 느끼고 알고 정체화해 가는 과정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그리고 2장에서는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불리는 폴리아모리가 타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하는 새로운 사랑의 방식임을 밝힌다. 특히 이것은 유일성에 제약되지 않고 컴퍼션의 감정을 느끼는 사랑의 잠재성 자체이며 따라서 문어발와 폴리아모리는 동일한 개념이 아님을 언급한다. 저자들은 폴리아모리의 유형인 비이, 트라이어드, 쿼드, 폴리피델리티 등을 설명한다.
3장에서 저자들은 헬렌 피셔와 스피노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폴리아모리가 자연 그 자체의 상태이며, 문명적으로 모노아모리가 구축된 것임을 주장한다. 이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들뢰즈의 강렬도, 가타리의 횡단성, 프루스트 소설에서 드러나는 성좌의 사랑을 논거로 든다. 이러한 폴리아모리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사랑이 결코 연애 관계, 인간 관계, 언어 관계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 가령 비연애주의자, 동물과 식물, 언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또한 본래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귀결은 질투와 집착이라는 정서, 다양한 섹슈얼리티 내에서의 병리학과 범죄학,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추상적 문제까지를 포괄하는 논의로 확장될 수 있다.
4장에서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정치적 의제들과 운동들이 어떻게 폴리아모리와 맞물리는 지점이 있는지 이야기해 본다. 실제로 여성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을 거쳤던 한국의 현대사를 통하여, 미래의 폴리아모리 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 것인지 그려볼 수 있는 재료를 마련한다.
5장에서 저자들은 어떻게 별 탈 없이 유쾌한 방식으로 폴리아모리를 수행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발견주의, 생태주의, 합의주의, 구성주의, 실존주의, 해체주의, 포스트구조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누구나 폴리아모리적인 삶을 놀이처럼 즐겨볼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해 본다.
1장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 이런 식의 질문을 했다. “폴리아모리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니에요? 가진 놈들이 더 가지려고 하는 거지 뭐.” 한 사람의 연인도 생기기 어려운데 여러 사람을 연인으로 두다니, 그것은 필시 외모가 수려해야만 가능한 욕심일 것이다. 폴리아모리의 삶을 아주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우리의 선입견이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폴리아모리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우리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언어가 영어권에서 비교적 새롭게 뿌리내린 것이고, 여러 명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상상력 자체가 우리에게 부재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리감일 순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선입견이다. 직접 들어본다면 생각 외로 아주 평범한, 이미 겪어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많은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들의 고민들을 들으면서 크게 공감하곤 한다. 저자들은 1장을 통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대중에게 소개하도록 허락해 준 사람들의 고민들을 나눠 본다.
2장
폴리아모리는 보통 다자 연애 정도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폴리아모리적인 욕망이 향하는 것은 ‘여러 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사실 어떤 ‘자유로움’에 가깝다.
배타하기보다는 수용하고, 질투하기보다는 서로를 긍정하는 마음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폴리아모리 개념들을 살피다 보면 폴리아모리들이 주장하는 사랑이 가볍기 때문에 자유로움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폴리아모리들은 고유한 맥락들에서의 사랑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폴리아모리로서 살아간다.
저자들은 결코 ‘이것이 진정한 폴리아모리이다’라고 규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폴리아모리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폴리아모리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폴리아모리 때문에 다양한 상황의 변화를 겪었던 사람들이 있다. 저자들은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3장
폴리아모리를 얘기하면서 바로 사랑에 대한 질문을 비껴갈 수 없다. 3장에서 저자들은 사랑에 대하여 특별한 관점을 설파했던 철학자 스피노자를 중심으로 사랑에 대해 이리저리 수다를 떨어본다.
우리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이란 한 사람만 바라보게 되는 특별한 경험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생명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단지 둘이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연애만을 의미하는가. 스피노자는 단호하게 이런 관점을 뒤집고 사랑의 경험을 더 확장시킨다.
