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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조재도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7년,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

최근작
2024년 3월 <퇴직 후 잘사는 인생>

12

공묵의 처

초봄, 장난감, 낮달, 아코디언, 밤하늘 기러기 소리……. 이번 시집에 들어와 있는 풍경들이다. 좀 쓸쓸한 온기가 묻어 있는 無人境의 것들, 이런 것들도 아름다움의 여러 겹 중 하나이겠지.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이번에 묶는 합동시집 2권인 이 책은 그동안 ‘사십편시선’에서 시집을 발간한 시인 가운데 희망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우리는 동인 활동을 같이 하거나 어떤 모임에 속해 있지도 않다. 그야말로 나이도 어느덧 초로에 접어들어 눈썹이 희어지고, 각자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시를 쓰면서 살고 있다. 김정원(전남 담양), 송창섭(경남 삼천포), 박우현(대구), 전종호(경기도 파주), 박용주(충남 공주), 전 인(충남 계룡), 임덕연(경기 남양주) 조재도(충남 천안), 신탁균(충남 아산), 나종입(전남 나주). 거주지만 본다면 가히 전국적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따로 또 같이’의 실천 결과가 이 합동시집이라 할 수 있다. 각자 처해 있는 곳에서 시라는 이마 위 ‘별’을 함께 바라보며 각자의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시로 만나고 시로 교류하고 시의 길을 함께 걷는 늘그막 인생의 도반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린 ‘우리 식대로’ 살고 우리 식대로 시를 쓰고 우리 식대로 마음을 나눈다. 원래 예술(시)의 본령이 ‘자기 식대로’ 아닌가? 자기 식대로 고투하고 추구한 결과 생기는 무늬가 바로 그 사람의 개성 아닌가. 그것을 우리는 그 사람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이라 부른다. 예술가라면 반드시 성취해야 할 최후의 성채, 그것이 곧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자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갖는 그만의 예술 세계인 것이다. (중략) 그렇다.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이런 일을 해보려고 한다. 젊은 시절을 격정의 세월에 흘려보내고, 시골 변방에 파묻혀 청탁은커녕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시 쓰기 작업을 우린 이런 식으로라도 서로 확인하고 위안해 보자는 것이다. - 모두를 대신하여 조재도 씀 - 여는 글

넌 혼자가 아니야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부족한 결점’도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완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한두 가지 결점은 있게 마련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완전함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당신 가슴에 바람이 분다

여러 해 동안 나는 고비(사막)를 내 안에 품어 왔다. 고비는 나에게 광활한 자연 풍광보다는 정신이었다. 문명 이전의 세계와 문명 이후의 귀착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평소에 나는 영혼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푸른 하늘에 잠길 듯 말 듯 떠 있는 낮달을 보면, 거기 내 존재의 始原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동요 <반달>을 흥얼거렸고, 동요에 나오는 ‘서쪽 나라’가 고비사막 동쪽 알타이 산맥 언저리일 거라는 생각에 젖어들곤 했다. 그렇게 고비는 나에게 신화적으로 다가왔다. 티비에서 그 쪽 사람들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채널을 멈추었고, 왠지 마음의 본향에 가 닿은 것 같아 가슴이 고즈넉이 부풀어 올랐다. 고비는 물 밑 돌 틈에 가만히 떠 있는 물고기의 뜬 눈처럼 내 안에 살아 있었다. 그렇다고 그곳에 가려고 성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묵묵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잊지 않고 지내던 차에 갈 기회가 생겼다. 이시백 작가 가는 길에 묻어가게 된 것이다. 고비에 들어선지 3일 짼가, 새벽이었다. 담요를 몸에 말고 잠을 이루지 못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뭐해. 어서 나와 봐.’ 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정령의 소리였다. 옷을 걸치고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갔다. 해가 뜨기 전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내 몸을 훌쳤다. 머리칼이 날리고 옷자락이 펄럭였다. 하룻밤 가라앉힌 흙탕물처럼 마음이 맑게 고였다. 그때 비로소 고비가 눈에 들어왔다. 풀꽃, 흙덩이, 돌, 도마뱀 같은 자잘한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날 나는 아침 해가 불쑥 떠올라 내 그림자를 초원에 길게 드리울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 시가 한 편 떠올랐다. 바람에 실려 가리 그러다 점이 되리 그러다 無가 되리 바람마저 없으리 「사중주」 2주간의 여정에서 돌아온 게 2015년 8월 6일이었다. 짐을 정리하고 쉬면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8월 10일 새벽, 이상한 기운에 이끌려 시가 한 편 써 졌다. 「그리운 고비」라는 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때부터 말 그대로 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안에 내장되어 있던 시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8월 14일까지 5일 동안 고비를 주제로 한 시 50편을 썼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일이 어찌된 일인지 잘 모른다. 나는 이 시화집이 정보가 아닌 문학이 되도록 했다. 일반 여행서와 같이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지침을 담은 책이 아닌 고비가 품고 있는 ‘첫’에 대한 문학적 감흥을 담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시화집이 한 편의 ‘고비 교향곡’으로 읽혔으면 싶다. 하나의 교향곡을 감상하는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비를 주제로 한 음악으로 감상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분들이 있다. 고비의 장엄한 풍광을 유려한 사진으로 담아 이 책에 쓸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해 준 이시백 작가, 박권화 김영희 선생과 함께 고비를 걸었던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 사진 한 장의 크기, 위치, 시와의 어울림을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편집해 준 작은숲 출판사 강봉구 사장에게도 책의 아름다움을 같이하고 싶다. 일에 지친, 관계에 지친 당신이, 이 책을 연주해 주었으면 좋겠다.

