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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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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1>

뉴패러다임 영어회화

“‘영어로 대화하기’는 극강의 난이도를 지닌 난공불락의 목표가 아니다. 만약 이것이 난공불락의 목표라면 현재 세계 각지에서 영어로 대화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은 모두 불세출의 천재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하기’를 그토록 어려운 목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많은 일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목표를 잘못 설정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질문을 하면 결코 바른 해답을 얻을 수 없듯이, 잘못된 학습 목표를 설정하면 성취는 불가능하다!”

배낭 여행 영어 회화

“배낭여행은 전 세계 젊은이들과 어울리러 가는 것, 대화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배우러 가는 것이다. 배낭여행이야말로 여행도 하고 영어회화 실력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 책으로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영어 실력도 껑충 업그레이드해보자.”

브루투스는 왜, 카이사르를 찔렀나?

- 프롤로그 - 로마라는 ‘아이디어’ 그리스인들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면, 로마인들은 그 모든 것을 지중해 전역으로 퍼뜨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과 야만인’을 분명히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제국으로 향해가면서 점점 더 많은 ‘야만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나눠주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리스와 로마의 가장 큰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그리스는 지중해를 안마당처럼 생각했지만 지중해를 두르는 제국을 건설하는 데는 실패했고, 로마인들은 바로 그 일에 성공했지요. 지중해를 제패한 로마인들은 도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스페인과 마우리타니아, 시리아와 이집트까지 어디든 열흘이면 로마군단이 진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도로는 군사용으로만 쓰인 게 아닙니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와 아나톨리아의 개척교회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낼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로마의 도로가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로마의 도로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같은 유명한 구절을 외우고 있지 못할 거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도 로마의 도로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그곳에서 갑자기 예수의 환영을 보고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전세계 기독교의 역사는 달라졌겠지요. 그리스인들이 연못 주변의 개구리처럼 지중해라는 거대한 내해 곳곳에 항구를 건설하고 살았다면, 로마인들은 항구를 교두보로 삼고 고대의 고속도로를 통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진군하여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은 모두 차지하고 나머지는 야만인들의 손에 맡겨두었습니다. 로마는 무엇보다도 상무국가였습니다. 군사 작전에서는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잔인했지요. 하지만 미를 알아본 무사들이라고나 할까요. 그리스 문화를 존경했던 그들은 그리스에 대해서만큼은 대체로 관대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최초로 그리스 땅을 정복한 티투스 플라미니누스는 마치 어려운 친척을 찾아온 손님처럼 굴었다고 하지요. 후일 로마에 편입된 아테네가 반란을 일으키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를 간단히 진압한 후 아테네 시민들을 용서하면서, “너희들이 조상들 덕분에 관대한 처분을 받는 것이 도대체 몇 번이나 될까.”라고 씁쓸하게 덧붙였습니다. 상무국가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그리스는 로마의 정신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미술사가 아놀드 하우저는 그리스가 최고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낸 건 사실이나, 예술을 대중에게 보급한 것은 로마라고 말합니다.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흉내내기만 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로마사를 돌아보면 가장 주목이 가는 건 역시 정치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서로마만 보면, 군주제로 시작해서 공화제로 이행했고, 공화정의 탈을 쓴 군주제로 돌아갔다가 결국에는 군인황제들의 군사독재로 마감합니다. 그동안 로마는 호메로스나 플라톤 같은 역사상 최고의 문사文士들 보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최고의 정치인을 낳았고, 때로는 칼리굴라와 콤모두스 같은 미친 황제도 선보였습니다. 다행히 헤로도투스보다는 투키디데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역사가들인 타키투스, 수에토니우스, 리비우스 등이 시대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로마 역사가 중 가장 그리스적인 그리스인 출신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조차도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원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객관성을 주장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정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란 걸 감안할 때 그들의 기록을 100% 신뢰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로마를 가능한 당대 역사가들의 기록과 로마사에 정통한 후대 역사가들의 고전에 근거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베르길리우스와 셰익스피어 같은 시인의 언어도 빌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서구문명에서 로마란 한때 이탈리아와 레반트,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지배한 물리적 실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베르길리우스에서 셰익스피어 같은 시인, 수에토니우스와 기번 같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당대와 후대의 여러 고전으로 이루어진 ‘아이디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셨나?』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로마 문화의 요약집이면서 동시에 로마라는 거대한 세계에 입문하려는 분을 위한 가이드북입니다. 즐거운 공부와 여행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3년 2월

