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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성대.부경대역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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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조각과 같은 고전시대의 미술을 ‘고전의 탄생’과 ‘고전의 발명’으로 크게 나누고 독자들을 작품들 속으로 안내한다. 미술 작품을 두고 펼치는 그의 현란한 스토리텔링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며 독자들은 고전 시대 미술 속에 담긴 비밀 또는 새로운 사실과 맞닥뜨린다.

‘음악을 사랑했던 마르시아스’에서 시작한 미술 기행은 ‘산 마르코의 청동 말’, ‘여상주 카리아티다’, ‘아비에게 젖을 물린 페로 이야기’, ‘사티로스와 농부’, ‘원숭이의 모방예술’ 등 20여 개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스토리텔링은 미술사의 첫 걸음인 원재료를 시대, 지역, 작가, 장르, 주제, 기법 등에 따라 분류하고, 퍼즐을 맞추어 원상태의 그림을 재구성하면서 실물작품을 비교하고 문헌을 뒤져서 작업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재구성한다.

최근작 :<월말 김어준 Part 1>,<단숨에 보는 르네상스 미술>,<루벤스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리지 않았다> … 총 109종 (모두보기)
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 졸업,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철학부 서양미술사, 고전고고학, 로만어 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번역서는 <정치적 풍경>(일빛), <예술의 재발견 시리즈>(금호문화), <예술가의 전설>(사계절) 등이 있고, 저서로는 <문명 속으로 뛰어든 그리스 신들 1, 2>(사계절),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한길사) 등이 있습니다.

노성두 (지은이)의 말
오래전 은사님 말씀이 생각난다.
“미술사는… 퍼즐 맞추기하고 비슷해.”
퍼즐을 구입하면 먼저 내용물을 흩는다. 색이나 선 그리고 형태를 기준으로 낱개의 퍼즐들을 한 무더기씩 분류해서 쌓아두고, 가장자리부터 시작해서 여백을 메꾸다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완성된 퍼즐은 액자에 끼워서 벽에 걸기도 하고, 다시 허물어서 상자에 모셔두기도 한다.
미술의 역사의 흔적을 재구성하는 일은 이보다 까다로워서, 퍼즐 박스의 절반이 사라지고 없거나, 500조각 퍼즐 가운데 여남은 개 정도가 남아 있거나, 껍데기는 있는데 내용물이 통째로 사라지고 없는 일도 예사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미술의 역사를 퍼즐에 비교하자면, 미술사의 퍼즐에는 완벽한 상자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그나마 몇 알 남아 있는 것조차 덧칠이 되어 있거나, 곰팡이가 심하게 슬었거나, 가짜가 두서없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그나마 박스 내용물이 온전히 보관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천, 수만 개의 박스가 제멋대로 엉뚱하게 굴러다니는데, 퍼즐 알갱이들도 다양한 유통 경로를 통해서 출처불명 뒤범벅이 된 상태가 태반이다.
미술사의 첫 걸음이 원재료를 시대, 지역, 작가, 장르, 주제, 기법 등에 따라 분류하고, 퍼즐을 맞추어 원상태의 그림을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실물작품을 비교하고 문헌을 뒤져서 작업에 얽힌 역사와 사연을 재구성하는 것이 그 다음 순서다.
<베네치아의 청동 말>은 이런 점에서 미술사의 드문 축복이고 행운이다. 고대 조각 가운데 청동 원작이 대부분 그리스도교 시대를 거치면서 청동 문짝이나 종, 향로, 촛대, 거울, 십자가, 무덤조형물, 대포 등 병장기로 재활용되기 위해 불가마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고대 그리스의 원작이 2500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 그 다음에 유사한 사례를 찾아서 비교하고, 청동 말을 제작한 작가와 주문자 그리고 원작의 전시 환경을 확인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유사 사례는 고대의 도기 그림이나 부조 모자이크, 소조 등이다. 망실된 퍼즐은 어쩔 수 없고, 일단 탁자 위에 쌓여 있는 모든 퍼즐을 주워다가 하나씩 붙여보는 과정이다.
<베네치아의 청동 말>은 엔리코 단돌로가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탈취해서 모국 베네치아로 빼돌린 전쟁약탈물이다.
이로써 1204년 현재 콘스탄티노플에 존재했던 네 마리 청동 말에 대한 기록으로 문헌의 조사범위가 좁혀진다. 이 경우는 동시대의 연대기 등 관련 자료가 너무나도 풍부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작품이 처음부터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양식사적으로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 그렇다면 콘스탄티누스의 콘스탄티노플 천도에 맞추어서 또는 그 이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또는 그 이후에 그리스의 본토나 도서 어딘가에서 떼어서 가지고 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새로운 로마’를 본때 있게 장식하기 위해 옛 로마 제국 전역에서 미술품들을 닥치는 대로 긁어오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서기 400년경에 활동한 교부 성 히에로니무스는 이렇게 말했다.
“콘스탄티노플이 화려해질수록 다른 모든 도시들이 황폐해졌다.”
퍼즐 맞추기는 여기서 멈춘다. 그림을 완성하기에 비교자료와 문헌기록들이 너무 부실한 탓이다. 고대 관련기록의 신뢰성도 문제가 된다.
물론 상상력을 발휘해서 수천 년 전 구슬을 꿸 수는 있다. 그러면 하나의 주장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리면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잘못 끼운 단추를 다음 연구자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
이 책에 실린 글은 독서신문 <책과삶>에 연재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용기를 북돋아준 <책과삶> 조성일 편집주간과 책을 내준 삶은책 이완 대표, 그리고 편집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랑하는 아들 태휘에게….”들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