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백스페이스키로 쓰는 것이다.
‘소설 쓰기는 파지 내는 일’이라는 선배들의 말을 흉내 내봤다.
술술 써질 때보다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때가 당연히 더 많다. 그럴 땐 그냥 써본 문장과 애써 써낸 문장이 구분되지 않는다. 돌아보니 여기 수록된 여덟 편은 무수히 지워낸 글자들을 깔고 앉아 있다.
「식은 볕」의 초고를 완성한 뒤 갔던 겨울 바다가 기억난다. 해변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면서 낚싯대를 휘둘렀다. 초심자에게 만만한 원투(遠投) 낚시에 갓 빠져든 때라 추운 줄도 몰랐다. 누가 봤더라면 어지간히 미쳐 있는 꾼으로 보였을 걸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어쩌면 지금도 나는 저 망망한 바다에 자꾸 뭘 던져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답해본다. 엎치락뒤치락했지만 가만히 있었더라도 지금이고 여기였을 것 같다는 소리다. (……) 나는 우리가 넘겨짚을 수 없는 거룩한 질서나 순리라는 게 진짜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의 의지와 도전이 개척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