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예수 설명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고 알기 쉽게 기술했다. 이야기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장면을 시작으로 시간 순차대로 전개되고 있지만 저자는 복음서를 단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 하나의 스며든 뜻을 세밀하게 건져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왜 우리가 예수의 뜻을 따르게 되는가. 그의 가르침이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 답은 예수의 말과 행동 속에 들어있다. 저자는 이천년 전 예수의 교훈과 이 시대 상황을 절묘하게 접붙여,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예수의 참 뜻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되짚어보면서 의미를 깨우치고 신앙을 점검해보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첫문장
30대 전후의 한 사나이가 요르단 강변을 따라 유대 광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예수 설명서”
시대의 지성 김형석 교수의 역작!
“나는 80여 년을 책과 더불어 살았다.
그리고 8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는 예수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위 고백은 70년대, 청춘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당시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널리 알려진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책『예수 : 성경 행간에 숨어있던 그를 만나다』의 한 구절이다.
그는 이 책의 집필동기를 “만일 나와 내 친구들이 젊었을 때 성경 직접 읽지 않아도 ‘예수가 누구인지’, ‘우리와 상관이 있는지’ 묻는다면 권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왜 예수에게는 그의 인간다움을 넘어 종교와 신앙적 질의에 해답을 주는 뜻이 잠재해 있는가를 찾아보고 싶었다. 왜 그가 우리에게 그리스도, 즉 신앙적 구원과 관련되는 가능성이 있는가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를 알기 위해 성경 4복음서를 다 읽는 것도 부담이 되거니와 4복음서 안에 상치되는 부분도 적지 않고, 또 경전으로서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서 고전 및 역사적으로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이들을 위해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고 알기 쉽게 기술했다.”로 설명했다.
이 책은 그의 설명대로 4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를 기록된 내용대로 살펴 본 책이다. 이야기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장면을 시작으로 시간 순차대로 전개되고 있지만 저자는 4복음서를 단지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 하나의 스며든 뜻을 세밀하게 건져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고 긴 시간이 지난 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쳤다. 몇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보라,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과연 엘리아가 와서 저를 구해 줄 수 있을까”라면서 의아심을 품었다고 전해 준다.
그러나 예수가 외친 이 말은 「시편」 22편 첫머리에 나오는 것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중략- 왜 예수는 「시편」 22편의 첫머리를 외쳐 불렀을까. 전반 부분이 예수가 당하는 고통을 묘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예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어 가질 것이라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22편 중간에는 그래도 모태 때부터 나를 경륜해 주신 하느님에 대한 충성과 믿음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는 뼈저린 신앙 고백이 들어가 있다. 끝 부분에는 온 무리들 가운데 이 사건이 전해질 것이며, 하느님의 뜻은 영원하다는 찬양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는 이 찬양의 첫 부분을 죽음을 앞에 둔 고통 속에서 불렀던 것이다. 뜻이 있는 사람들은 깨달았을 것이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뉘우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다짐하는 뜻에서도.
그러나 한편, 이 고백은 모든 사태를 지켜보면서 남긴 인간과 역사에 관한 지극한 사랑의 발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큰아들이 간질병으로 폐인이 되었는데 둘째 아들마저 또 간질 발작을 하는 것을 본 그 아이의 어머니가, “오오 하느님, 왜 저를 버리십니까!”라고 호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라가 불운해지고 민족이 파국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나의 하느님, 어째서 저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던 애국자를 회상해 보는 때가 있다. 그 어머니는 두 아들의 생명이 자신의 생명을 합친 것보다 몇 배로 귀했던 것이다. 애국자의 심정에서 본다면 민족의 비운은 개인의 생명과는 바꿀 수 없이 소중한 것이다.
십자가에서 모든 상황을 보고 겪은 예수는 「시편」 22편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들, 특히 자신을 박해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스라엘 장래를 위한 애절한 기도였다. 예수는 그런 충정을 안고 십자가에 달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예수의 일생을 통해 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타당한 것이다.
누가는 복음서에서, 예수의 이러한 뜻을 예수의 기도로 재현시키고 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고 얼마 후에,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것은 예수 자신이나 고소인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나온 기도는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어기며 민족의 비운을 자초하고 있는 저들이 용서함을 받기 위해 예수 자신이 왔는데, 역사적인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했을 때 호소할 수밖에 없는 기도였던 것이다. 사랑 안에는 원수가 없고, 완전한 사랑은 인류를 위한 고통의 짐을 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예수의 뜻을 따르게 되는가. 그의 가르침이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 답은 예수의 말과 행동 속에 들어있다. “예수가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말한 것은 비유로서의 설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과 뜻을 깨달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김형석 교수는 이천년 전 예수의 교훈과 이 시대 상황을 절묘하게 접붙여,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예수의 참 뜻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되짚어보면서 의미를 깨우치고 싶지만 성경의 방대한 양 때문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나에게 있어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인지 신앙을 점검해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자신 있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며, 깊다. 우리는 그것을 언제나 먼 곳에서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김형석 교수는 고백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예수를 잊거나 떠난 때가 있었어도 예수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 예수는 지금, 우리의 곁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