3장 초반에서는 이러한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듣기 전에 폴리아모리에 대한 두 가지 흥미로운 반대 의견을 들어본다. 첫 번째는, 폴리아모리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형태라는 주장이다. 가령 어떤 교회들에서는 동성애 다음으로 반대해야 할 대상으로 폴리아모리를 꼽는다. 그리고 더 중심적으로 살펴볼 두 번째는, 폴리아모리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헬렌 피셔라는 문화인류학자는 폴리아모리를 이루어지지 못할 인간의 욕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런 주장들을 꼼꼼히 살피면서도, 이 두 가지 주장들이 사랑을 얼마나 편협하고 가끔은 왜곡하여 이해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본다.
이 3장은 실제로 나희라는 어떤 인물과 함께 이런저런 잡담한 결과물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스피노자, 들뢰즈, 가타리, 프루스트 등의 인물들과 함께 나희와 저자들은 사랑이란 자유로운 별자리 그리기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사랑에 대한 더 풍부한 사유를 위한 여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4장
“폴리아모리들의 가족구성권은 어떻게 보장되나요?” “폴리아모리도 성소수자인가요?” 이런 질문들의 공통점은 폴리아모리의 내면적인 심리를 떠나서 폴리아모리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접합될 것인지 전망을 물어보고 있다는 것이다. 폴리아모리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기존의 알고 있던 개념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아쉽게도 폴리아모리 사회학적인 연구가 다양한 방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아직 유효한 사회학적인 통계나 자료가 빈약하다. 물론 폴리아모리와 관련한 사회적 고민들을 아예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들은 여성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이 폴리아모리 주체성과 깊게 관련된 지점들이 있다는 점을 짚고, 가족과 육아에 대해서 짧게 언급할 것이다.
4장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모노가미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로 이야기되는 관점에서 여성과 폴리아모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왜 사람들은 폴리아모리와 성소수자 또는 퀴어를 아주 쉽게 연결시킬까. 폴리아모리들은 법적으로 폴리가미가 인정되는 것을 바라는 것일까. 폴리아모리들은 아이 육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폴리아모리 가족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잘 클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대한민국 폴리아모리 운동의 전망을 짚어본다.
폴리아모리가 모노가미 사회 시스템과 갈등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라를 무너뜨릴’ 치명적인 위협으로도 생각되는 것 같다. 그러나 폴리아모리가 모노가미 시스템에 치명적인 균열을 형성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가족과 육아의 문제를 폴리아모리적인 관점으로 논의하면서 폴리아모리가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성숙시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5장
한국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안정적으로 맺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헤쳐 나아가야 하며, 실제 상황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공감받기도 어렵다. 폴리아모리로 살아가기로 했어도 결국 좌충우돌해야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저자들은 5장에서 여태 인터뷰했던 폴리아모리들이 전하는 삶의 조언들을 종합하여 ‘꿀팁’들을 정리해 봤다.
같은 세계라도 항상 새롭게 봄을 중요시하는 발견주의, 사랑의 범위를 확장시킬 상상력을 제공하는 생태주의, 안정성을 효율적으로 쟁취하도록 도움을 주는 합의주의, 삶의 살림에 집중하는 구성주의, 우리의 고유한 주체성을 바라보게 해주는 실존주의, 뻔한 구조로부터 탈주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해체주의, 새로운 배치를 횡단할 것을 조언하는 포스트구조주의. 우리는 이러한 생각의 경향들을 가져와 폴리아모리로 살아가는 방법을 고안해 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자들이 제안하는 이 팁들은 절대 폴리아모리적 관계에 국한하여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철학 사유들 대부분 그러하듯이, 아마 저자들이 제안하는 팁들은 응용할 여지가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에 이 팁들은 절대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제 겪게 되는 특수한 흐름들을 직접 구성해 나가면서 얻게 되는 지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