대왕자라와 물고기들

물고기 나라에는 물고기가 살아야지. 그러나 이 책의 이야기는 그게 아니야. 물고기들이 자기 살던 곳을 버리고 탈출하는 이야기야. 이런 황당한 일들이 인간 세상에서 종종 일어나. 지배자가 어리석고 무능할 때 그렇지. 지배자가 폭군일 때 사람들은 그 지배자를 몰아내거나 폭정을 피해 다른 곳으로 숨지. 절대 가만 있지 않아. 그게 ‘민주(民主)’야.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려는 행동이지. 입이 여럿이면 쇠도 녹인다는 사실을 우린 이번 ‘촛불의 힘’을 통해 확인했어. 나는 이 책에서 물고기들이 지배자인 대왕자라를 몰아내기보다 그를 피해 저수지를 탈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끌었는데 많은 고심 끝에 그렇게 했어. 이 책이 실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우화 동화라는 점에서 말이야. 물고기 하나하나가 ‘민주’?야. 그들이 물고기 나라의 주인일 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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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싸움닭 샤모』,『불량 아이들』에 이은 3부작 청소년 소설 가운데 마지막 권이다. 『싸움닭 샤모』를 펴낸 게 2012년이었으니 만 5년 6개월 만에 연작 소설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세 권 소설을 통해 나는 한 인간이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면서 겪는 심리, 정서, 행동, 인지발달 정도, 외부 환경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대응, 정체감 형성 등을 다루려 하였다. 또 그동안 교직에 있던 사람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그리고 세상을 조금 먼저 산 인생 선배로, 유년기 청소년기에 있는 학생이나 학부모 등 내 책을 읽는 분들에게 각각의 시기에 꼭 필요한, 다시 말해 성장 과정에서 인격 형성에 꼭 필요한 요소라 생각되는 것들을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였다. 첫 작품 『싸움닭 샤모』에서는 한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유년기라는 것. 그 시기에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있는데, 우정, 호기심, 자기만의 비밀 공간, 놀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 이성에 눈뜸, 어떤 이야기에 빠져 보는 것,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거라는 것. 이러한 삶의 알갱이들을 대자연의 품에서 마음껏 체험하며 자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작품 속 인물을 통해 그렸다. 다음 『불량 아이들』에서는 날로 경쟁이 격화되는 사회에서, 사회와 학교가 변하지 않는 한 공교육 기능은 마비될 수밖에 없으며, 그 속에서 자라는 청소년기 전기에 해당하는 14~16세 아이들, 그 가운데 이른 바 ‘문제아’라는 불량 아이들 이야기를 그렸다. 그들 겉모습이 거칠고 되바라지고 반항적이지만, 그리고 그들 내면이 열등감에 빠져 있고 자존감이 낮지만,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 나이에 맞는 감성과 판단력, 의리와 사회적 환경에 대한 대응력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 작품인 이 소설에서는 청소년기 후기라 할 수 있는 17~ 19세 아이들이 가출 청소년 보호기관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그렸다. 어린 나이에 이미 어른들이 해야 할 고민과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 가정의 빈곤과 무관심, 학교에서의 부적응 등으로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이 마지막으로 흘러들어온 쉼터. 그곳에서 아이들은 단기短期생으로 3개월 생활을 같이 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청소년 임신 (미혼모) 문제도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성인의 전단계인 청소년기 후기는 전기와는 확연히 다른 성장 모습을 보인다. 추상적 사고 능력이 발달해 깊이 추론할 수 있고,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견해를 가져서 논쟁과 토론을 깊이 있게 할 수 있으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또 사회 환경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 정체감을 갖고, 그에 따른 사유(인생철학)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청소년기 발달 단계의 특성이 각 권 소설에 반영되도록 노력했다. 세 권 소설을 통해 인간의 성장과 관련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려냈다는 점에 만족한다.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드린다.