브루투스는 왜, 카이사르를 찔렀나?

- 에필로그 - 로마인과 그리스인의 차이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우리 ‘근대인’이 고대인과 다른 이유 중 하나가 ‘근대인’은 인간이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운명이란 것 대신에 정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비극’에 압도당했을 인간이 정치를 통해 인생을 주도적으로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겠지요. 헤겔은 운명을 넘어서는 ‘정치’의 위력을 보여준 최초의 민족이 바로 로마인들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물론 헤겔은 그리스인들에게 ‘정치’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발칸반도와 지중해 주변에 조그만 군락을 이루며 살던 그리스인들은 때로 서로 전쟁을 벌이고 심지어는 상대를 노예화할 만큼 서로 사이가 나쁘기도 했지만, 동방의 침략자에 맞서서 강력한 동맹을 맺고 상대를 물리친 바 있습니다. 이를 정치의 승리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의 정신을 지배한 궁극적 정조는 운명에 대한 순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신들이 미리 정해둔 것이었습니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에우메니데스』에서 열린 재판에서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 오레스테스가 사형을 면한 것은, 그의 과오가 본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타고난 운명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오레스테스는 탄탈로스의 후예인 아트레우스가의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그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타고난 것입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뽑고 테베를 떠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날 때부터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 마침내 그를 덮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달랐습니다. 존경받는 로마인이라면 설사 운명에 패배한다 할지라도, 그에 맞서 당당히 싸웁니다. ‘3월 15일 Ides of March’을 경계하라는 점괘를 받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바로 그날 아침 바로 그 점쟁이를 만나지만, “아무 일도 없잖아,” 하면서 쾌활하게 웃어넘겼습니다. 물론 그날 카이사르는 원로원에서 브루투스를 비롯한 여러 암살자의 칼을 맞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죽음은 공화국의 실패와 제국의 암운을 동시에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는 공화국의 탈을 쓴 제국의 형태라는 새로운 틀을 갖추었고, 이는 한동안 ‘팍스 아우구스타’라는 모습으로 성공을 거두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율리우스-클라디우스 왕조의 후예들은 아트레우스가의 후손들 못지않은 악명을 떨쳤고, 그 이후 로마는 다시는 공화국의 흉내도 복원하지 못했습니다. 5현제의 시대는 회광 반조에 불과했습니다. ‘위기의 3세기’ 이후 로마는 콘스탄티누스의 개혁으로 반등을 시도하지만, 그 결과 나타난 로마는 이미 로마인들에게 익숙한 그 제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주요 지역에서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로마는 지중해 주변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생활의 기본 규범이자 공적 판단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전 유럽은 로마가 사라진 이후에도 로마의 권력과 규범이 제공했던 ‘팍스 로마나’를 잊지 못했고, 그 때문에 샤를마뉴에서 오토에 이르기까지 유럽 최강의 군주들이 로마의 후예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근대가 오기 전까지 유럽인들에게 로마는 평화이자 질서이고, 영원히 추구해야 할 정치적 고향이었습니다. 사실 ‘팍스 로마나’의 세계는 제가 여기서 관련 고전을 기반으로 소개한 내용보다 훨씬 더 크고 넓습니다. 그러나 저는 로마사와 로마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전체적인 틀을 잡는 데는 이보다 좋은 책도 드물다고 자부합니다. 이 책이 멀고 먼 로마의 길을 순례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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