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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윤성희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3년,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

직업:소설가

기타:청주대 철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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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소설의 첫 만남 11~20 세트 - 전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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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상냥한 사람

상냥한 사람을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생각날 때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주인공과 이렇게 수다를 떨어본 게 언제였는지, 그 기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러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동네를 돌고 돌았다. 길에 버려진 운동화 한짝도, 금이 난 담벼락도, 고지서가 쌓인 편지함도, 이야기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주머니에서 상냥한 사람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정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기 전에 나는 주머니를 들여다보고 물었다. 작가는 어느 정도의 슬픔이 적절한지, 또 어느 정도의 희망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일까? 두 손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나는 물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서 나는 무서웠다. 잘 모르겠다고 수십번 중얼거린 뒤, 나는 겨우 용기를 내어 상냥한 사람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닳고 해진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장을 적었다. 2019년 여름

감기

익숙한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무는 나무가 아닌 것 같고, 전화는 전화가 아닌 것 같고, 구두는 구두가 아닌 것 같고, 밥은 밥이 아닌 것 같다. 나무라고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쓴다. 단어와 단어가 가리키는 것의 사이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진다. 그럴수록, 내 안에, 내 소설에, 빈 공간이 생긴다. 그 빈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이 나는, 참, 좋았다. 세번째 책이다. 아니, 이제 겨우, 세번째 책이다. 게으르다. 무엇보다도, 내 소설들에게 미안하다. 거기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리고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멋진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아름답고, 웃기고, 슬프고, 황당하고, 그리고 솔직한 거짓말의 세계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머릿속이 간지럽다. 더 많은 이전의 이야기들과 더 많은 이후의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구경꾼들

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 속의 ‘나’도 여전히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부러진 갈비뼈는 영원히 붙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겨우 한 귀퉁이 정도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나머지는 누가 보는 것일까? 그 나머지의 공간, 그 나머지의 경험, 그 나머지의 이야기들은 어디를 떠돌게 되는 것일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날마다 만우절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사람들 마음에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구멍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구멍을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들이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다정해지고 싶었다.

상냥한 사람

상냥한 사람을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생각날 때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주인공과 이렇게 수다를 떨어본 게 언제였는지, 그 기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러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동네를 돌고 돌았다. 길에 버려진 운동화 한짝도, 금이 난 담벼락도, 고지서가 쌓인 편지함도, 이야기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주머니에서 상냥한 사람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느 정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기 전에 나는 주머니를 들여다보고 물었다. 작가는 어느 정도의 슬픔이 적절한지, 또 어느 정도의 희망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일까? 두 손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나는 물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서 나는 무서웠다. 잘 모르겠다고 수십번 중얼거린 뒤, 나는 겨우 용기를 내어 상냥한 사람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닳고 해진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장을 적었다. 2019년 여름

