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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종교/역학

이름:백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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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백용성의 금강경 강의>

백용성

속명은 백상규白相奎이며 용성은 법호이며, 법명은 진종震鍾이다. 1864년 음력 5월 8일 전북 장수 출생, 14세에 남원 덕밀암으로 출가(19세 출가설도 있음), 16세에 해인사에서 사미계 수지했다. 1885년 송광사 삼일암에서 『전등록』을 읽다가 크게 깨닫고 멀리 환성지안의 법을 이었다. 이후 천장암, 정헤사,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선암사, 금강산 불지암 등에서 수행 정진했다. 48세인 1911년 서울로 상경해 우면산 대성초당에서 주석하며 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고, 1912년에는 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을 열었으며, 1916년 종로에 선종포교당인 대각사를 창건하며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수감됐다. 58세인 1921년 출감하며 역경사업을 위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 『화엄경』 『원각경』 『금강경』 등 20여 권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했다. 또한 대각교를 창립하며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 지성화를 이끌었다. 1922년에는 간도 오지인 명월촌과 봉령촌에 700정보(210만평)씩 농장을 만들어 독립운동 후방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스님의 독립운동 지원은 해방 후 백범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대각사를 방문했던 사진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925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를 추진했고, 1926년에는 범계생활금지犯戒生活禁止를 내용으로 건백서建白書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64세인 1927년에는 경남 함양의 백운산에 화과원을 설립해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제창, 직접 농사하며 생활했다. 또한 이때 우리나라 최초로 찬불가를 작사 작곡하며 한국 불교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스님은 1940년 음력 2월 24일 서울 대각사에서 세수 77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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