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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백민석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1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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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큰글자도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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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엽기전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게 94년이니까 벌써, 칠 년 전의 일이다. 이사온 그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나는,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과천 서울대공원의 동물원을 찾았다. 그냥 여기저기 산책하다, 어슬렁거리다가 지하철에 올라탄 것이다. 그때 내 흥미를 끈 것은 커다란 인공 연못을 앞에 두고, 동물원과 서울랜드와 현대미술관이 한데 붙어 있는 장면이었다. 이것들을 잘만 엮어놓으면 뭔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하루였다.

버스킹!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나는 거리마다 광장마다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를 들려주는 버스커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버스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내가 버스커가 아닌데도) 이상하게도 나와 오래 함께해온 사람들인 양 친근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건 아마 내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음악을 들으며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가 가난하게 살거나 불행하게 산 경우는 많다. 우리는 그런 예를 꽤 알고 있다. 예술은 꼭 부나 당대에서의 성공과 함께 가지 않는다. 『버스킹!』은 바로 그런 예술가들에 대한 내 애정(과 슬픔과 존경)을 담은 책이다.

수림

이 책에도 내 삶의 육성들이 담겨 있다. 물의 터널 속을 지나는 듯 살아온 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 오늘처럼 햇볕이 쨍쨍한 날에도 뼛속까지 젖어 출렁이는 기분으로 살았던 한때가 있었다. 요즘도 내 삶의 한 귀퉁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검은 낙수 소리를 듣는다. 이 연작은 이어달리기처럼, 앞선 단편의 주인공이 이어지는 단편의 인물에게 주인공 자리를 넘겨주는 방식으로 쓰였다. 삶의 순환, 인연의 고리를 표현하고자 내가 만들어낸 순환의 서사형식이다. 나중에 업보를 갚듯이 이야기는 결국 첫 편의 주인공에게로 다시 돌아가 끝난다. 내 다른 소설들처럼 이 『수림』에서도 비도덕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는 인간의 선량함이 그냥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량함은 자기와의,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와의 투쟁을 통해 어렵사리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아바나의 시민들

보통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쓰고 나면 소모된 느낌을 받게 된다. 단편을 쓰고도 그 공허한 감정을 며칠이나 추슬러야 하고, 좀 긴 글을 마치고 나면 실제로 욕지기질을 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랬다. 안 그랬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아바나의 시민들』을 쓰고 나서는 오히려 충만한 감정을 가졌다. 믿기지 않게도 내 안에서 무언가 샘솟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우울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모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무언가 내 안에서 생산된 느낌이었다. 작가가 되고 나서 처음 경험한 신기한 느낌이었다. 원인은 모르겠다. 즐겁게 썼고, 여행 에세이가 원래 쓰고 싶었던 것이어서 그랬을 수 있다. 아마 내가 찍은 사진을 원료로, 그에 어울리는 글을 덧붙이는 2차적인 과정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이번 경험은 오래 기억날 것이다. (…중략…) 여행 에세이는 첫 도전이고, 내가 찍은 사진을 책으로 묶는 일도 첫 도전이다. 『아바나의 시민들』은 여러모로 내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 개정판의 작가 후기를 쓰려고 예전에 썼던 작가 후기 파일을 찾아보니, 이렇게 자진 삭제한 문장이 원본에 남아 있었다. “나는 문학이 이 사회의 진화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지간해선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사회에 해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내가 왜 이런 문장을 삭제하고 ‘정제’된 작가 후기를 실었는지는 모르겠다. 과민하고 소심한 탓이라고 하자. 어쨌든, 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근 십오 년 만에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의 개정판을 낸다. 내 책도 나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인지, 내가 돌아오니 내 책도 돌아온다. 극소수의 책들만이 작가의 운명을 벗어나 긴 세월 동안 생명을 이어나간다. 나도 내 운명을 벗어난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 (…)

죽은 올빼미 농장

아파트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낸 아이들을 두고 내가 한 주장은 확신이 실린 것이 아니다. 아마도 소설 내적 원리에 충실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 주장들은 틀렸거나, 아니면 옳다 하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건 고1 때였다. 그전까진 '정리되지 않은' 자연에 아주 가깝게 살았다. 그 시절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미치기나 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그런 곳이 이제 서울에 몇이나 남아 있을지.

플라스틱맨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2016년 겨울에서 2017년 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나는 토요일이면 광화문광장에 나가 있었다. 처음에는 대통령이 탄핵되어 물러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마 기대보다는, 내가 우리 사회를 그 지경으로 만든 기성세대의 하나라는 미안함이 상당했던 것 같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촛불집회를 사진에 담는 일 역시 딱히 뭘 찍어야겠다는 생각 없이 습관처럼 되풀이했던 것 같다. (……) 무슨 이유에선가 촛불집회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사진들을 보며 내 마음속에 살아났던 것은 당시의 열기, 희망, 시민사회와의 일체감만이 아니었다. 당혹감, 불안감, 일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함께 살아났다. 나는 우리 사회가 1990년대 이전으로 되돌아가 폭력적인 상황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플라스틱맨』의 이야기는 바로 그, 변곡점의 아슬아슬한 꼭대기에서 내가 보고 겪고 공상했던 것들에서 시작된다.

혀끝의 남자

신기하게도, 내가 글쓰기를 그만두던 때가 어제처럼 생생하다. 돌아오기로 하고 나서 가진 첫번째 문단 술자리에서도 나는 십 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어제의 사람들 같았고 모두가 어제의 일들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어제의 나 같았다. 문학과지성사와 주일우 대표의 배려가 없었다면 복귀도 이 책의 출간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작가가 되었던 것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서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귀향인가. 그저 고맙고 또 죄송할 따름이다. 「혀끝의 남자」와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은 신작이고 이전 발표작들도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지금 여기의 시점으로 모두 고쳐 썼다. 고치는 내내 당시 내 무너져가던 정신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괴롭고 두려웠다. 하지만 이젠 그런 감정들도 대수가 아님을 안다. 지난 십 년의 세월이 내게 그것을 가르쳤다. 가장 소중한 독자는 나 자신이다. 2013년 초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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