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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민병훈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2년 4월 <[큰글씨책] 황제 The Emperor>

영화가 이긴다

저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종종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합니다. 추상적인, 무의식적인, 난해한, 혹은 모호한 영화에 대해 사람들은 일종의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화를 보는 태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영화는 즉각적이고 곧바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의 근원이 궁금합니다. 타자와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상상력을 재산처럼 키워온 예술가들도 영화 앞에서는 자의적 해석을 망설입니다. 영화가 늘 스스로 정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영화의 다양한 해석을 방해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건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그 느낌을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낌을 정리해보는데 감독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많은 관객이 정반대되는 관점의 평론을 남겨 당혹스러운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의미는 어떨까요? 지금까지는 ‘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이라는 의미가 더 크게 담겨있는 기록 영화를 더 많이 봤고 또 그런 영화를 더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그 의미에 대해, 내가 받은 느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감독의 신선하고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상상화를 감상하게 해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상상력인 것만은 아닙니다. 현실이 너무나 강력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물의 위치를 정하고 결정한 것처럼 그 모습 그대로 현실 안에서 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거울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프레임 안에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유쾌한 놀이를 하고 있지만, 영화는 우리 삶의 현실 또한 오롯이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영화의 가치는 아름답다고 표현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습니다. 영화는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의 사고구조를, 우리가 사는 방법을, 이미지를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입니다 영화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감상을 위한 예술품도 아니며, 생활에 필요한 오락만을 만들어내는 경제적 생산물도 아닙니다. 영화는 인간의 삶을 제 안에 담는 그릇입니다. 단순한 영화의 구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던 제가 그 말뜻을 이해하고 영화에 담겨있는 사상과 철학을 고민해보게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영화를 만들면서 의식의 확장을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변화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로서의 영화는 인간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종교적 의식이나 기도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과 문학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즐겁고, 흥겹고, 기쁘고, 아름다운 삶과 인생의 관계를 이해함은 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근원적 바탕입니다. 영화는 이 순간 거대한 크레인 같은 장치와 어마어마하게 큰 철골 구조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리는 우리 자신의 일상 속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귀함을 아름다운 영상으로써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사명은 저한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것만 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더러운 세상의 악과 폭력과 야만성 속에서 더불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 세상의 온갖 야만성을 함께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쓸쓸을 노래한다고 해서 인생이 쓸쓸한 건 아닙니다. 쓸쓸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세상이 쓸쓸한 건 아닙니다. 쓸쓸을 노래하되, 그것이 얼마나 뜨겁게 쓸쓸한지, 그것이 얼마나 서러운 쓸쓸함인지, 그것이 또한 얼마나 가열찬 쓸쓸함인지,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은 쓸쓸할 여유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쓸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건 아프기 시작했다는 뜻과 같은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영화의 목소리를 빌어 소리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은 진다. 피었으니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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