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 쓰기가 내 정신의 치료약인지 아니면 아편 같은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가끔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악동 같은 심리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결국 그런 힘이 글쓰기의 활력과 지적 유희를 도발하는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작은 굴레 속에서만 맴돌다 모처럼 어색한 차림을 하고 세상에 불쑥 얼굴을 내민 느낌이다. 십 년 넘게 소설가로서 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 모두 독자들 덕분이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당신에게 이 작품집을 바친다.
문예중앙에 소설 원고를 넘기자마자 다시 네팔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전번에 너무 서둘러 떠났다는 아쉬움이 내 발길을 잡아 끄는 모양이다. 12월의 스산한 바람이 부는 지누의 산골짜기는 또 다른 빛깔일 것이다. 지난 가을, 하훈은 산능선을 따라 붉게 적셔 오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순간은 소설이라는 상상의 공간 속으로 전이되었지만 내게는 실제로 경험한 추억처럼 생생하다. 생각해보면 '떠남과 멈춤'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로체 남벽을 등반했고, 지금은 무작정 떠나는 길이면서 내 속에 갖혀서 또 이렇게 쓰고 있지 않은가. 어찌 되었든 이번 작품은 나로 하여금 전혀 다른 세계, 원시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태고의 자연을 두 번씩이나 경험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