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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제자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불교학자 로버트 서먼의 신작이다. 이 책은 뉴욕 공립 도서관과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공동 기획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집필을 의뢰한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인간 존재의 최대 약점이자 ‘죄악(deadly sin)’으로 여겨져 온 7가지 근원적 욕망(교만, 시기, 탐욕, 탐식, 분노, 정욕, 나태)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하고 있다. ‘분노’는 그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분노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나 배척하는 것을 지양하고, 분노에 대한 진정한 성찰을 통해 분노를 극복하고, 분노의 에너지를 자유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중도의 입장에 선다. 분노에 대한 우리의 습관적 인식을 깨고, 우리 스스로 내 안의 분노를 극복하는 길을 가도록 이끄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한국어판 《분노》는 경희대 철학과에서 불교철학과 비교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허우성 교수와 불교철학을 전공한 이은영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했다. 《분노》를 안내하는 ‘역자의 말’과 꼼꼼한 역주가 이 책의 이해를 돕는다.

《분노》를 자비로 안내하며_역자의 말 7
법구경 구절 15
저자 머리말 21

1장 중대한 순간 … 39
2장 분노에 항복하기 - 개관 … 44
3장 분노란 무엇인가? … 65
4장 분노에서 해방되기 - 서양의 길 … 74
5장 분노에서 해방되기 - 불교의 길 … 98
6장 분노 초월의 요가 …108
7장 내성耐性의 인내 …130
8장 통찰적인 인내 …140
9장 용서하는 인내 …159
10장 분노에 항복하기 - 궁극적 차원 …206

참고문헌 215
찾아보기 217

최근작 :<분노 Anger>,<분노를 다스리는 붓다의 가르침>,<달라이 라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총 62종 (모두보기)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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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 총 4종 (모두보기)
소개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불교철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 <분노>, <마인드풀니스>가 있다.

허우성 (옮긴이)의 말
《분노》를 자비로 안내하며

분노의 대한민국, 성난 시민! 이 책을 번역하고 있던 2016~7년 한국의 겨울을 단적으로 묘사하던 말이었다. 대다수의 언론은 촛불시위를 보도하면서 분노의 자연스러움, 정의로움, 당당함을 지적하며 수없이 분노를 예찬했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법 위반과 국민의 신임에 대한 배신을 고려할 때, 분노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하지만 경험으로 분노가 유용하면서도 위험한 감정임을 잘 알고 있다. 잘 다루면 그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잘못 다루면 증오, 저주, 파괴와 살인, 아니 전쟁의 나락으로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현자들이 그 위험성을 지적해왔고, 우리 언론 역시 최근까지도 분노를 잘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분노의 순기능을 인정한 대표적인 철학자 중의 하나로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나 친지가 모욕을 당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 자기방어도 하지 못하는 노예 같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철학자는 화를 낼 때 다섯 기준은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분노하기에 마땅한 일, 분노하기에 마땅한 상대, 분노의 강도(强度), 분노의 타이밍, 마땅한 지속 시간이 바로 그것들이다. 다섯 기준은 이성에서 온다. 분노라는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 ‘중용의 성격’을 지닌 자로 칭송받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 힌두교와 불교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분노에 대해 아주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특히 불교는 분노[진瞋]를 무지와 탐욕과 함께 삼독(三毒)의 하나로, 제거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런 불교의 입장에서는 비록 ‘공분(公憤)’이라고 해도, 그것이 증오나 폭력을 초래한다면 거기에 동조하기 어렵다. 1950년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동부 티베트로 침공해온 이후 인도로 망명해온 14대 달라이 라마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는 마오쩌둥을 포함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게 분노 대신 자비를 보낸다고 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대영 제국과 인도 내부의 카스트 제도라는 정치적?사회적 악에 대해 힘껏 저항하고, 힌두 무슬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목숨 건 단식을 감행하면서도, 분노를 정당화하는 일을 극히 경계했다.
달라이 라마의 제자이자 친구인 서먼은 《분노》에서《입보리행론》 <인욕품>을 번역하고 해설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분노에 대한 불교적인 태도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원수와 함께 인내를 수련할 수 있네.
그래서 그는 그를 인내한 결과인
내 첫 번째 공물을 받을 만하네.
원수야말로 인내의 원인이기 때문에.《입보리행론》 <인욕품> 108

