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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 순교'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은 시인이자 기자인 저자가 '처형장을 향해 스스로 걸어간 사내, 그의 삶과 죽음, 당대 신라의 사회적 상황과 정치·경제학적 환경, 비단 종교만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역할을 한 6세기 불교의 위상까지 밝혀 나가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여러 자료와 취재, 인터뷰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해동고승전> 등의 옛 자료와 1935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광수 소설 <이차돈의 사>, 그리고 학자들의 여러 논문을 뒤적이며 '고대사이면서 현대사이고 지역사이자 보편적인 종교 문화사를 복원'한 것이다.

들어가는 글
추천의 글
1. 스물한 살 청년의 죽음에 얽힌 의문들
2. 이차돈과 법흥왕에 관해 당신이 궁금한 것들
3. 흥륜사, 그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4. 불어오는 바람에 백률사 대숲이 울었다
5. 신라인들은 ‘젊은 순교자’를 그리워했다.
6. 불교, 신라의 토착 종교와 갈등을 겪다
7. 신라 왕조의 기틀을 닦은 법흥·진흥·진지왕
8. <심층 인터뷰 - 소설가 김성동>
“이차돈과 법흥왕을 이야기하기 전, 스스로를 돌아봐야”
9. 천경림, 비밀과 혼란으로 술렁였던 숲
10. 이차돈이 꿈꾼 ‘화엄의 길’은 언제 열릴까
부록

: 홍성식 시인을 부를 때 이 중생은 꼭 ‘홍 국장’이라고 한다. 갑오봉기 때를 살았다면 한 고을을 두려빼는 접주(接主)였을 만큼 걸까리진 몸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리산지리산하는 이 중생의 주막 순례를 길라잡이 하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로라도 시켜 준 자리가 호위총국장이다.
세월 좋은 매체 문화기자로 날리던 그가 몰록 사라졌는데 유라시아 대륙을 톺아보고 와서 무슨 문예지 편집장으로 일하는가 싶더니, 지금은 옛살라비에서 발행되는 신문사 기자를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신라 천년 밑절미를 밝혀 줄 책을 냈다. ‘천년 불교 왕국’ 신라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교수)
: <경북매일신문>의 홍성식 기자가 이차돈 관련 글을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운과 리듬이 절묘하게 들어맞을 노래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언론인인 동시에 현역 시인인 그는, 주흥이 넘치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북방 정서 물씬한 시인 백석의 긴 시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낭송하는 뛰어난 언어 감각의 소유자이자 늘 살아 있음과 소멸을 오가는 고단한 영혼의 나그네다. 오래전의 역사를 쓰는 일이란 몇 개의 사금파리 흔적과도 같은 사실을 디딤돌 삼아서 나머지 빈자리를 상상력으로 채워 나가는 작업이다. 따라서 언론인으로서 사실에 대한 존중을, 시인으로서는 섬세한 상상력을 갖춘 그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경재 (숭실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이차돈 죽음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이다. 과연 이차돈의 순교는 이차돈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순교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법흥왕에 의해 기획된 정치적 죽음인가?
저자는 쉽게 답을 주기보다는 그 의문을 극한까지 반복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독자에게 사유의 폭을 최대한으로 확장시키는 문학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중앙일보 2017년 8월 12일자 '책꽂이'

최근작 :<출생의 비밀>,<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처음, 흔들렸다> … 총 9종 (모두보기)
소개 :1971년에 태어났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기자로 9년간 일했고, 마흔 살에 아시아, 중동, 동유럽을 10개월간 여행했다. 2005년 문예지 《시경》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아버지꽃》, 영화 에세이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여행기 《처음, 흔들렸다》, 정치 칼럼집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등 몇 권의 책을 썼다. 몇 곳의 신문사를 옮겨 다니며 20년 가까이 기자로 일하고 있다.
마흔 살이던 2011년 20여 개 나라를 홀로 떠돌며 기억 속에 남을 ‘에뜨랑제의 삶’ 10개월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