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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이경희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1년, 대한민국 충청남도 당진

직업:소설가

최근작
2023년 1월 <당근케이크>

늙은 소녀들의 기도

《늙은 소녀들의 기도》는 소수자로서의 여성에 관한 또 한 편의 기록이다. 제국과 전쟁, 국가와 가부장제가 용인한 폭력이 여성의 신체를 얼마나 잔악하게 유린할 수 있는가를 대변하고 싶었다. 나아가 제국과 전쟁 이후에도 지속되는 기억의 폭력성을 묻고 싶었다. 폭력은 물리적 가해가 끝나는 시점에 소멸된 것이 아니다. 늙은 소녀들의 삶에 폭력은 중첩되어왔을 뿐이다.

부전나비 관찰기

무슨 일이든 한 십 년쯤 매달리면 쉬워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 그런 얘기를 꺼내려 하는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누구의 입을 빌려 말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만 내 글이 독자들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지 한 십 년쯤 지나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등단 십 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을 묶자니 그런 기대는 애당초 터무니없었다. 게으르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쓴다고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여전히 처음처럼 설레고 두렵고 난감한 것을 보면 그 무엇도 한계가 없다는 경고인 것만 같다.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많은 이야기들을 차용하고 수집하고 상상해서 쓰지만 작가의 유전자를 홀가분히 벗어난 모양새를 하기는 어렵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중·단편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일상의 문제인 듯 무심해 보일 수 있는 삶들의 호소를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노인들에게 주문한 것이다. 웃을 수도 그렇다고 덥석 끌어안을 수도 없는 노인 문제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풀어내고 싶었다.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늘 대면해야 하는 삶 역시 욕망과 무의식의 환상이 만들어내는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비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러시아의 초현실주의 화가 블라디미르 쿠쉬의 작품들처럼 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멧돼지에게 부전나비의 아름다운 날개를 달아주어 소외당하고 배제된 그들을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에미는 괜찮다

이 책이 책으로 출간되기 일주일 전 비보가 날아들었다.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말벗이 되어주던 ‘누렁이’가 트럭에 치이는 사고로 결국 엄마 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이 책의 마지막 글, 엄마가 영정사진 찍으러 가셨던 날의 전화통화가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놈두 외딴집에 사느라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기왕 나왔으니 우리 누렁이허구두 한방 찍어달라구 힜다. 사진관 남자 깔깔거리며 그건 공짜로 찍어준다구, 내가 주책 떠는 게 재밌는 모양이더라. 나 혼자 세 방 찍구, 누렁이허구 두 방 더 찍었다. 사진틀에 담아놓을 테니, 다음 장날 와서 찾어가라구 허더구나. 할머니가 동글납작허니 이쁘게 생겨서 사진 잘 나올 테니 걱정허지 말라구, 고마워서 계약금 천 원 걸었다. (……) 사진은 여유 있게 찍었으니 한 장은 필요헐 때 쓰구, 한 장은 니 아배 사진 옆에 걸어라. 누렁이랑 찍은 사진은 걸어두지 말구 손주들헌티 한 장씩 나눠주구. 그리구……. 누렁이보다 내가 먼저 죽거든 누렁이 좀 챙겨라. 아무 디나 버리지 말구 양지바른 곳에 묻어서 춥지 않게 히라. 그놈두 외딴집에 사느라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 에필로그

잠들지 않는 마을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이 말이 하고 싶어서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얼핏 이처럼 시끄러운 세상에 널린 게 주제와 소재일 텐데 무슨 고민일까 싶기도 하겠지만, 소설을 위한 이야기는 작가의 육화를 거치는 작업이라 취사와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번 소설은 오랜 시간 엄살을 부리며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말하기 쑥스럽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내 안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소중한 이야기라 쉽게 꺼낼 수 없었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이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을 소설처럼 쓰는 일이 또 소설을 사실처럼 쓰는 일이 작가의 숙명이지만 아버지 이야기는 달랐다. 사실과 소설의 경계를 적당히 구분 짓기가 어려웠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재는 분명한데,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많이 머뭇거렸다. 그냥 솔직하게 풀어 보자는 결심이 서면서 나는 소설 속의 민우기라는 인물에게 아버지를 투영시켰다. 살아계시면 딱 그 나이였을 아버지도 선조한테 물려받은 지관이라는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농사꾼으로 살아야 하는데 농사에는 별 흥미가 없고 천지만물과 우주의 기운에 더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가난하고 외로운 로맨티스트였다.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읽어 내야만 찾을 수 있다는 최고의 명당은 그래서 아버지가 고달픈 삶을 위로받기 위해서 꿈꾸던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우기라는 인물을 통해서 아버지가 바라던 세상을 실현시켜 주고 싶었던 이유도 그 아름다운 환상이 복잡한 세상과 만나 부딪쳐야 더 빛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불행한 과거에만 머물러 있거나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심심치 않은 익살과 풍자로 이야기를 밝게 풀었다. 에피소드와 등장인물, 지명 등 실제의 것들을 상당수 차용한 것도 실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의도적 장치로 소설의 재미를 주기 위함이다.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이야기를 꺼내 놓고 나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진해진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아버지가 꿈꾸던 그 명당인 것만 같아 서럽고 죄송하다. 명당이 버림받고 지친 이들을 받아 주는 안식처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껄껄껄 웃을지도 모를 아버지께, 그곳에선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는다.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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