서먼은 이 책에서 ‘원수가 인내의 원인이므로 나의 공물을 바칠 만하네’라는 취지의 구절을 설명하면서,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와 티베트 지도자, 티베트 국민들 최대의 적인 마오쩌둥에 대해 수십 년간 명상한 것이 그 취지를 잘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로 언급하고, 문답 하나를 덧붙이고 있다. 아시아 협회(Asia Society)에서 한 번은 달라이 라마에게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의 사도인 간디뿐만 아니라, 폭력의 사도인 마오쩌둥, 티베트의 자유와 사원 등 불교 기관들, 그 환경과 백만 명이 넘는 티베트인들을 파멸시킨 마오쩌둥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인욕품>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그래서 인내가 길러지는 것은
가슴에 증오를 지닌 자들에 의존해서다.
증오를 지닌 자들은 정법正法처럼 존경받을 만하네.
둘 다 인내의 원인이므로.《입보리행론》 <인욕품> 111


“증오를 지닌 자들은 정법처럼 존경받을 만하네.” 얼핏 황당해 보이는 이 구절에 대해 서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 진정한 붓다의 마음, 평등성의 지혜-증오로 가득한 마음과 정법을 평등하게 보는 지혜-가 있다! 여기에 관용이 없는 자를 인내하는 관용이 있다. 여기에 증오에 답하는 사랑, 악에 답하는 선善이 있다. 이것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위대한 영적 인물들과 신들의 영역이다.” 증오로 가득한 마음과 정법을 평등하게 보는 지혜, 그 지혜를 얻은 경지를 서먼은, 위대한 영적 인물들과 신들의 영역으로, 곧 진화의 극점으로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붓다, 간디, 달라이 라마는 진화의 극점에 도달했거나, 아주 근접한 인물로 보인다. 서먼은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들이 진화하여 자력으로 완전한 불성(佛性)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진화의 극점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같다. 수많은 다생(多生)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이 책은 결국 분노의 에너지를 정복해서 자비의 에너지로 바꾸자고, 그 에너지를 재배치하자고 한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분노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 다른 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고 행복해지도록 도우려는 의지를 발동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분노와 증오로부터 자비와 사랑으로 당장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너무 심하게 다그치는 것이다. 그래서 <인욕품>과 서먼은 내성(耐性)?인내? 자제?용서라는 중간 지대를 제시하고 있다. 해를 입었을 때, 또는 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증오심과 분리된 자비심을 내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 전에 증오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인내와 자제심을 기르자는 것이다.
분노 대신 사랑과 자비를 닦으라는 <인욕품>, 달라이 라마 그리고 서먼의 입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 민족은 분노에 대해 상당한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이런 친근감은 침략과 불의에 대한 저항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을까? 변영로의 시 논개(論介)의 첫 소절이 그런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거룩한 분노 - 궁극적인 자기희생을 수반하는 이런 분노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 그는 중국의 침략과 지배에 항의해서 분신자살한 티베트인 스님들과 소년들의 행위에 대해 평가하기를 참으로 난처해했다. 하지만 권장하지는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간디나 달라이 라마처럼 서로 ‘원수’를 용서하라고 말하면 대다수는 무골충이라고 욕할 지도 모르고, <인욕품>에서처럼 증오를 지닌 자를 정법처럼 존경하자고 하면 분별이 없는 자라고 비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분노》는 달라이 라마를 닮으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그를 닮아서 자비가 분노를 이긴다는 진화의 극점에 가까워지면, 왜적이 백성을 살육한 일에 대해 이순신이 느꼈다는 원통한 분노[痛憤], 논개의 거룩한 분노, 그리고 2017년 탄핵을 이끌어 낸 시민의 분노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한국인을 위한 감정교육의 첫걸음은 분노 성찰이 아닐까 한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서 《분노》를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