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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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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자매 인형의 세계 여행>

이상희

1971년 제주 출생.
제주시 거주.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과 졸업.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일과와 동대학 외국어교육원 강사. 한일 언론학회 등 국제학술대회 다수 통역.
번역한 책으로 한일 번역서 『마을 사람들이 세운 재일제주인 비』(2015,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 간, 공역)와 일한 번역서 『재일조선인 문제의 기원』(2016, 도서출판 문, 공역), 『6일간의 벽신문』(2017, 패러다임 북, 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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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자매 인형의 세계 여행> - 2019년 3월  더보기

더 알리고 기억하고 대비해야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 지역의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현을 중심으로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역에 따라 시간 차이가 있지만, 지진이 일어나고 나서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거대한 지진해일이 이곳을 덮쳤다. 그날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에서는 1?2?3호기가 가동 중이었고, 4.5.6호기는 정기 점검 중이었다. 지진으로 정전된 원자력발전소에 13m가 넘는 거대한 지진해일이 밀려와 비상 디젤 발전기마저 쓸어 갔다. 모든 전원을 잃자 원자로가 녹아내렸다. 3월 12일 오후 3시 36분 1호기, 3월 14일 오전 11시 1분 3호기, 3월 15일 오전 6시 14분 4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 막대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다. 동일본대지진 하면 대개 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떠올린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은 덜 알려졌고, 다른 사실은 덜 이야기되었다. 동일본대지진은 숱한 생명을 앗아갔다. 2018년 6월 18일 자 《아사히신문》에 실린 일본 경찰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1만 8433명이 사망(1만 5896명)하거나 실종(2537명)되었다. 이 가운데 90%가 넘는 사람이 지진해일에 희생되었다. 부서진 건물 더미에 깔려 사망한 사람이 4.23%, 지진해일이 일고 난 뒤에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사람이 0.92%다.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미야기현이다. 9540명이 사망했고, 1223명이 실종되었다. 미야기현에서 바다와 접한 이시노마키시·오나가와쵸·히가시마츠시마시 세 지역에서만 약 5천 명이 희생되었는데, 여섯 살 ‘아이리’가 살던 이시노마키시에서 3천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그러나 재해가 일어나고도 일주일 동안 미야기현의 이 세 지역은 피해 상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기와 통신이 복구되고서야 세상에 참상이 알려졌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 아픈 죽음 가운데 어른들이 지키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리 어머니 사토 미카 씨는 한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아이들을 살릴 기회가 있었다고 전했다. 연안 지역으로 내려간 유치원 버스가 히요리야마산 기슭에 있는 카도노와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대기할 때였다. 선생님 두 명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까지 돌계단으로 내려와 버스를 유치원으로 돌리라는 연락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때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돌계단을 올라 유치원으로 함께 돌아갔더라면 다섯 아이는 살았다. 실제 카도노와키 초등학교에 귀가하지 못하고 남았던 초등학생들은 지진해일이 몰려오자 학교 선생님들과 돌계단을 올라 히요리야마산으로 대피했고, 모두 무사했다. 재난 경보가 발령되면 원아를 귀가시키지 않고 유치원에서 보호해야 하고 보호자가 직접 와서 데려가게 해야 한다는 방재 지침만 유치원 측이 지켰더라면, 이미 방재 지침은 어겼지만 뒤늦게라도 유치원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지진해일이 충분히 예상되는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방법을 찾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죽음이었다. 왜 아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진상을 알아내려고 부모들이 나서서 찾아내고 민사소송으로 유치원 측의 잘못을 따지기는 했지만, 딸을 잃은 어머니는 모든 시간을 되짚어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며 ‘~했더라면’, ‘~하지 않았더라면’을 계속 복기할지 모른다. 그날 아침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자는 아이를 애써 깨우지 않았더라면, 그 유치원에 입학시키지 않았더라면, 이곳으로 이사 오지 않았더라면….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사토 미카 씨가 어느 정도 아픔을 이겨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지은이와 통화하다가 아이리 이름이 나오는 순간 사토 미카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사토 미카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번역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일본대지진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 가운데 사토 아이리라는 여자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기억해 주길 바랐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고 알려야 한다고 했다. 유치원에 가려고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선 아이리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엄마는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를 아직 듣지 못했다. 아니 이젠 영영 들을 수 없다. 내 큰딸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몇 달간 입원한 적이 있다. 현관문을 열며 무덤덤하게 말하는 “다녀왔습니다”라는 아이의 인사말이 얼마나 마법 같은 말인지 나는 안다. 우리에게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별이 된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들이 있다. 재난과 재해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다만 그 순간, 히요리 유치원이나 세월호를 탔던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어른들은 어린 생명을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기억하고 대비해야 한다. 기억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세월호에 탔다가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세월호 희생자 304명’으로 ‘단원고 2학년 250명’으로만 뭉뚱그리는 세상에,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있고 결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416단원고 약전』으로 펴내 알린 굿플러스북에서 이 책이 나오게 되어 뜻깊다. 출판사 이재교 대표와 박수정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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