백제시편

인류문화의 거대한 탈바꿈의 끝자락에 내가 있고, 그 속에서 백제를 보았으며, 백제는 그렇게 내 안에 감꽃 빛깔로 둥구나무 그늘로 털면 와수수 쏟아지는 들깨 내음으로 살아났습니다. 나의 시안(詩眼)이 머문 지점이 거기였으며, 시인으로서 나는 이제 얼마 안 있어 곧 사라지고 말 그분들의 모습과 언어를 '최후'의 심정으로 기록하고자 하였습니다. 위하고 / 즐거워하고 / 노할 줄 알았던 사람들 그리하여, 백제 / 떠나왔지만 / 언젠가 가야 할 영원한 곳!

불량 아이들

2012년 8월31일 나는 학교를 떠났습니다. 24년 2개월 동안 근무한 학교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 4년 중학교에서 20년. 그동안 해직과 숱한 경고 인사조치 등으로 열세 학교를 옮겨 다녔습니다.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떠나면서 나는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동안 내 삶을 압축해 표현한다면 다음 세 단어일 것 같았습니다. ‘운동 · 문학 · 청소년’ 운동은 제가 교사로서 한 교육운동을 말합니다. 그리고 문학과 내가 만난 아이들. 운동과 문학은 늘 내 안에서 갈등하면서 충돌했습니다. 한때 운동은 문학에게 ‘반역의 언어’가 되도록 충동하기도 했습니다. 시대 상황이 그렇게 강제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 시대 문학은 거칠었고 쇳소리가 났으며 불에 그을린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운동을 뒤로 하고 문학에만 전념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말을 새로 공부하고 문학다운 문학을 하려고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운동하면서 몸에 밴 진정성, 인간과 사회 변혁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새벽마다 일어나 글을 썼습니다. 그런 어느 날, 내 안에서 행복한 질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대립 관계에 있던 운동과 문학이 행복한 만남을 이룬 것입니다. 청소년문학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쌓아 온 경험, 10년 이상 새벽에 일어나 끈질기게 매달려 온 문학적 수련, 그리고 운동하면서 형성된 인간과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더 이상 돌멩이처럼 덜그럭대지 않고, 내 안에서 고운 모래처럼 청소년문학이라는 한 그릇에 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첫 작품으로 『이빨 자국』을 썼습니다. 두 번째로 『싸움닭 샤모』를 썼고요. 그리고 이 책 『불량아이들』이 세 번째 써 내는 청소년 소설입니다. 『불량아이들』은 내가 만난 아이들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나와 내가 만난 아이들. 한 세대를 뛰어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참으로 많은 것들이 아찔할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경쟁 사회라는 것, 학벌 중심 사회라는 것, 점수에 의해 아이들은 등수가 매겨지고, 경쟁 없이는 발전도 없고, 세상은 적자생존이며, 약한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살벌한 논리가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아라는 아이들도 따지고 보면 입시 경쟁 교육이 낳은 ‘괴물’들인 것입니다. 공교육 붕괴니 학교 폭력이니 하는 문제의 원인으로 여러 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날로 격화되는 경쟁에 있다는 것, 경쟁 교육과 경쟁 사회가 변화지 않고서는 괴물들의 양산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였습니다. 나는 이 소설을 5년 전에 썼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저 나름대로 작품을 통해 문제재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쓰고 난 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교사, 학생, 학부모, 일반 문인 등 15명 이상 분들에게 보여 주면서 소감과 지적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중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하나는 중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여)의 말입니다. “어머, 요즘 애들이 정말 이래요? 말로 듣기는 좀 했는데, 정말 이렇구나.” 학부모는 좀처럼 소설 속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막된 세상에 막가는 아이들의 행태 정도로 느끼는 듯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중3 여학생의 말입니다. “뭐 별거 아니네요. 소설에 나오는 애들이 다 집에서 학교 잘 다니고 있잖아요?