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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신근영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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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내 인생의 주역 2>

[큰글자책]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안티 오이디푸스』(L’Anti-Oedipe)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하죠. 우리가 돌봐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생명력이다. 개인이라든지, 시민이라든지, 주체라든지 혹은 인간이라든지 이런 것 이전에, 이런 것 아래서 우리 존재 자체를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서의 생명력. 이 생명력을 들뢰즈-가타리는 무의식, 또는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들뢰즈-가타리의 관심은 생명/삶의 원리이고, 그에 기반해 생명/삶을 잘 돌보고 기를 수 있는 길을 찾아요. 다른 말로 하면 양생의 원리를 탐색한다고 할 수 있죠. 기를 양(養)에 생명 생(生), 생명을 기르는 원리로서 양생법을 탐구한 게 『안티 오이디푸스』예요.

낭송 금강경 외

불경은 읽는 그 자체로 하나의 수행이다. 불경은 그 내용뿐만이 아니라, 글의 흐름 자체가 분별심을 깨도록 되어 있다. 어찌 보면 불경의 내용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부차적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 분별없는 흐름 자체를 몸으로 만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주문이란 기존의 자신의 몸을 변신시킬 때 외우던 게 아니던가. 불경을 낭송한다는 것은 그런 주문을 외우는 것이리라. 분별로 어두워지고, 실체를 찾는 마음으로 굳어진 몸을 변신시키는 것! 불경을 소리 내어 읽는 동안, 우리는 그 뜻을 이해하기에 앞서 몸의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건 분별하는 일상의 마음자리를 가로지는 선분을 내 신체에 긋는 물리적 작업이다. 그렇게 분별심에 균열을 내는 작업, 이것이 곧 불경 읽기다.

루쉰, 길 없는 대지

“루쉰은 샤먼에서의 구차한 삶에 몸서리쳤다. 아무도 없는 휑한 학교 건물에 혼자 남아 강의안을 작성하며 자신을 소모해 가는 하루하루였다. (……) 편히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거의 없는 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감이 그를 엄습했다. 루쉰은 이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는 지나온 자신의 삶들을 되짚어 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갔다. 이 글들이 실린 책의 제목대로, 그것은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일이었다. 그는 떨어져 시들어 가는 꽃들을 주우며, 자신이 흠모했던 니체의 말을 곱씹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살았다, 여기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앞으로도 살 것이다. 우리는 끈질기고 하룻밤 사이에 꺾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라고.”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안티 오이디푸스』(L’Anti-Oedipe)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하죠. 우리가 돌봐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생명력이다. 개인이라든지, 시민이라든지, 주체라든지 혹은 인간이라든지 이런 것 이전에, 이런 것 아래서 우리 존재 자체를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서의 생명력. 이 생명력을 들뢰즈-가타리는 무의식, 또는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들뢰즈-가타리의 관심은 생명/삶의 원리이고, 그에 기반해 생명/삶을 잘 돌보고 기를 수 있는 길을 찾아요. 다른 말로 하면 양생의 원리를 탐색한다고 할 수 있죠. 기를 양(養)에 생명 생(生), 생명을 기르는 원리로서 양생법을 탐구한 게 『안티 오이디푸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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