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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김경민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5년

최근작
2022년 3월 <조선의 뒷담화>

비화의 왕 사도세자

역사를 추론하는 것은 참 신 나는 일이다. 하지만 단 몇 줄의 기록으로 그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또한 역사는 역시 승자의 기록이다. 패자는 말이 없다. 그래, 확실히 패자는 말이 없었다. 패자의 기록은 형편없다. 잘려진 부분도 많거니와 지워진 부분도 많다. 그로 인해 실리지 못한 진실은 더욱 많을 것이며, 은폐된 기록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그 점을 간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의 기록은 패자에게 후덕하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에도 사도세자의 기록은 상당 부분 지워져 있다. 2008년 봄과 여름을 거쳐 또다시 역사 자료를 수집하던 나는 그 중도에 내게 내민 사도세자의 손을 덥석 잡고 말았다. 우락부락하지 않고 뼈대가 두꺼웠으나 유난히 창백해져버린 가냘픈 흰 손은 내 가슴에 큰 낙인을 새기고도 남음이었다.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인물이다. 그를 생각하면 망설임 없이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바로 ‘뒤주’다. 뒤주…… 물 한 모금 허락되지 않았던 좁디좁은 공간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그것은 참으로 잔인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사유는 불분명하다. 물론 나경언의 고변과 역모죄를 얻어 죽었다고도 하고, 광증이 심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사도세자의 주변 인물들이 괘씸하고 악랄하여 소설의 구도를 그리는 데 어쩌면 편파적이었을 수도 있다.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성인의 자질이 빼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백성을 바라보는 어진 눈과 고충에 기울이는 귀를 가졌으며, 당파의 소용돌이에서 조심스런 입도 가졌다. 그러나 왜였을까. 아무리 광증을 비롯하여 많은 비행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자식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 아비는 드물 것이다. 아니, 없을 것이다. 핏줄을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철저히 유교 사상을 따르던 나라에서, 첫 장자와 첫 세손까지 잃은 영조가, 첫 며느리와 여러 옹주, 부마를 잃은 영조가, 그런 가족사의 침통함을 겪었던 영조가 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을 직접 뒤주에 가둬 죽여야 했을까. 사도세자는 혹 치열했던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소론과 노론, 노론에 기울어졌던 아비와 노론이 벌였던 피의 향연을 보며 소론을 안타깝게 여겼던 아들. 단지 정치적인 뜻이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나라의 왕세자에게 행해졌던 대신들의 모략 또한 무척이나 억척스러웠다. 하긴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사도세자가 보위에 오른다면 분명 그들의 자리는 위태로웠을 것이고, 심하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죽음으로까지 간 까닭은 당시 우세였던 노론의 계략이 틀림없는 듯했다. 외척 세력으로 궐을 장악했던 빙부 홍봉한 또한 그에게 등을 돌려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두고 간신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희생 없이 쓰이는 역사는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왜 아들을 구해내지 못했을까. 아니, 구하지 않았을까. 세손(정조)도 있었다. 아들이 정신병을 앓아 제정신이 아니라면 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도세자는 요양을 핑계로 편히 살게 하면 될 일이었다. 영조는 무엇이 용서되지 않아 아들을 직접 죽여야 했을까……. 무엇이 또 두려웠을까. 사도세자가 죽기 전 세자의 비행을 고변한 나경언의 고변서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변서는 단 몇의 대신과 영조만이 보고 불태워졌다. 한데 세자의 비행을 고변한 나경언이라는 인물과 고변서를 영조가 읽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나경언이 노론 대신의 노비였다는 점, 일개 천민의 고변이 어떠한 절차도 없이 영조에게 바로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또 하나, 사도세자는 죽기 전 스승에게 ‘부소’의 이야기를 물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자시강원 설서로 있었던 권정침의『평암문집』에 사도세자가 죽기 전 부소의 죽음에 대해 효인가, 아닌가를 천고(千古 : 아주 오랜 세월 동안)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물은 기록이 등장한다. 부소는 진시황의 아들이었는데 환관들의 계략에 의해 위조된 유서를 받고는 스스로 머리를 찧어서 자결한 인물이다. 유서에는 자결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는 사도세자가 자신의 운명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이때부터 사도세자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참으로 소름 끼치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때의 긴박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어떤 해답도 쉽게 들려줄 수는 없다. 이 역시 추론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나 또한 시원하게 대답해줄 수 없다. 상상력을 가미하여 뒤주에서 여드레 동안 몹쓸 두려움에 죽어간 사도세자를 잠시 애도할 뿐. 또한 그에게로 가는 연민을 덧대 모든 이들이 적이었던, 심지어 부인(혜경궁 홍씨)까지 등을 돌렸던 그에게 벗과 같은 고운 여인을 만들어 위로해줄 뿐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단지 영조의 탕평책에 잠시 개탄하며 그 시대를 장악했던 노론의 위대한 입지에 깐죽거려볼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이다. 그녀는 15세의 어린 나이로 할아버지뻘인 66세의 영조와 가례를 올렸다. 정순왕후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로 눈길을 돌려보았다. 아니, 사도세자를 떠올리고 처음부터 그녀는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 여인, 연리지나 비익조 같은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평생을 구중궁궐에서 썩어갔던 이 여인. 자신보다 열 살이나 위인, 새로 생긴 장성한 아들에게 어떤 눈길을 보내야만 했을까. 아무리 권력의 승산을 보기 위해 아비 김한구와 손을 잡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여인이라 하지만, 그렇게까지 깊이 관여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조금 지나친 간섭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내 상상력은 불순하게도 그곳에 꽂히고 말았다. 가질 수 없다면, 받아주지 않는다면 버리자. 살아서 가슴을 후벼 팔 것이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면, 홀로 피는 상사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면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관점으로 풀어졌다. 물론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을 잘못 디뎌 영원히 휘말려간 그의 죽음도 큰 몫을 하였지만, 나는 정순왕후와 사도세자 사이에 곱디고운 여인네를 만들어두고 이 소설을 풀어나갔다. 이 소설에서 사도세자의 정인으로 나오는 비화는 허구의 인물이다. 비화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최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와 접목하여 풀어냈다. 이 소설은 딱딱하거나 어려운 역사소설이 아니다. 『왕의 여인 어을우동』과 마찬가지로 이미 혼백조차 흩어져 우주에 스며들었을 사도세자가 이 미흡한 글로 인해 잔잔한 미소나 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히 껴안아본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군이었던 사도세자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인물, 윤숙과 임덕제. 윤숙은 정조 즉위 후 재기용되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덕제는 일찍 졸하였는데, 정조는 대사헌까지 지낸 임덕제에게 예조 판서를 증직(贈職 :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하였다. 또 충헌(忠獻)이란 시호까지 내렸는데, 아경(亞卿 : 조선 시대 종2품 벼슬을 높여 이르던 말)에게 시호를 준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정조는 임덕제의 아들을 등용하고, 그 아들이 장가듦에 있어 은전(恩典) 또한 베풀었다. 또한 사도세자 선은 아들 정조가 보위에 올라 장헌(莊獻)으로 상시(上諡 : 왕위를 이어받은 임금이 죽은 임금에게 묘호를 올리던 일)하고, 1899년에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追尊)되었다. 마지막으로, 이광좌가 영의정에 오르고 사도세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소설의 흐름상 몇 달 앞당겨 초입 부분에 넣은 점을 양해 바란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한시 「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을 시대와 달리 당겨 쓴 점 역시 양해해주길 바란다. 사도세자를 위해 애쓴 신료들이 이 책 안의 몇뿐이겠는가. 그때의 충신들을 모두 가져오지 못한 내 짧은 학식에 그들의 섭섭함을 간곡히 사죄드린다. - 작가 후기