‘ 나는 여학생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놀든 어쨌든 그래도 집에서 학교 다니면 ‘범생이’라는 말. 그렇다면 이 학생이 말하는 이른바 요즘 ‘날라리’라는 애들은 어떤 식으로 놀까요? 기성세대라 할 학부모와 그 자녀에 해당하는 여학생 간의 시각차가 이렇게 컸습니다. ‘운동 · 문학 · 청소년’ 지나온 나의 삶을 새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면, 앞으로 살아갈 삶 역시 이 세 단어의 연장선에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학생을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세상이라는 좀 더 큰 교실에서 청소년을 위한 문학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불량아이들’의 겉모습은 거칠고 되바라지고 반항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열등감에 젖어 있습니다. 그들이 기성세대의 삶을 흉내 내며 눈에 힘을 주고 주먹을 을러대지만, 그들의 자존감은 매우 낮으며 내부에는 그들 나이에 맞는 여리고 섬세한 감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놓치지 말고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핍과 상처를 안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들도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아이들이며, 그들 나름대로 성장의 아픔을 겪으며 하나의 인간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것. 그런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아이들을 단순히 싸가지 없는 놈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산도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찾을 수 있는 산이 좋은 산이다. 그런 면에서 집 뒤에 있는 태조산은 나에게 참 각별하다. 그 산을 오래 다녔다. 거의 한 30년. 그동안 나에게도 산고랑 같은 주름 몇 개 더 깊게 새겨졌다. 산에 다니며 쓴 여러 편의 시 가운데,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못 된다 싶은 것은 골라내고 80편을 묶었다. 마음의 독(毒)이 씻기어,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살게 해주는 산. 사람보다 품이 넓어 인간사 희로애락이 부딪치지 않는 산. 바다가 거품을 밖으로 밀어내듯 때 묻은 인간의 언어를 버리라던 산. 갈수록 말은 줄고 뜻은 넓어진다. 하루가 그렇고 시도 그러하다.

소금 울음

나는 1985년 8월 『민중교육』이라는 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책에 시 「너희들에게」 외 몇 편을 실었는데, 그 일이 당시 제5공화국의 용공조작으로 인해 사건화되면서 학교에서 파면되고, KBS 저녁 9시 뉴스에 내 시가 붉은 사인펜으로 밑줄이 그어진 채 소개되는 등,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등단했다. 그 후 30년이 지났다. 29살이던 나는 이제 60줄에 앉았다. 1988년 첫 시집 『교사일기』를 냈고, 2014년 아홉 번째 시집 『공묵의 처』를 냈다. 2013년 11월 즈음이었다. 그동안 나는 ‘평화’를 주제로 한 글쓰기에 매진하다 어느 정도 마무리 되는 단계에 있었다. 그 전부터 늘 마음에 걸려 있던 것이, 이 작업이 끝나면 모든 것을 밀쳐두고 오로지 ‘시 공부, 시 쓰기’에 전념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옛날 습작기의 문학청년처럼 오로지 시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렇게 8개월 동안 시에 매달렸다. 그야말로 시만 읽고 시만 썼다. 그렇게 하여 쓴 시가 70편. 그 가운데 10편을 덜어내고 60편으로 묶은 시집이 이 시집이다. 시에 전념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시의 본령은 ‘새로움’이라는 것이다. 사회 현실에 변화가 없더라도 시는 새로워야 한다는 것.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처음 시를 쓰듯 쓴 시들이 여기 묶인 시이다. 그동안 인생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놓지 않은 끈이 있다면 바로 시였다. 시는 나에게 애환이요 울음이었으며, 현실 인식의 나침반이었고, 고투였다. 시가 없는 내 인생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나온 지금 고독과 글 쓰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고독하고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한다. 시도 자연스럽고 단순하면서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시,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젊은 나이에는 쓸 수 없는 시.

