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를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연애편지 잘 쓰면 돈이 없어도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잡지마다 펜팔을 원하는 사람들의 성별과 나이와 취미와 주소와 이름이 적혀있는 펜팔 난이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순정의 시절이야 다시 오지 않겠지만 드물게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설렙니다. 연애편지 쓰는 심정으로 2018년 봄부터 2021년 봄까지 주간신문 <춘천사람들>에 연재했던 그림엽서들입니다.
2022년 봄 북한강 상류에서
정현우
오랜 세월 시를 쓰지 못했다
간혹 쓴 시들은
산문집에 끼워 팔았다
돈 안 되는 건 모두 쓰레기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안 되는 시에 몰두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는 비문증처럼
무시로 어른거렸다
불치병이다
병이 깊어지면
어른거리는 것들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2022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