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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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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법률가로서의 행적과 생애에 초점을 두고 쓴 책으로,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필하였으며, 10여 년에 걸친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개화기 의병항쟁기부터 군부독재 시절까지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살아온 가인의 생애를 정리한 이
책은 가인의 소년 시절과 일본 유학 시절, 경성전수학교 교유시절과 항일변호사로 활동하던 시기, 신간회 활동, 대형 사상사건의 연대변론투쟁, 해방 후 정부수립과 대한민국의 기본법률을 기초한 시기,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에 맞선 사법권 수호 노력, 4.19와 5.16 전후의 독재 및 군정종식, 문민정권 수립을 위한 활동 등을 총 24개 장에 걸쳐 자세히 정리했다.

저자는 기존에 나온 평전 등의 2차 가공자료보다는 1차 자료, 원자료의 서술을 바탕으로 충실하고 엄정하게 가인 김병로의 법률가로서의 삶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자 노력하였고, 더불어 가인의 극단의 청렴성은 오늘날 어떤 울림을 가지는지, 가부장적 분위기가 압도했던 그 시대에 그의 공적 자세와 개인적 덕성이 오늘날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혹은 압도하는 존경심 앞에 놓쳐버리는 인간적 약점과 사회적 한계가 무엇일지, 법제와 사법이 나름 정비된 현 시점에서 형성기의 분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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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일보 2017년 11월 24일자


한인섭 (지은이)의 말
독자여러분께

법률가로서의 행적에 초점을 둔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애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지 십년을 채웠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읽으면서 안개너머로부터 그의 자취가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여러 방학을 그의 시대와 생애 공간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정리된 부분은 논문과 저술로 가공하면서 동학들의 비평을 받을 기회를 가졌고, 그것들이 본서로 집결되기까지의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가인 선생은 참으로 떳떳하고 담담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거처할 곳도 없이 방황하는 거리의 사람(街人)으로 자처했습니다. 탁류와 더불어 싸우면서도 혼탁해지지 않았고,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압박을 맞으면 동지들과 은거하여 미래를 기다렸습니다. 진퇴가 분명했고, 명분이 확실했습니다. 사회와 국가의 중책을 거듭 맡았지만, 애써 자리를 추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시대적 부름에 성실히 응했을 뿐입니다.
김병로 선생은 무엇보다 법률가였습니다. 식민지하에서는 법학도를 가르친 교수였고, 항일애국자들에 대해 무료변론을 도맡았던 변호사였습니다. 미군정기에는 법무-사법의 기틀을 만들어낸 사법부장으로 소임을 다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엔 첫 대법원장으로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놓았고, 청렴강직한 법관상을 구현했습니다. 그를 일러 한국 사법의 ‘창조주’라는 평도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민주독립국가에 어울리는 기본법률의 초안들은 그의 불식지공의 정성으로 빚어낸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대한민국의 법제-사법-입법-윤리의 네 기둥을 세웠고, 그 영향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저는 법률가 김병로가 남긴 업적을 성실히 정리하고, 그 정신과 의미를 파고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의 성취와 아울러, 미완성과 한계도 주목했습니다.
가인 선생은 강직불굴의 민족지사이자 사회개혁가였습니다. 청년기에는 의병항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제하에서는 항일지사와 투사들은 물론 소작인과 화전민까지 핍박받는 민중을 대변했습니다. 그는 법정을 떠나갈 만치 열렬하게 변론투쟁을 했고, 다른 변호사들을 항일변론의 대의에 끌어들였습니다. 그의 변론은 좌우와 지역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엄혹한 일제 말기에도 민족지사로서 구심점 역할까지 해냈습니다. 해방 후 그는 토지개혁과 좌우합작, 친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충실하고자 애썼습니다.
가인 선생은 민주주의자였습니다. 대통령이 정권연장을 위하여 법을 유린할 때 김병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준으로 맞섰습니다. 재야 법조인이 되어서는 정권의 권력남용에 대해 매서운 법률비평을 쏟아냈습니다. 생애 말년엔 군정에 반대하는 민간정부의 수립을 위해 야권통합에 매진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법률가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공인이었습니다. 공직자로서 사적 이익을 탐한 적이 전혀 없기에, 그에게는 선공후사보다도 지공무사至公無私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공직활동 내내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였고, 청탁이나 사사로움을 일체 배격했습니다. 공직자 부패와 권력남용이 만연했던 시절에 그는 청렴강직의 표상이었습니다.
저는 가인 선생의 여러 면모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2차 가공자료보다는 원자료에 충실하고자 애썼습니다. 섣불리 비평하려 하지 않았기에 ‘평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위인전 스타일을 취하지 않고, 때로는 거리감을 두고 객관화하려 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 존재감이 확실하기에 부제를 달지 않고, 담백하게 [가인 김병로]를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시류에 맞춰 분량을 조정하지 않고,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습니다. 충실한 독자는 분량보다는 내용의 풍부함을 선호할 것이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가인 선생과 동행, 대화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안개 저편에 어렴풋이 계시던 분과 친숙해지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1차자료는 대화를 불러오는 매개체였습니다. 가인 선생의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계속 말을 걸었고 들었습니다. 궁금하면 거듭 질문했습니다. 때로는 저도 동행취재를 하는 기자가 된 기분으로 곁에 바짝 붙었습니다.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어 송구스럽습니다만, 몇 분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인 생전의 만남을 증언해주고 도움주신 김진배, 김종인 두 분과 법조인의 활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홍성우, 한승헌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신동운, 김재형 두 분의 김병로 논문들로부터 받은 지적과 도움을 감사히 기억합니다. 김현숙, 김영중, 김광수 등 여러 제자들과 김나영 사서의 도움에도 감사합니다. 동아ㆍ조선ㆍ경향 등 여러 언론사의 과거 기사들, 여러 대학도서관 및 법원도서관,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들이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가인 선생과의 대화를 진지하게 진행했으면 합니다. 가끔은 자문해볼 일입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고민과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현재 우리의 얽혀있는 여러 법적, 현실적 문제를 대하면서, 가인 선생이라면 어떤 기준을 갖고, 어떻게 결단했을까? 그가 남긴 법적 유산을 가장 김병로 식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 독자가 그 시대에 들어가 느껴보고, 그를 현재의 동반자로 불러내 대화하고, 이런 대화의 소재이자 가교로서 이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년 10월
관악에서 한인섭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