싸움닭 샤모

사람을 집에 비유하자면, 어린 시절은 집터와 같고 청소년기는 그 집의 대들보와 같다고.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시기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인데, 청소년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년기, 곧 어린 시절이라는 것. 왜 그렇게 유년기가 중요할까? 사람에게는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어려서 체험해야 할 인격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야. 그 시기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 이를테면 우정, 호기심, 자기만의 비밀한 공간, 놀이, 생명에 대한 외경, 이성에 눈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 이런 것들이 그것인데, 이러한 삶의 요소를 대자연의 품에서 체험해 보는 것.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어때? 앞에서 말한 것과 많이 다르지? 아이들 대부분은 자연보다는 인공물, 다시 말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잖아? 그러다 보니 자기 스스로 무슨 일을 체험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내가 이 책에서 말하려 하는 것도 이런 삶의 요소를 유년기에 경험하면서 자란 사람이 나중에 커서도 온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어.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아이들에게 자연이 주는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거지. 사람 손에 만들어진 인공물은 자연이 주는 영원한 의미를 우리에게 주지 못해.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하나하나의 생명을 배워 가고, 생명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수한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돼. 그런 가운데 우리는 약한 것, 생명이 있는 것, 더 나아가 생명이 없는 것까지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제3의 부모라고 할 수 있어. 인간과 사물로부터 받은 상처를 궁극적으로 받아안아 치유한다는 점에서, 생살이 돋아나오는 그 자리에서 온전한 인격을 갖춘 한 인간이 길러져 나온다는 점에서 말이야. (중략) 주의 깊은 독자라면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의 결말이 주인공이 소원하던 일의 실패, 혹은 미완성으로 끝난다는 것을 눈치 챌 거야. 실패 혹은 미완성, 그것은 무엇일까? 아쉬움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그 세계를 꽉 채운 듯한 어떤 충만감과 즐거움, 그리고 세계와 내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일체감, 이런 느낌 속에 뒤섞여 있는 아쉬움. 그 아련하기만 한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 작가의 말 중에서

아름다운 사람

2017년 올해는 민족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출판사 관계자와 이야기하던 중, 윤동주 캘리 필사 시집을 내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고, 그 계제에 내 시선집도 같이 해 보자는 말이 나왔다. 윤동주 가는 길에 나도 붙어 가는 셈이니, 말꼬리에 붙은 파리가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이 책에 어울린다 하겠다. 시선집으로는 처음인 이 책에 수록될 시를 선정하는데 특별한 기준은 두지 않았고, ‘재미삼아’ 인터넷에 올라 있는 시로 하면 어떨까 싶었다. 우리 동네에 빵집이 하나 있는데 지난해부터 단골로 그곳에 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산책 겸, 기분전환 겸, 특히 한여름에 빵빵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 쐬러 거기 갔는데, 거기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한두 시간 멍~ 때리기. 그때 휴대폰으로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에 내 시 가운데 두 번 이상 올라 있는 게 뭐가 있나 찾아보았더니 59편. 그 가운데 긴 시는 빼고 47편을 이 선집에 실었다. 그러니 나의 뜻보다는 불특정다수의 선호가 여기 실린 시들을 살려낸 셈이다. 시를 읽으며 그동안 내가 관심을 두었던 시의 영역이 대략 세 가지 정도임을 느낀다.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농촌생활정서, 교육현실과 민주화 투쟁, 인간 본성 탐구. 몸담고 살아온 곳에서 시가 씌어졌고, 민중적 세계관에 기초한 고뇌와 인간 본성 탐구가 시어(詩語)에 대한 살뜰한 관심 속에 씌어졌음을 느낀다. 오랫동안 시의 길을 걷게 해 준 많은 분들께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다시, 밤을 횡단하여 고독하고 불안한 영혼에 가 닿는 시를 위하여. 2017년 12월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

