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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명원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0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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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먼 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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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나는 세계에 대해서는 다소 비관적이지만, 적어도 사람에 대해서는 낙관주의자다. 그것은 이 세계의 비참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키는 것 모두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두 섬

한국과 오키나와는 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주의 · 식민주의가 남과 북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양극이었다.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북진론(北進論), 오키나와는 남진론(南進論)의 상징적·실질적 거점이었다. 일제 말기 만주와 중국 본토를 침략하고 미크로네시아로부터 동남아시아를 침략해간 일본의 제국주의는 오키나와와 조선에 대한 식민화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간명하게 말하면, 일제 말기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란 조선과 오키나와를 두 개의 축으로 하는 타원 구조의 전면적 확산을 의미한다. 조선의 해방, 오키나와의 점령, 일제의 패전 이후, 아시아·태평양의 방대한 권역은 승전국인 미국에 의해 인수되었다. 하와이에 있는 미국의 태평양사령부로부터 극동에 이르는 아름다운 산호초 섬들은 과거에도 그렇듯, 전후에도 여전히 아시아· 태평양을 관리하는 패권국 미국의 전략적 군사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과 오키나와는 2차세계대전 이후 극동 최대의 미군기지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는 공통성도 여전하다. 현재도 미국과 중국의 역내 패권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접촉점 혹은 양극이라는 지정학적 상황 역시 여전하다. 한국과 오키나와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일종의 ‘가족유사성’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거시적인 역사의 국면에서 보면, 한국과 오키나와는 동아시아 역내에서의 패권/헤게모니 이행기에는 항상 ‘인질 상태’와 유사한 국면으로 이행하곤 했다. 근대전환기 중국과 일본의 패권 경합 국면에서, 조선과 류큐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그 명백한 예이다. 현재 국면에서는 미국과 중국 패권이 한반도와 오키나와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일본의 아베 정권 역시 이러한 상황 악화를 통해, 오히려 전전(前戰) 일본으로의 귀환을 획책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오늘도 나는 버스와 지하철 속에서 덜컹거리면서 책을 읽는다. 책읽기란 ‘나’와 ‘세상’에 대한 물음 던지기의 일부였고, 그런 방식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의 물음은 해소되기보다는 더욱 충만해졌다. 그런 일을 나는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상처를 가장하지 않는 '연옥'에서의 삶은, 대체로 고단해서, 마음의 '평정' 조차도 '싸움'으로부터 왔다. 그렇게 간다. 마음의 고고학, 오래된 차안과 피안 사이의 연옥, 그 사이에서 '쓰다'의 주어인 '나', 그리고 서늘한 목적어였던 '당신, 그대들.' 연옥에서 모든 물방울들은 가볍게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풍화되지 않는 것들을 위해, 쉼없이 쓰러짐에 정직한 것들을 위해, 무엇보다 명랑하게 씨잉~씽(!) 돌고 있는 '팽이'를 위해, 나는 혼신의 힘으로 전진하는 '달팽이'처럼 쓸 것이다.

종언 이후

비평가로 사는 일은 무겁고도 고독한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내밀하게 교통하면서도, 쉼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향해 귀환하는 일. 거기에는 어떤 언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비평가의 고독이 있다. 전후의 비평가 최일수를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내 고독하다고 느꼈다. 아니 정작 고독한 것은 최일수 자신이었을 것이다. 전후로 명명되는 1950년대는 최일수를 포함한 동세대에게 '근대의 종언'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전쟁은 흉폭한 것이었고, 그래서 당대인들의 대다수는 현실의지반이 완전하게 상실된 듯한 붕괴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언어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고, 비평가들 역시 명제적 언어와는 무관한 시적 파토스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런데 적어도 비평가 최일수는 '종언'에서 어떤 '시작'을 예감했던 것 같다. 그는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근대가 종결되고, 새로운 현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믿었다. 붕괴감이라든가 종언의 파토스와 무관하게, 재건의 상상력을 활성화하고자 한 것이 최일수의 비평이었다. 종언과 무관하게, 아니 종언 이후에도 다른 꿈을 기획하는 비평은 가능한가. 적어도 최일수는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종언의 시대에 비평가로서 사유행위를 지속하는 나는 어떠한가. 최일수에 대해 상상하는 내내 나는 이런 고민에 휩싸이곤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종언 이후>가 되었다.

창작의 비밀

“미문(美文)보다 서술하는 상황을 담아낼 수 있는 명료한 문장이 더 중요해요.”

타는 혀

이 책에 수록된 논문을 써나가는 과정은 치열한 '논쟁적 대화'를 지속적으로 벌여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임화의 경우는 현재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별 문제가 안 되었지만, 다른 비평가들의 경우는 지금 현재까지도 학계와 문단에 여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거나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라는 점에서, '논쟁적 대화' 는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김윤식 교수의 비평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직후에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들은 지금까지도 내 글쓰기를 검열하곤 하는 무의식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연구를 지속하고자 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학문적 실천 과정에서의 '진실 추구' 라는 문제 때문이다. 비평사를 포함한 역사 해석의 문제는 다양한 해석들의 지속적인 충돌 과정을 통해서 어렵게 합의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해석학적 충돌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의 역사 해석을 신뢰할 수 없음은 이런 까닭이다. - 머리말 중에서

타는 혀

안녕하세요. 이명원입니다. <타는 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계기로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독자분들께서 이메일을 보내 주셨더군요. 김영일 씨는 좋은 평론가가 되길 바랍니다. <위반의 상업성>이라고 비판해주신 독자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내적 성찰'과 '자기갱신'에의 노력이겠지요. <타는 혀>의 제 2부를 2001년에 발간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아마도 김윤식 선생님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될 듯합니다. 2001년 정직하고 당당하게, 따듯하게 살겠습니다. 이명원 올림 (2000년 12월 31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파문

'파문'이라는 표현 속에는 위태로운 논쟁들에 지속적으로 개입했던 한 젊은 비평가의 에누리없는 내적 동요와 그 글들이 세상으로 흘러들어 불러일으켰던 격정에 가까운 풍경이 얼마간 '숨겨진 채로' 녹여져 있다. 그 동요와 격정의 글쓰기, 그리고 그것의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요동치던 삶의 항진이, 딱 이만큼의 '나'를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 나는 대체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 책에서 제기되고, 논의되고 비판되고, 제안되고 있는, 2000년을 전후로 한 다채로운 견해들은, 앞으로도, 얼마간은, 뜨거운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할 문제들이다. 물음이 있다면 응답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자기 성실성'이라는 명제를 나는 여전히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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