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의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만이 아니라, 근대 산업의학의 선구자인 이탈리아의 라마찌니를 통해서, 삶의 현장에서, 환자의 생활을 통해서, 환자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진료를 하는 것이 본래 의료의 역할이고 기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저자는 직접 경험한 일본의 레이온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진료를 통해서,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진찰실이나 병원이라는 공간을 뛰어 넘을 수 있다고 보며, 나아가 바로 노동자의 이야기 중에 의료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속한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들과도 교류하면서 세상의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는 가장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해야만 하고, 의료가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노동자는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고, 생산하는 원동력이이며, 노동자가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 이 책은 순환기내과를 전공한 임상 의사인 저자 요시나카 다케시가 1980년대 중반 교토부 우지시(宇治市)의 유니치카 우지 공장’에서 발생한 만성 이황화탄소 중독증 환자를 만나 직업병으로 인정받도록 애쓰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직업병 진단 과정을 통하여 ‘의료와 의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등 의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하여도 사유를 넓혀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국내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를 제기하는 데 일조를 하였던 구로의원의 생활로 돌아간 듯 했다. ‘아 그랬었지’라고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저자가 이황화탄소 중독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황화탄소 중독을 중심으로 한, 산재 직업병 관련 활동으로까지 한·일간의 연대를 확립하는 데 중심적 역할 수행한 것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일본의 레이온 제조 시설이 어떻게 한국에 수출되게 되었는지도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일어났던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인정 투쟁을 중심으로 한 산재 직업병 관련 활동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서 우리로서는 더욱 관심을 갖고 읽게 된다. 또 일본에서 발생한 이황화탄소 중독이 레이온 생산 시설과 함께 한국에 수출되어 한국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데 대하여 의료 전문인으로서 안타까워 산재 직업병 예방 및 대책을 위한 한일 연대 활동에 매진하고, 더 나아가 원진 레이온 설비가 중국으로 재수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지식인의 면모를 본다. 한국에서는 원진레이온 사건을 통하여 일거에 이황화탄소 중독이 알려지고 사회 문제화 되었지만, 일본에서는 1929년에 처음으로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발생하였고, 1930년대에는 이황화탄소 중독이 업무상 질병 중에서 가장 흔한 직업병인 때도 있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직업병이었다. 초기에 나타났던 이황화탄소 중독 양상으로는 고농도 단기 노출로 인하여 발생하는 정신 행동 이상, 뇌기능 장애 및 말초신경 장애가 주로 알려져 있었다. 그 후 만성적인 중등도 농도의 노출에 의해 동맥경화성 혈관 장애가 생기고, 그로 인하여, 다발성 뇌 경색, 뇌 출혈 등이 생긴다는 것이 1980년대 중반 이후 10여 년 동안 저자의 주도적 노력으로 밝혀졌다. 그 과정이 의학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학술적으로도 흥미롭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그 당시 잘 알려진 직업병이었던 이황화탄소 중독을 발생시킨 레이온 생산 설비가 한국에 들어오고 다수의 직업병 환자가 생길 때까지, 한일 간에 노동자 차원이나 전문가 차원에서 전혀 정보 교환이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향후 국제 간 연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과제를 던지는 것 같다. 의료의 올바른 모습에 관심 있는 일반인, 산재 직업병 활동가, 산업보건 전문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