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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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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아닌, 관광이 아닌, 바야흐로 산책.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난다의 '걸어본다' 열번째 산책지는 바로 아이오와이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이 작은 동네의 이름이 비교적 문단 안팎에 널리 알려진 데는 아마도 '아이오와 국제 창작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IWP는 1967년 시작된 아이오와 시 주관의 국제적인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매년 각국을 대표하는 글쟁이들이 3개월 동안 아이오와 대학교 내의 같은 호텔에서 머물며 창작과 토론, 낭독회 등에 참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해마다 권위를 더해가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데, 지난 2015년 한국을 대표한 예술가는 김유진 작가였다. 김유진 작가는 지난 200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한 이후 소설집 <늑대의 문장> <여름>, 장편소설 <숨은 밤>을 출간하여 그만의 독특한 자기세계를 구축한 바 있고, 현재는 소설쓰기와 더불어 번역에도 매진하고 있다. 김유진 작가의 에세이 <받아쓰기>는 그 부제 '내가 머문 아이오와 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이오와에서 머문 3개월 동안의 일상을 매일같이 일기로 기록한 에세이이다. 2015년 8월 22일부터 11월 11일까지, 33개국에서 온 34명의 시인, 소설가, 번역가와 함께 문학으로 책으로 어울렸던 기록의 결과물이다.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 10 : 나는 1994년 8월 말부터 1996년 1월 중순까지 미국 아이오와에 머물렀다. 미국 아이오와 시에서 주최하는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석하게 된 것. 처음 가본 그곳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스트레스들과 싸우고 거기 적응해야 했던 생활 속에서는, 화장하고 정장 갖춰 입고 모자 쓰고 하이힐 신은, 말하자면 품위 있는 규격, 격식에 맞는 산문을 쓴다는 건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고, 아니 애초에 그런 품위와 규격에 다다를 수 있을 만큼의 완벽하게 완성된, 성장盛裝한 의식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나는 다만 하루하루 흔들리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품위, 그 격식, 규격이 싫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차라리, 아니 확실히, 더 잘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거기에선, 살아 있는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내가 만들었던 살아 있는 추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화해가는 나, 새로 심어진 내 새로운 의식의 씨앗들이 내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으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일 것이다. 내가 몹시도 지치고 피곤해질 때, 작으나마 내가 새로 배운 것들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이 일기에 나오는, 필경은 아마도 내 눈에만 보일, 꿈틀거리며 새로 태어나려 애쓰는 내 자신의 모습이 내게 힘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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