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 이 책에 실린 글을 읽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정상’이라고 본다. 피해 여성을 상담하고, 공부하고, 책을 쓴 나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일상의 홀로코스트다. 여기 실린 생존 여성들의 글을 유심히 읽으면, 문장과 문장 사이가 떠 있음을 깨닫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연결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이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이런 문장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데 일조한다.
왜일까. 내 해석은 이렇다. 녹취록처럼 가해 남성의 행동을 상세히 묘사해도 문장들 사이가 연결되지 않고 ‘뭔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남성들의 행동이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왜 때리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폭력이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때릴 수 있으니 때리는 것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대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지난 30년 동안 남성 사회에서 이 공간을 위해 노력한 수많은 여성들을 존경한다. 우리는 ‘노벨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살아남은 이들의 궤적이고, 우리가 살아갈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