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혁명가, 혹은 대역원흉
제1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의 총성
‘대행사(大行事)’의 그날
김재규와 김계원·차지철
궁정동의 ‘그때 그 여인들’
오후 6시 5분, 대통령 도착
정승화·김정섭 도착
김재규의 ‘최후통고’
준비 완료
“버러지 같은……” 그리고 총성
마지막 확인사살
“나는 한다면 합니다”
남산이냐, 육본이냐?
대통령, 병원으로 옮겨지다
육본 벙커에서의 김재규
국군서울지구병원의 정중동
김재규의 ‘혁명 계획’
27일 새벽 4시, 김재규의 체포
체포된 관련자들
제2부 그는 왜 대통령을 시해했나?
‘원흉’과 ‘의사’의 사이
‘나름의 논리’ 가진 두 견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중용
언제부터 ‘거사’를 준비했나?
김재규의 ‘이상한 울타리’
김재규 부장, 온건노선 걸어?
거듭된 간언, 채택되지 않아
‘순리적 해결’에의 꿈 버리다
구국여성봉사단의 비위 파헤쳐
제3부 재판정의 최후진술
‘정치재판’이냐, 아니냐?
김재규의 좌우명,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내가 반체제의 두목”
‘역사적 사건’의 ‘역사적 심판’
검찰·변호인단의 치열한 공방
‘재정신청’으로 휴정
휴정-속개-휴정-속개
검찰관 발언의 파문
김재규, 자신 있게 진술
토요일 밤까지 재판 ‘강행’
“검찰관은 계엄사령관 뜻 아나?”
김재규, 사선변호인 변론 거부
김재규는 왜 변호인을 거부했나
재판정에서의 김재규와 부하들
‘그때 그 여인들’ 증언대에
김재규의 1심 최후진술
“가족면회를 한 번도 못했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됐는가?
항소심, 3일 만에 결심
김재규의 2심 최후진술
대법원, 8대 6으로 상고 기각
제4부 김재규, 그는 누구인가
고집 센 아이
일본군 특별간부후보생이 되다
육사 2기를 14등으로 졸업
‘면관’됐다가 복직
순천 유지의 딸과 결혼
‘스승’ 이종찬 장군
5·16 이후 ‘출세’ 가도 달려
6·3항쟁 때 계엄군 지휘
보안사령관·3군단장 역임
‘운명’의 중앙정보부장 취임
예의 바르고 정중해
저돌적이고 무능한(?) 사람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
그의 부하들
‘김재규의 부정’은 사실인가?
외동딸 결혼식에도 불참
그는 과연 청렴했는가?
‘내연’의 처와 친자 설
‘강한’ 어머니의 영향
감옥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불교에 정진하다
“사나이가 하는 일은 한 가지뿐”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 강조
역사라는 ‘제4심’은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김재규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