15번째 시집입니다. 80편을 담았습니다. 이 시집은 그동안 제가 썼던 시 가운데 ‘어머니’와 ‘고향’을 주제로 한 시에 새롭게 쓴 시를 더하여 만든 책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역시 어머니와 고향은 저의 유년기적 정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리하여 제 시의 근원이자 삶의 원형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더욱이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가는 요즘, 기억 속에 가물대는 그때 그 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이야기들이 애틋한 기억으로 떠올라 설움의 그리움에 젖곤 합니다. 이 책을 펴내는 가장 큰 동기도 그렇게 이름 없이 살다간 분들에게 시로나마 헌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습니다. 작고 외지고 쓸쓸한 산골 마을 온암리. 생각하면 애잔히 눈물이 고이는 곳. 밤하늘 별이 하얗게 쏟아지고 한낮 수탉의 울음이 이엉지붕 마을에 울려 퍼지던 곳. 아무리 기계문명의 시대를 산다고 해도, 그 속에서 살던 때의 그 찬란함마저 없다면 저는 무엇으로 이 세상에서 부자이겠습니까.

어쩌다, 한마디

♣ 책이라는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이 편지가 ♣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유리병 편지’와 같은 것들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여러 매체와 경로를 통해 한 말들이 저에게까지 선물처럼 전해져 온 것들입니다. 그렇게 저에게 와 저의 내면에 오래 곰삭으며 제 삶을 깨우치고 이끌어준 등대와 같은 말들입니다. 책이라는 유리병 속에 담아 띄우는 이 편지가 누군가의 가슴의 해안에 닿아 그곳에서 새 흙을 만나 새싹을 틔웠으면 좋겠습니다. 머리말 이 책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모든 글이나 말은 넓게 보아 대화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군가 듣고 읽어줄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그 자리에 듣는 사람이 있지만, 글은 누군가 읽어 줄 사람이 어딘가 멀리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씁니다. 파울 첼란이란 독일 시인은 자신의 문학을 ‘유리병 편지’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기가 쓴 글을 유리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우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의 해안에 닿아 읽힐 거라는 희망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도 유리병 편지와 같은 것들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여러 매체와 경로를 통해 한 말이 저에게까지 선물처럼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신문이든 TV든 책이든 영화든 지하철에서 들은 말이든 가족 간의 대화든 아니면 저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내면의 소로를 따라 올라온 혼잣말이든, 그런 말 한마디가 오랜 시간과 공간을 지나 저의 마음에 와 닿은 것입니다. 그렇게 저에게 와 저의 내면에서 또 오랫동안 곰삭으며, 제 삶을 깨우치고 이끌어준 등대와 같은 한마디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책에 실린 말들을 그야말로 ‘어쩌다’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라는 말에는 의지를 바탕으로 하는 필연보다는 뜻하지 않은 우연적 요소가 더 들어있습니다. 젊어서는 저의 삶에도 ‘반드시’ ‘꼭’ ‘절대로’와 같은 단정적인 색채가 진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런 색채들이 그리운 존재의 흔적으로 남았을 뿐, 세상의 많은 일은 이 어쩌다라는 품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다 보니 사람이 태어나고, 어쩌다 보니 결혼이라는 것도 하고, 어쩌다 보니 무슨 일을 하다 죽는. 이 책에 인용된 말의 출처는 본문에 거의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도 있는데, 그것은 그 출처는 기억나지 않음에도 오직 그 말 한마디가 제 인생에 강렬한 인상(영향)을 끼쳐 버려둘 수 없어서입니다. 그렇게 여기 실린 말들은 제 인생의 디딤돌이 되어 삶을 통찰하는 지혜와 용기와 위안을 주었습니다. 한편 따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글은 필자의 것임을 밝혀 둡니다. 책이라는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이 편지가 누군가의 가슴을 만나 그곳에서 새싹을 틔웠으면 좋겠습니다.

