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서영채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1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목포

최근작
2022년 12월 <우정의 정원>

문학의 윤리

1990년을 정점으로 하여 우리 문학의 관심은 점차 이념에서윤리를 향해 이행해왔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시대의 조류였다. 나는 문학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그 흐름을 지켜보았고, 그 변화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는 작가와 작품들의 서로 다른 운명에 대해 숙고해왔다. 그 생각의 일단을 기록한 것이 이 책이다.

사랑의 문법

세 작가의 사랑의 서사를 분석함으로써 규명하고자 했던 것은, 셋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문학적 주체성의 형성 과정이다. 그 연장에 놓여 있는 것은 경험으로서의 근대가 아니라 논리로서의 근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새롭게 등장한 애정의 풍속에 대한 묘사나 기술이 아니라, 애정 서사 속에서 중심적 소통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언어와 그 언어의 의미론적인 함축들을 읽어내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언어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역설적 성격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를 통해 세 작가의 차이를 읽어내고자 했고, 이를 근거로 문학적 근대성의 복판을 관류하고 있는 문학적 주체의 세 유형을 구성해 보고자 했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일차적으로 세 개의 사랑의 서사에 대한 보고서지만, 세 작가의 문학 세계의 근저에 놓여 있는 정신에 대한 관찰기고, 나아가서는 한국 근대 문학을 추동해 온 원동력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왜 읽는가

스무 살 언저리의 학생들과 함께, 그들의 글과 말과 눈빛과 함께, 책 속의 삶을 가로지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서사의 바탕 위에 자기 삶을 써나간다. 각자의 소설 속에서는 자기 자신이 작가 겸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 서사 속으로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쳐들어온다. 작가의 의도는 비틀리고 주인공의 의지는 시험에 빠진다. 그러고 나면 깨닫게 된다. 나는 작가가 아니고 주인공도 아니며 수많은 등장인물 중 하나일 뿐임을, 나는 내게 주어진 배역을 수행하는 연기자일 뿐임을, 심지어는 주어진 배역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매우 허술한 배우일 뿐임을. 사람들은 자기 서사를 고치고 다듬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한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사건과의 조우에 대비해야 한다. 책은 서사의 창고이다. 그 창고 앞에 서 있던 청년도 장차 알게 된다. 오늘 내가 읽는 것이 내일 나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을.

우정의 정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유물론자들의 공간, 우정의 정원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특히 우정이라는 말이 그렇다. 고백하자면 내가 서가 사다리 위에서 만난 사람은 루쉰만이 아니다. 그들과 나눈 마음을 지칭하기에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고 존중이라는 말은 너무 예의바르다. 우정이라는 말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내 마음속 우정의 정원은 뜰이자 밭이기도 하다. 생각을 위한 클리나멘의 저장고가 거기에 있다. 그 너머 개활지와 숲과 산은 내 발이 짧아 갈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사다리를 오를 테니, 벗들이여 그 소식을 들려주시라. 내가 경청하겠다. 2022년 12월

인문학 개념정원

두 사람이 고갯길을 걸어서 넘었다. 그 고갯길이 한 사람에게는 잡초가 무성한 곳이었으나, 다른 한 사람에게는 체열을 내리는 데 좋은 쇠비름과 약쑥의 군락지이자 군데군데 초롱꽃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똑같은 길을 걸었는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렇다. 풀의 이름과 소용과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다. 지식의 숲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은, 비유컨대 야생초의 이름과 소용과 아름다움을 아는 것과 같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조차 않는 것이, 아는 사람에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상이고 아름다움일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발굴되어 다듬어진 주요 개념들을 간추려보고자 함은 이런 뜻에서이다. 새로운 말과 그 말의 쓰임을 배우는 것은 지식의 세계로 가는 출발점이다. 새로운 개념과 만나는 것은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바라건대 그대도 그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기를.

죄의식과 부끄러움

근대화 백년이 만들어낸 한국인의 마음 마음의 차원에서 볼 때 식민지 근대성의 무엇보다 큰 특징은, 자아 이상 혹은 자기 발전의 모델이 외부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은 끝없이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를 점검하려 하고, 외부와 타자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실적 주권을 자기 손에 쥐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노예화한다. 주체가 자기 주권을 외면하고 있는 상태야말로 식민지 근대성의 마지막 모습이겠거니와, 그 선을 넘어서면, 자기 외부에 어떤 모델도 상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기 길을 찾아가야 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그 마지막 선을 우리는 올해 2017년에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우리는 희망을 본다 이 책에 있는 글의 일부를 쓸 때 나는 촛불의 행렬 속에 있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은 이중적 의미에서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그 공간에서 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이미 박근혜의 탄핵은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7년 3월 10일의 탄핵 판결은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절차였을 뿐이다. 광장을 메운 수많은 촛불 속에서 외치고 응시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스스로가 시민 주체로 거듭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촛불집회는 애도와 결별의 공간이자 동시에, 새로운 탄생의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소설이 기록하고 있는 마음의 역사 주권 없는 주체들과 더불어 지난 백년을 통과해오면서, 한국소설은 그들의 일그러진 마음을 기록해왔다. 어느 순간 죄와 책임의 일치라는 기적적인 순간을 맞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 스스로를 주권자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소설 백년은, 그 쉽지 않은 단련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한 공동체의 시민 주체로 받아들이게 된 마음의 역사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한 자락을 들여다본 시선의 기록이다.

풍경이 온다

“공간은 두렵게 하고, 장소는 불안케 하고, 풍경은 슬프게 한다.” 처음 이 책을 구상했을 때 가장 중요한 단어는 풍경이 아니라 공간이었다. (중략) 그런데 막상 기획이 구체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자 공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풍경이라는 개념이 불쑥 튀어나왔다. 공간도 장소도 아닌 풍경이, 말 그대로 난데없이 등장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쌓이면서 바로 나는 그것이 풍경의 속성임을, 어딘가에 숨어 있다 사람을 습격하는 것이야말로 풍경의 존재 방식임을 깨닫게 되었다. - ‘책머리에’ 중에서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