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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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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상 미스터리'의 고전 <하늘을 나는 말>, <밤의 매미>에 이어 펴내는 '엔시 씨와 나' 시리즈 제3탄. 앞의 두 작품이 단편들을 엮은 것에 비해 이번 작품은 장편이며 따라서 호흡이 더 길다. 살인이 없는, 사람이 죽지 않는 미스터리를 표방하는 '엔시 씨와 나' 시리즈이지만 이번 <가을꽃>에선 '드디어'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만큼 긴장도가 높은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언제나와 같이 숨을 쉬듯 책을 읽고, 즐겁고도 따분한 대학 생활을 하고, 두 친구와 잡담을 나누고 투닥거리고, 변함없이 전통예술 라쿠고에 빠져 지낸다. 그런데 그 평화롭게 흘러가는 일상에 돌연 한 동네에 살며 같은 여고를 나온 후배의 부고가 날아든다. 그녀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단짝 친구 역시 어릴 적부터 봐왔던 '나'의 후배다. '나'는 미스터리한 죽음을 파헤치는 한편으로 친구를 떠나보낸 또 한 명의 후배의 마음을 보듬으려고 고투한다. 이번 작품은 주제가 다소 무겁다. 죄 없이 살아온 평범한 사람에게도 부조리한 사건은 일어날 수 있다고, 그런 것까지도 우리의 일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죽음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다가 언제든 끼어들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을 양분한다면 삶과 죽음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작품 전체에 흐르는 공기는 결코 냉소적이거나 무겁지 않다. 살아 숨 쉬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따뜻한 시선과 입김이 무거움을 너무 무겁지 않게 덜어내 준다. 엔시 씨와 '나'의 문답을 통한 죽음과 재생,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와 죽은 후배 어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위안과 안도를 느끼게 해준다. 기타무라 작품 특유의 청량함과 따뜻함과 편안함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1장 : 사랑스럽고, 현명하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성실하고, 그런가 하면 장난기나 호기심도 없지 않은, 아니 남들보다 두 배로 제멋대로이고 남들만큼의 열등감도 몰래 호주머니에 감추고 있는, 그런 정감 가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추리소설은 이 『가을꽃』 이전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읽다가 잠시 책을 덮고 여기까지 걸어온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거나, 아주 오래전에 잠깐 스쳐 지나갔던 사람을 문득 떠올리게 하는 추리소설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은 읽은 후에 상쾌함이 남아서 무척 기분이 좋다. 그것은 주인공인 여대생과 엔시 씨의 사람을 보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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