숭례문의 나라

5년, 숭례문을 준비한 지도 딱 5년째다. 나무에 관해, 한옥에 관해, 목수의 삶에 관해, 연장에 관해 나는 아는 것이 하나 없었다. ‘무(無)’의 상태에서 나는 발가벗은 채 한옥에 뛰어들었다. 청도 한옥 학교를 찾아가 공부를 하고, 여러 현장과 고찰들을 찾아다니며 우리나라 전통 건물에 대한 짧은 지식들을 쌓아 갔다. 한옥…… 아름다운 미학과 조상들의 지혜가 살아 숨 쉬는 건물. 나무는 그렇게 몇 백 년 동안 자신에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목수들의 숨결에 보답을 하고 있었다. 5년이란 시간은 참으로 고된 시간이었다. 처음 초고는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었던지 소설이 아니라 한옥에 관한 논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원고 또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어줍잖게 알고 있었던 한옥에 관한 전문 지식을 살며시 놓아 버리자, 과하지 않는 지금의 원고가 탄생됐다. 목수님들이 본다 하면 많이 미흡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옥에 관한 전문 서적이 아니라 그저 소설임을 먼저 생각해 주길 바랄 뿐이다. 힘든 여정이었다. 중간에 ‘포기’를 몇 번이나 떠올리게 한 소설도 이놈이 처음이었다. 아무쪼록 이 소설로 인해 우리나라 국보 1호가 언제, 어떻게, 누구의 손에서 탄생되어졌으며 여태 어떻게 보존되어 왔는지 그 하나만이라도 여러 독자님께 새겨지길 바랄 뿐이다.

왕의 여인 어을우동

사람을 쓰고 싶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을 쓰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이 되는 사람을 쓰고 싶다. 역사는 방대한 거미줄이다. 역사를 추론하는 일은 신명 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에 서 있는 사람이 좋다. 역사 속에 파묻혀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사람으로서 풀고 싶은 욕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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