오리와 참매의 평화여행

어느 날, 평화의 씨가 나에게 날아왔습니다. 평화에 무감각한 나를 톡톡 깨우더군요. 마치 부드럽게 내리는 봄비가 언 땅을 가만가만 두드리는 것처럼. 한 사람이 평화로우면, 그 주위 사람들도 맑고 평화로워집니다. 그 주위 사람들이 평화로우면 그들을 감싸고 있는 햇빛과 공기가 부드러워지고, 그 집 지붕 밑의 온도가 따뜻해집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이처럼 평화의 파급력은 강하답니다. 그러므로 우린 선택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삶을 살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이 조용한 혁명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위로받고 싶은 날들

이 글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언어가 뒤따라가며 쓴 것이다. 그러기에 이 글은 머리보다는 발바닥에 가깝다. 나를 떠받치고 있는 발바닥. 이 글에는 나의 땀과 눈물과 절망, 상처와 기억과 회한, 역사와 한 개인의 문화가 깃들어 있다. 나는 이것들을 자랑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 ‘나’라는 한 점 생명을 잉태한 후, 나는 또 하나의 삶의 한 구비를 돌아가는 중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 글을 썼다. 아마도 직접 계기가 된 것은 그동안 근무해온 학교를 떠난 일일 것이다. 2012년 8월 31일 나는 24년여 근무한 학교를 떠났다. 이 글을 쓰면서 두 가지를 줄곧 유념했다. 하나는 글의 내용이 주로 ‘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했다는 점이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대상황 등 객관적 상황을 언급했고, 내가 살았던 ‘사소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사소함 가운데 존재가 드러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등장인물 중 이미 돌아가셨거나 살아 있지만 꼭 이름을 밝혀야 하는 경우에만 본명을 썼고, 그 외 분들은 모두 영문자 이니셜로 썼다는 점이다. 오래 전 초등학생이 쓴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다. 나는 시험이 무섭다 시험 보고 매 맞고 통지표 받고 매 맞고 내 다리 장한 다리 _「시험」(김민선, 대구 대봉초 5학년) 나도 나에게 ‘장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견뎌냈다는 것. 상처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꼼지락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 그런 나에게 ‘장 하다’는 위안의 말을 건네고 싶다. 이 글을 통해 어쩌면 나의 삶이 그렇게 위로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빨 자국

이 소설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인 '구승재'라는 아이의 눈을 통해 본 그네들의 이야기다. 성장하느라 팔다리가 길어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코밑이 거뭇거뭇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승재. 그러나 큰형이 장애인이기에 겪는 마음고생과 열등감을 숨기고 있는 승재. 그런 아이가 결국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열등감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 나오는 구승재라는 아이와 나는 어떤 사이냐고. 혹은 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냐고. 거기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먼저 구승재와 나는 어느 면에서는 같고 또 어느 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에 내 체험이 아주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소설이란 작가의 체험을 벽돌로 찍어 지은 집이라는 점에서.

자전거 타는 대통령

이제 그분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소중한 가치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누구나 골고루 잘사는 세상,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차별 없이 골고루 대접받는 세상’을 말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분이 남기고 간 가치를 어린이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땅에 심은 꽃씨처럼 소중히 가꾸어야 할 가치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분을 그리워합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간직하며 행복해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저도 행복했답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 여러분도 그분이 남긴 가치를 되새기며 행복하길 바랍니다.

자전거 타는 대통령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산에 들에 푸른 생명들이 돋아나 봄 잔치를 벌이던 5월 어느 날 그분은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맑은 공기, 환한 햇살, 나뭇가지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와 사랑하는 가족을 뒤에 두고 떠나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저는 그분 이야기를 동화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이 여러분과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가치’란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모두의 마음을 열어 한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분이 가신 지 어느덧 2년이 가까워옵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소중한 가치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가치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누구나 골고루 잘 사는 세상,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차별 없이 골고루 대접받는 세상’을 말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분이 남기고 간 가치를 어린이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땅에 심은 꽃씨처럼 소중히 가꾸어야 할 가치입니다. 그분은 대통령 일을 마친 후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렸고, 어린이와 동물과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작은 일에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알았고 행복한 순간마다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분을 그리워합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간직하며 행복해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저도 행복했답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 여러분들도 그분이 남긴 가치를 되새기며 행복하길 바랍니다.

전쟁 말고 평화를 주세요

평화는 지켜내지 않으면 쉽게 깨집니다. 평화가 깨진 자리에 전쟁이 시작됩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불태우고 무너뜨리고 죽입니다. 평화만이 우리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삶까지도 평화롭게 합니다. 모처럼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 소중한 기회를 어린이와 어른 모두 잘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의 앞부분은 라 퐁텐의 「늑대와 새끼 양」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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