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특별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하지만 그저 그런 삶이지만 수모와 함께 절망도 이겨내기 위해 아침을 깨우는, 우리를 닮은, 우리 안의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
『할배의 탄생』의 저자 최현숙 선생이 〈말과활 아카데미〉의 구술생애사 강좌를 거친 9명의 여성 필자들과 함께 망원시장 여성상인과 만나 그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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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8년 1월 18일자
최근작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부자 되기를 가르치는 학교> ,<숨을 참다> … 총 10종 (모두보기) 소개 :우리동네노동권찾기, 노동인권 활동가.
노동, 인권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잘 듣는 것이 결국 그 존재와 가장 깊게 만나는 일이라 생각하며 기록과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학력이나 능력, 나이나 경험처럼 가진 것으로 줄 세워지는 것이 견디기 힘들고 대체 그 능력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질문하고 듣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작 :<서울의 골목길 3> ,<선국이, 니밖에 없어> ,<파주를 그리다> … 총 8종 (모두보기) 소개 :소시민의 삶을 기록하는 구술생애사 작가. 한국구술사학회 회원.
저서 「서울의골목길 I, II, III」(2016~2024), 「선국이, 니밖에 없어-구술로 보는 지방행정공무원 40년사 (1976~2016)」(푸른북스, 2021), 「오늘은 맑음」(일곱번째숲, 2017), 「이번 생은 망원시장-망원시장 여성상인 구술생애사」(글항아리, 2018) (공저)
누구나 하나쯤은 시장(市場)’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삶이 지치거나 한없이 건조하다고 느껴질 때, 꼭 무언가를 집어 들지 않더라도 그냥 지나가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상념이 지워지면서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용기 비슷한 것이, 의지를 닮은 무엇이 발바닥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시골 장터가 아니더라도, 서울 도심의 골목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시장이 더 애틋하기도 했던 것은, 거기가 바로 삶의 최전선이고, 그곳 좌판에 놓인 것이 사고파는 물건이기에 앞서 삶은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우리가 놓아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한 줌의 존엄이 거기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시장은 무엇보다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나의 삶과 비슷한 너의 삶이, 사연은 달라도 맞대 보면 신기하리만치 닮아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만나기를 대기하고 있는 곳이 시장이라는 공간입니다.
강원도 탄광촌에서부터 전라도 경상도 끝자락 혹은 제주도까지 고향도 다르고, 취업과 교육, 탈농과 결혼 등 서울로 흘러오게 된 내력도 다르지만, 결국은 공장과 노점과 식당과 알바 등등을 거쳐 시장까지 오게 된 사연은 다르지만, 1997년 IMF와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거기에 부딪혀 난파하고 가까스로 버텨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란히 또 마주보고 있는 곳이 이야기가 만들어낸, 이야기로 만들어진 공간. 시장입니다.
우리가 시장을 지켜내야 할 까닭은 이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보다 카트를 끌고 다니면 편리합니다. 구십 도로 인사를 하는 점원들 앞을 지나거나 계산대 앞에 서면 우리는 ‘갑’이 된 느낌으로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얼굴과 목소리가 지워진 상품을 대하는 것이 일일이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절차보다 쾌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무엇을 까마득히 잊고 사는지, 문득 우리의 삶이 더없이 공허해지고 있다는 것을, 무언가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바로 그것들을 확인하고 만나고 싶다면, 망원시장으로 오십시오.
망원시장에는 ‘해가 갈수록 당당한 여자들의 모임(해당화)’이 있습니다. IMF와 월드컵과 세계금융위기와 구제역과 AI와 대형유통매장의 개업 등 고비마다 꺾이고 일어섰던, 천정부지의 임대료 상승과 건물주의 ‘나가라!’는 통고에 속무무책이다가도 버티어냈던, 특히 합정동 홈플러스의 개점 때는 ‘다 문 닫고 집회’와 ‘다 촛불 켜고 장사’와 주민들도 함께한 연대의 힘으로 전국 최초로 유통 재벌과 맞서 절반의 승리를 얻어낸 여성상인들이 있습니다.
『할배의 탄생』의 저자 최현숙 선생이 〈말과활 아카데미〉의 구술생애사 강좌를 거친 9명의 여성 필자들과 함께 망원시장 여성상인과 만나 그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맑음―망원시장 여성상인 구술생애사』는 대문자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특별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하지만 그저 그런 삶이지만 수모와 함께 절망도 이겨내기 위해 아침을 깨우는, 우리를 닮은, 우리 안의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입니다.
“망원시장은 내겐 로망의 공간이었다. 2014년 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망원시장 안에 사는 동안 ‘할배의 탄생’ 원고가 막히는 새벽이면 가게 진열대에 양반다리를 하고 올라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피우던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나는 내가 만난 상인들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곤 했었다. ‘직업상’의 흥미로도 그이들 몇몇을 생애사의 주인공으로 내심 정해두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것이다. 세상에! ……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상인 아홉 분은 1950년생인 한 분을 빼면 모두 1960년대 생으로, 사회적 삶의 토대를 다져야 하는 시기에 IMF와 세계금융위기라는 두 개의 커다란 격랑에 온몸에 생채기가 나면서도 기어이 버텨낸 사람들로, 지금까지는 누구의 딸과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누구의 무엇을 넘어 ‘새로운 여성’으로 ‘나’ 스스로를 높이고 살아가면서 함께 시장을 지키는 같은 여성상인들과 함께, 또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각자 또 함께’ 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 누군가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평범한 삶이 존엄으로 빛나는 순간의 기억들이다. 우리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일 수도 있는 삶과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크고 작은 시장들로 소중한 삶의 기록들을 담는 작업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최현숙, 『오늘은 맑음-망원시장 여성상인 구술생애사』 여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