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
역사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음으로… 위로 받는다 006
1● 삼국의역사타파
● 찬란했던 백제의 한성 시대를 마감하게 만든 개로왕의 토목공사 015
●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장군이다 018
● 화백회의가 민주주의의 원형이라고… 021
● 처용에 대한 오만가지 상상 024
● 황산벌의 계백, 망국의 패장을 위로해 준 김부식 027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는 패륜이 아니다 030
● 부여에 남겨진 소정방의 낙서(?) 033
● 8세기의 일본은 한반도 침략을 대규모로 준비했다 036
● 드라마와 사실의 차이가 만들어 낸 최고의 스타는 비담이다 038
● 신라의 화랑들은 꽃미남이었을까? 041
● 온달은 영웅이 아니다, 이 땅을 지켜낸 진정한 바보였다 043
● 초기 고구려의 왕위계승 진실은 무엇일까 046
●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지은을 효녀로 만들어 준 신라는 왜, 망했을까? 048
● 반성 없는 역사에 미래는 없다, 특권을 지키려다 나라가 망했다 052
2●고려의 역사타파
● 궁예를 위한 변명, 그는 왜 폭군이 되었나 059
● 4명의 왕, 여덟 번을 즉위한 원 간섭기의 고려 062
● 우왕은 정녕 신돈의 아들인가. 그렇다면 생모는? 065
● 목화씨의 전래와 농민들의 무명옷 이야기 067
● 죽음을 택한 마지막 승부수, 영원한 충신의 자격(?)을 얻은 정몽주 070
● 몽골과 맞장 뜬 처인부곡에는 김윤후가 있었다 073
● 고단했던 시대의 상징물인 경천사터 10층 석탑의 수난 076
● 백성 버리고 도망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우, 그는 강화도에서 행복했을까? 079
● 시대의 흐름을 거부한 위화도 회군의 좌군 도통사 조민수 082
3●조선의 역사타파
● 세금을 내기 싫어한 양반들에게 100년의 저항을 받은 대동법 089
● 누가 그들을 열녀라 칭했고 환향녀라 불렀나 092
● 경상도 보리문둥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095
●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담배 이야기 098
● 성공한 정변, 세조 즉위로 부패한 특권집단이 훈구파가 됐다 101
● 우리가 먹는 김치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103
● 아무나 칠 수 없는 조선의 신문고 105
● 정암 조광조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였나, 왕도정치를 준비한 개혁자였나 106
● 뮤지컬과 드라마는 역사가 될 수 없다, 누가 그를 조선의 국모라고 불렀나! 109
● 잃어버린 간도, 사라져 버린 백두산 정계비 111
● 성균관 학생들도 시위했다 113
● 허균, 능지처참을 당하다 116
●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었던 노비는 갑을관계에 의한 현대판 비정규직이다 119
● 권력에 취한 연산군과 재물에 눈먼 황희의 아들 황수신 121
● 억울한 호소, 격쟁을 울려라 123
● 일확천금을 꿈꾸다, 흥부전의 박씨와 상평통보의 발행 125
● 강화도령 철종은 정말 일자무식이었나 127
● 무능한 인조에게 삼전도의 치욕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130
● 투표를 실시한 세종, 토지세 결정을 위해 17만 여명에게 찬반을 묻다 133
●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生 死卽必生) 135
● 꽃처럼 아름다운 화성 137
● 김만덕에게 경영을 배워야 한다 140
● 인격을 중요시한 조선의 조기교육 143
● 영조의 위민 사상에는 허세가 없다 146
● 대한제국, 부정축재의 끝판왕들은 최고 권력자의 비호를 받았다 149
● 일본에 의한 침략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불러야만 하나 152
● 병자호란, 주전파에게 백성들은 버리는 패였나 154
● 백성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157
● 효종의 북벌과 송시열의 북벌은 다르다 159
● 미국과 맞장 뜬 용감한 조선 162
● 현모양처라 불리는 사임당 신씨,
그녀를 독립된 여성으로 다시 해석하라 165
● 매천 황현, 그는 애국적 보수주의자였지 고루한 양반은 아니었다 168
● 광해군의 외교 감각,
민족적 자존과 국가의 이익을 위한 탁월한 리더쉽 171
● 타락한 권력을 비판하고 벼슬을 거부한 조식 174
● 백성이 가장 귀하고 임금은 가장 가볍다 176
● 조선을 가장 먼저 배신한 나라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79
● 무녀가 권력을 잡고 국정에 개입했다 182
4●일제강점기의 역사타파
● 금광은 우리에게 노다지가 아닌 노 터치를 남겨줬다 189
● 33명의 민족대표가 3·1 만세운동의 전부는 아니다 192
● 삶의 출발은 비슷했으나 마지막은 달랐던 민영환과 이완용 195
● 노블리스 오블리제, 이회영의 정신이다 197
● 장충단과 신라호텔, 경운궁과 덕수궁-역사는 말이 없다 200
●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과 김구 암살범 안두희 203
● 맥아더가 살려준 일본의 히로히토 205
● ‘……한다더라’와 유언비어의 차이는…? 208
● 왜곡하는 언론, 배신의 트라우마 210
● 살아남은 자들이 남긴 슬픈 고백, 우리는 지금 어떤 고백을 해야하나 212
● 역사는 흐른다-박상진과 장승원, 김원봉과 장택상 215
● 친일에 대한 확신범, 그들에게 반성문은 없다 218
● ‘정신대’와 ‘종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221
● 언론은 받아쓰기와 베껴쓰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224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227
● 독립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230
5● 대한민국의 역사타파
● 한강은 알고 있다, 누가 서울을 버렸는지… 237
● 경복궁과 총독부, 경무대와 청와대 242
● 역사학자와 판사의 차이는? 244
● 선조와 이승만의 닮은 꼴, 다른 꼴 246
●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맥아더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