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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효원

최근작
2023년 4월 <희곡과 함께 걷다>

이효원

다양한 개인 및 집단과 만나는 연극치료사로서 2005년 한국연극치료협회 연극치료사 양성과정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후 여러 학교에서 연극치료를 가르치고 있다.
󰡔연극치료와 함께 걷다󰡕와 󰡔연극치료 QnA󰡕, 󰡔연극치료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 󰡔연극치료 진단평가 매뉴얼󰡕을 썼고 󰡔건강한 애착과 신경극 놀이󰡕, 󰡔회상연극󰡕 등 15권의 연극치료 관련 서적을 옮겨왔으며, 연극과 성장 연구소에서 상처 입은 아이를 위한 연극치료(DWC)를 실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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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희곡과 함께 걷다> - 2023년 4월  더보기

머리말 “인생이랑 똑같은 걸 뭣 하러 써?” 작년 한해 화제의 중심이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나온 대사입니다. 창희가 구씨에게 잡혀 맞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삽입된 장면으로, 현아가 창희에게 이렇게 말하죠. ​“내가 작가나 해볼까 하고 잠깐 작법 책 본 적 있는데 좋은 드라마란 주인공이 뭔가를 이루려고 무지 애쓰는데 안 되는 거래. 그거 보고 접었어. 인생이랑 똑같은 걸 뭣 하러 써? 재미없게.” ‘치유적 희곡 읽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쓰면서 저도 현아처럼 묻습니다. 인생이랑 똑같아서 재미없는 그런 드라마를 우리는 왜 끊임없이 쓰고 또 볼까요? 일단 드라마의 역사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인생이랑 똑같은 걸 쓰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 “자연에 거울을 비추는 것”(햄릿 3막 2장)을 최종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이는 드라마뿐 아니라 예술 일반이 공유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물론 각 시대마다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과 함께 자연스럽고 진실한 삶의 면모가 조금씩 다르게 조명되기는 하지만, 핍진성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어느 양식이나 사조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처럼 일관되고 보편적인 특성의 배후에는 보통 인간의 강력한 필요가 작동하며, 그것은 흔히 재미라는 보상을 제공합니다. 다시 말해 현아의 의문과 달리 우리가 드라마를 쓰고 보는 이유는 그것이 인생과 꼭 닮았기 때문이며, 그것을 통해 분명히 어떤 재미와 보상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으로서 제한된 공간을 점유하는 개인들이며 그래서 사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인 상상을 통해 그 한계를 어느 정도 상쇄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지요. 그래서 예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술가는 어떤 순간의 어떤 대상에 깊이 침잠해 그것이 가진 소리와 촉감과 색깔과 움직임과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관객은 작품을 통해서 대상과 그것을 통과한 예술가의 세계를 만나고 또 거기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예술 그 중에서도 특히 드라마는 스스로를 보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로 작동합니다. 그 거울은 짜릿하고 신비롭고 즐겁고 통렬하고 비참하고 애틋하고 혐오스럽고 희망찬 다양한 감정과 생각 곧 재미를 일깨워주지요. 현아의 또 다른 의문, 드라마는 왜 실패를 다룰까요? 실패(失敗),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않거나 그르치는 것. 그렇죠. 오이디푸스도, 블랑쉬도, 에스트라공도, 셴테도, 니나도, 맥베스도, 리어도, 윌리 로먼도 모두 저마다의 욕망이나 과제를 이루려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드라마를 비극이라 부르지요. 우리는 대체 왜 그런 드라마를 고전이라 추앙하며 되풀이해서 읽고 보는 걸까요? 그건 주인공이 뭔가를 이루려고 무지 애를 쓰는데 안 되는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접하는 이들을 위로하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이 듣고 위로 받았다고 하는 곡들을 보면 대개가 슬픈 노래입니다. 그저 자신의 것과 비슷한 아픔을 가락에 실어 말했을 뿐인데, 그것을 들으며 위안을 얻는 거죠. 슬픈 노래에서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얘기해 준 듯한, 내 아픔을 귀 기울여 들어준 듯한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처럼 드라마가 실패한 주인공을 다룬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주 실패하고 실패할 때마다 좌절하여 상심한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일 것입니다. 그렇게 드라마를 읽고 보면서 우리는 피와 땀과 눈물 흘리는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노고와 실패를 다독거릴 수 있습니다. 실패의 드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에게 발견의 기회를 줍니다. 짧은 노래와 달리 드라마는 구체적인 상황과 행동으로써 전개되지요.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덕분에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의 실패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드라마는 재미만이 아니라 일종의 사고 실험의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가 주인공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와 다른 측면에서 실패의 드라마는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그 너머의 삶을 감지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실패하지만 패배하지 않는, 실패를 통해 오히려 내면적으로 성숙하는 영웅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주인공을 통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차원의 삶을 발견하고 경이로움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위로하고 주인공의 실패를 톺아보면서 같은 실패를 우회하며 위대한 실패의 영웅적 여정에 동참하는 것을 치유적 희곡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대표작인 《오이디푸스》부터 중세 도덕극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포함해 1953년 작 《고도를 기다리며》까지 모두 13편의 희곡과 그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2021년 봄부터 겨울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치유적 희곡 읽기 워크숍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서양 연극사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희곡 가운데 치유적 관점에서 읽을거리가 풍부한 작품들을 골라 참여자들과 함께 소리 내서 읽은 다음 텍스트가 던지는 질문에 따라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희곡을 깊이 읽는 작업이었습니다. 먼저 희곡을 눈으로 읽는 대신 여럿이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는 것이 흥미롭고 진한 울림을 주었고, 각기 다른 시대와 작가의 이야기에 투사된 인간의 보편성에 지금의 나를 비추어 보는 것 역시 잊지 못할 귀한 자극이 되었지요. 그래서 그 경험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만든 이 책은 치유적 희곡 읽기 워크숍의 구성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먼저 희곡의 전반적인 내용과 주요 인물의 특징을 정리하고 치유적인 관점에서 주목할 주제를 일별한 다음 그와 관련한 일련의 극적 탐험을 안내하는 순서로 되어 있지요. 여러분이 책을 읽으실 때도 혼자 희곡을 읽고 작업해도 좋지만 희곡을 깊이 읽는 이 과정을 좀 더 풍부하게 즐기시려면 관심사를 공유하는 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권합니다. 인원은 4~7명 정도가 가장 적당할 거고요. 각기 다른 13개의 세상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은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매번 흔쾌히 책의 제작을 허락해주시는 노현 대표님과 읽기 좋게 정성껏 다듬어주신 전채린 차장님께 감사하다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치유적 희곡 읽기 워크숍의 여정을 함께 한 참여자들을 한 분씩 떠올려봅니다. 이 책이 나오면 그 분들이 아마 가장 반겨주시지 않을까 하며 그 얼굴을 그려보네요. 또 저의 인사가 가닿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이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준 소포클레스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헨릭 입센과 안톤 체호프와 막심 고리키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아서 밀러와 테네시 윌리엄스와 손톤 와일더와 사무엘 베케트와 이름 모를 작가에게 허리 숙여 깊이 감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설렙니다. 2023년 3월 봄이 오는 호숫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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