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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공선옥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3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곡성 (염소자리)

직업:소설가

기타: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중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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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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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평가보다는 문학적 평가가 더 높은 여성 작가. 세련된 여자보다는 촌스런 여자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우리 곁에 살아 남을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 시대 가난한 여성들의 굴절된 삶과 그 속에서 용솟음 치는 생명력을 생동하는 문체로 묘파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시골의 폐교된 분교에서 산다. 교실 두 칸을 거실과 집필실로, 교무실을 부부와 딸들의 방으로 고치고, 마당에는 닭도 치고 채소밭도 일궈가며 산다. 어설픈 농구대와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한켠에 세워져 있는 자그마한 운동장이 그의 집 뜰이다. 방 한 구석에는 아직도 칠판이 남아 있어, 아이들의 글쓰기 연습장이 되고 있다. 화장실은 산골 초등학교 아이들이 쓰던 곳을 그대로 쓰고 있다. 엉덩이 까고 주저앉으면 바로 곁에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들리는 그런 재래식 화장실이라고 한다.

이 목가적 풍경 속으로 찾아 들어오기까지, 공선옥은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만큼이나 팍팍한 삶을 살아 왔다. 그 팍팍한 삶은 우리 현대사에 큰 상처자국으로 남아 있는 5.18과 깊은 연관이 있다. 5.18 당시 공선옥은 전남대 구내에 있던 사대부고 1학년생이었다. 5.18의 생생한 현장을 목도한 그는 대학 진학 후 2년 만에 학교를 그만 두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때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사업도 무너지면서 채권자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 밥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1년쯤 지속된 뒤, 전부터 그냥 알고 지내던 광주 시민군 출신의 한 '아저씨'와 덜컥 결혼해 버린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쉽게 한 결혼은 오래 가지 못했고, 둘째를 임신한 채 3년 만에 이혼으로 끝났다.

이혼 후, 생계에 대한 살인적 공포 속에 아이들을 광주시립임시아동보호소라는 곳에 맡기고, 자신은 고향 근처 태인사의 공양주로, 즉 절의 식모로 들어 갔다.

처음에는 두 아이의 목숨을 떠맡은 데서 해방되어 한시름 놓았으나, 허전함을 견딜 수 없어 3개월 만에 큰 딸을 데리고 상경했다. 달동네를 전전하며 재봉일로 두 입에 풀칠을 하다가, 1년 만에 둘째를 데려왔다. 이 시절 그는 '내가 내 힘으로 아이들 먹여 살린다'는 기분 하나로 버텼다고 한다. 결핵에 걸려 몸무게가 38kg까지 축나기도 했다.

2년 동안 서울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먹고 사느라 바빠 따로 글 쓸 시간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재봉틀 위에 원고지를 올려놓고 재봉질 틈틈이 소설을 썼다. 그렇게 쓴 글이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등단작 '씨앗불' 이다. 결혼도 다시 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광주 시민군 출신. 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다 살아남은 전력까지 똑같다.

차 한 대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길로 하루에 버스가 4번밖에 안 들어오는 가난한 산골에서 살지만, 공선옥은 이제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병도 나았고 생계의 공포로부터도 벗어났다. 부잣집 아이도 가난한 집 아이도 똑 같이 흙발로 뛰어다니는 농촌 풍경만큼 공선옥의 마음가짐은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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