웃는 동안

네 번째 소설집의 제목을『웃는 동안』으로 정한 것은 오래전이다. 세 번째 소설집을 막 출간했을 때쯤. 그땐「웃는 동안」이란 단편을 쓰기 전이었고, 동일한 제목으로 단편을 쓰게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 쓸 단편들에 웃는 장면을 하나씩 넣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인공들에게 웃는 동안만이라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어떤 소설에는 웃는 장면이 있고 어떤 소설에는 없지만, 여기 들어가 있는 모든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웃었다. 즐거웠다. 「어쩌면」은 죠스바를 먹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쓰는 시간보다 네 명의 여고생들과 노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 귀신들 덕분에 한 동안 내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이 소설을 쓴 뒤, 일 년 넘게 소설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그만 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기도 했고, 매년 서너 편의 단편을 쓰다보니 좀 지치기도 했다.「5초 후에」라는 단편이 좀 어수선한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욕심이 앞섰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그래서 반성하는 의미로「웃는 동안」을 썼다. 시 쓰는 K선배가 내게 극장에서 소파를 훔치던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그걸 언젠가 소설로 쓰리라 마음먹었다. 소설이 잘 안 풀릴 때. 슬럼프 비슷한 것이 찾아올 때. 그때를 위해 아껴두었던 이야기였다. 쓰다 보니, 이 친구들에게, 「웃는 동안」이라는 제목을 선물해주고 싶었다.「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는 서울에 관한 테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이다. 서울에서 한 번도 안 살아봐서 소설이 이렇게 되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사라진 육교들과 사라진 구멍가게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제목은 신동옥 시인의 시「별들의 옷」을 읽다 떠올렸다. 시에 나오는 구절은 이렇다. “소년과 고양이는 한사코 담장 위를 걷지.” 초등학생 때 나는 담장 위를 걷는 걸 좋아했다. 양팔을 뻗고 담을 걷는 기분. 그 기분을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매일 매일 초승달」 이 소설은 소매치기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가 관절염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쓰게 되었다. 첫줄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보니, 혼자 소매치기를 하는 것보다는 자매들이 같이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른 이야기로 바뀌었다. 발표를 할 당시에는「매일 매일 초생달」이었는데 표기법에 맞춰 변경했다. 주인공의 나이를 생각하면 초승달이란 말보다 초생달이란 말을 더 자연스럽게 썼을 것 같았고 그래서 표기법이 틀린 걸 알면서도「매일 매일 초생달」이란 제목을 고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나 혼자만의 고집처럼 느껴졌다. 이 단편을 발표한 후 장편 연재를 시작 했고 그래서 일 년 정도 단편을 쓰지 않았다. 「공기 없는 밤」을 쓸 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등단한 이후로, 일 년 이상 단편 쓰기를 쉬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오래 보기 대회에 나가는 할아버지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사이 몇 번 시도하다 실패하기도 했다.「공기 없는 밤」을 쓰고 나니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비슷한 소설을 한편 더 쓰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오래된 선풍기 청소를 하다가 가짜 자서전을 쓰는 여자가 떠올랐다. 선풍기를 청소하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선풍기를 다시 조립한 뒤, 책상으로 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부메랑」이 그것이다.「눈사람」은 신문 기사를 보고 떠올린 소설이다. 일본의 최고령자가 실은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었다는 기사였다. 죽은 뒤 방에 갇힌 유령을 상상하게 되었다. 또 귀신 이야기야! 라는 말을 들을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쓰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게 되는 유령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 섬세한 소리를 표현해내는 일이 내겐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문장은 눈 내리는 소리를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투박했다.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을 쓸 당시 나는 자주 산책을 했다. 어떤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아주 느린 공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쓰다 막혀도 초조해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다 한 줄. 그렇게 썼다. 나이 든 주인공이 나온 소설을 연거푸 썼더니 좀 지루해졌다. 다시 소년이나 소녀가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폴짝, 팔짝, 이런 단어에 어울리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한 달 정도는 매일 폴짝, 팔짝,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녔다. 그렇게 해서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는 소년이 내게 왔다.「구름판」이라고 제목을 정하고 보니, 그냥 이 소설이 좋아졌다. 작가의 말이 길어졌다. 자신감이 없어질 때 말이 길어지는 법인데. 그렇게 보이더라도, 이번 작가의 말에는 열편의 소설들을 하나하나 호명해주고 싶었다. 문장이 되기 전에 내게 찾아왔고 문장이 된 후에도 내게서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열편의 소설 안에 와글와글 모여 있다. 그들은 사소한 계기로 나에게 와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그저 매일 썼다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그들 스스로 알아서 했다. 고맙다. 내 문장이 그들의 삶을 따라가지 못해 미안하다.

웃음을 선물할게

“힘들 때마다 생각합니다. 누구나 주머니에 좋아하는 장면 한두 개를 넣어 두어야 한다고요. 나를 행복하게 했던 장면 한두 개 말이에요. 그리고 가끔씩 꺼내서 들여다보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고요.”

첫 문장

첫 문장은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여러 번 그 말을 중얼거렸다. 첫 문장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두 번째 문장은?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세 번째 문장도. 네 번째 문장도. 그리고 마지막 문장도.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이 아니다. ‘첫 문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문장도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니 지워도 상관없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소설을 써야 했다. 문장에 욕심이 생길 때마다 나는 걸었다.

하다 만 말

저는 종종 제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곤 합니다. "걱정 마라. 얘야." 그러나 실은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제게 그런 말을 더 자주 해줍니다. "걱정 마라. 얘야."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제게 그런 말을 더욱 더 자주 해줍니다. "걱정 마라. 성희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그들이, 저를 걱정해 주고 사랑해 주고 충고해 준 덕분에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부엌에는 아주 오래된 상(아마 이십 년이 다 되어 갑니다)이 하나 있는데 거기 일곱 식구가 앉아 밥을 먹는 순간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제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들을 좀 더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못해서 저는 늘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제 글 쓰기가 나아지는 그때를(설마, 있겠지요) 기다려 달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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