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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채운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0년

최근작
2022년 4월 <예술을 묻다>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18세기 문체반정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었던 자, 그러나 완벽히 주변화되어 잊혀진 자 이옥. 그가 세상을 떠난 해가 대략 1815년 즈음,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지금 이 자리. 이옥으로 하여금 200년이라는 시공간의 거리를 훌쩍 내달려 지금 여기에 도달하게 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잔존(殘存)의 저항’이라 명명한 그것을, 이옥의 글에서 건져 올리고 싶었다. 하여, 중력의 무게와 휘황찬란한 빛 속에서 휘청거리는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이옥의 글쓰기가 보여 주는, 반딧불처럼 미미하지만 매혹적인 빛을, 먼지처럼 가벼운 춤을 선물하고 싶었다.

루쉰, 길 없는 대지

“루쉰을 읽으며 나는 재차 확인했다. 내 절망은 세계와 타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내 기대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임을. 내가 구축한 환상에 내가 깔린 셈이다. 루쉰의 텍스트는 내 우울함을 삼켰고, 내 헛된 기대마저 날려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가르친다. 인간은 인간에게 절망하지만, 그 인간이 바로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내게 루쉰은 그 자체로 영원한 ‘질문’이다. 미워하든 사랑하든,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가? 절망도 희망도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는가? 그런 것으로서의 혁명을, 너는 진심으로 원하는가? 내게 루쉰을 읽는다는 것은 이 질문을 쥐고 모래바람 가득한 사막에 서는 것이다.”

예술을 묻다

제가 예술을 결과물보다는 비가시적인 차원(태도, 삶, 비전 등)과 연관시키려 시도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작품은 예술적 대상이 아니라 ‘예술적인 것’을 매번 새롭게 정의하고 사유하도록 하는 방편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실, 오래전에 푸코가 던진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푸코는 이렇게 질문하거든요. 왜 예술은 대상을 창조하는 문제로 환원될까, 왜 삶이 예술작품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라고요. 제게는 이 질문이 기존의 예술 개념을 삶으로까지 확장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예술 개념과 활동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주 신선했죠. 맞아! 왜 예술은 가시적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국한되어야 하지? 인격이라든가 생활 양식, 생각을 도야하고 연마하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기예(art)가 아닐까? - 저자 인터뷰 중에서

예술을 묻다

예술이라는 게 태생적으로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키는 수단이었다고는 하지만, 예술이 삶의 액세서리가 되고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하는 걸 보는 일은 참 고역이다. 예술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런 허영뿐인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이 비루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산한 사물 앞에서 아부하고 굽실거리는 노예 꼴이라니. 대중이 당당하고 고귀해지지 않는 한 예술은 껍데기일 뿐이다. 예술품을 생산하는 건 예술가지만 예술품에 양분을 제공함으로써 시간을 이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대중이다. 그럴진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메타버스니 NFT니 하는,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숙고하고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 보는 일이다. 우리를 구원해 주는 건 기술이나 예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런 역량을 발휘하는 가운데 우리는 예술도 기술도 구원할 수 있다. - 서문 중에서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덕분에 전국 곳곳을 다니며 꽤 많은 강의를 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목말라했다. 아마도, 두뇌적 의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모호한 정서와 감정들, 느낌들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인간에게는 성욕이나 명예욕, 재물욕만 있는 게 아니다. 알고 표현하고 배우고 우정을 나누려는 욕망 또한 그것들 못지않다. 그런 욕망이 작동하는 한, ‘예술적인 것’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생산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예술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이고도 필연적인 문제다. 어딘가에서 각자의 ‘예술적인 것’을 생산하고 있을 독자들을 열렬히 응원한다……예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만들고 있는 한 획, 한 음, 한 컷이다. 그게 전부다. 그 ‘전부인 순간’을 놓치고서는 ‘위대한 예술품’은 고사하고 예술품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힘으로 내딛는 한 걸음, 온갖 번뇌들로 요동치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야말로 삶의 가장 빛나는 자리다. - 개정증보판 머리말 중에서

재현이란 무엇인가

재현은 고체 상태의 세계를 꿈꾼다. 각이 딱 들어맞는 단단한 육면체들의 세계. 걸으면서, 걸음과 함께 펼쳐지는 여러 길들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 어딜 가든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세계. 재현은 주어진 구조에서 출발한다. 표준, 평균치, 원점에서. 그 구조 밖으로 이탈하는 것, 기원 없이 시작하는 것, 정처 없는 산책을 용납하지 않는다. 길 위에서 벌어지는 우연한 만남과 사건을, 포뇨의 대책 없고 목적 없는 사랑을, 거위의 물 위의 비행을. 주어진 것 안에서 평균적인 욕망을 갖고 다수적 개념을 재현하기를 강요하는 재현의 세계에는 길이 별로 없다. 많은 이들이 걷는 몇 개의 뻔한 길 말고는. 하지만 사유와 삶, 그리고 예술은 언제나 길을 잃음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노 디렉션, 홈. 집으로 가는 길 없음. 막다른 골목, 혹은 여러 갈래 길. 이 길 위에서, 알몸인 채로, 재현과의 전투를 시작해 보자. ―「머리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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